수지 “‘안나’는 우리 사회가 만든 인간상”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2 16:0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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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인생 캐릭터 경신한 수지

수지가 일을 냈다. 첫 단독 주연작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를 통해 대중과 평단을 모두 매료시키며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극 중에서 수지는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한 여자가 겪는 인생의 변화를 ‘유미’ 그리고 ‘안나’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인물의 복잡다단한 심리 변화를 통해 치밀하게 연기했다. 《안나》는 정한아 작가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이 원작이다.

수지는 영화 《건축학개론》(2012)을 통해 ‘국민 첫사랑’에 등극했다. 이후 《당신이 잠든 사이에》 《배가본드》 《백두산》 《스타트업》 등을 통해 흥행배우로 자리 잡았다. 《안나》는 수지의 첫 단독 주연작이다. “배우로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욕심이 났다”는 수지는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의 심리 변화 특성상 심리 전문가를 직접 만나 현실적으로 납득이 되는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조언을 구했다는 후문이다. 첫 단독 주연작 《안나》로 흥행과 연기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지를 만나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쿠팡플레이 제공

작품이 공개되고 반응이 뜨겁다.

“기분이 너무 좋다. 좋은 기사도 많이 나고, 주변에서도 연락이 많이 온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아 들뜨지는 않지만, 힘이 나긴 한다.”

처음 대본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미묘한 감정이랄까. 극 중 캐릭터 중 유미에겐 리플리증후군(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이 있다. 얘가 뭘 잘했다고 내가 공감을 하지? 왜 응원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의 인생은 가혹하다. 그래서 그 가혹한 인생을 연기하고 싶었다. 막연히 자신감도 있었다.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물론 부담감과 불안감도 있었는데, 결정한 뒤부터는 앞만 봤다. 부담감보다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욕심이 났다고 했는데,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도 궁금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 연기를 했던 사람라 어쩔 수 없이 그때의 감정들이 떠올라 몰입이 힘들었다. 아쉬운 연기도 당연히 보였다. 결국 시청자 입장에서 보는 건 실패했다(웃음).”

유미는 거짓으로 인생을 산다. 거짓말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는 어땠나. 연기 속의 연기랄까.

“거짓말을 하는 연기가 진짜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미도 애초엔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거짓말에 스스로 당황하기도 했다. 그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말투도 신경을 썼다. 인위적인 말투나 톤보다는 제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안나와 유미를 연기하면서 혼란은 없었나.

“유미의 경우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안나는 혼란스러웠다. 안나의 거짓말은 점점 대범해지고 안나 스스로 익숙해진다. 안나는 유미와는 다르게 보이는 게 중요한 사람이다. 안나는 이해가 필요한 인물이었다. 연기를 하면서 이게 안나의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다. 대본을 볼 때는 이해가 됐는데 막상 현장에서 연기를 하려고 하니 모호했다. 진짜가 뭐지? 진심이 뭐지? 연기하는 내내 심리 전문가한테 자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애매모호한 것을 살리는데 오히려 진짜 안나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내가 느끼는 모호함을 그대로 표현했다.”

‘안나’ 캐릭터에 공감했던 부분도 궁금하다.

“애초엔 나와는 동떨어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각자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나. 결국 안나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나씩 안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안나는 수지의 인생 캐릭터다. 오랫동안 봐왔던 배우의 처음 보는 연기 변신에 찬사가 이어진다.

“아무래도 대중이 생각하는 제 모습에서 벗어난 캐릭터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의외의 모습에 칭찬해 주시는 것 같다. 그러한 작품을 선택한 용기를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보다 카메라 앞에서 확실히 자유로워진 것 같다.

“저는 현장 분위기를 많이 신경 쓰는 스타일이다. 한데 이번엔 그것보다도 유미와 안나의 감정이 급하다 보니 의도적으로 현장 분위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만 바라봤다. 그랬더니 확실히 캐릭터에 더 깊게 더 빨리 몰입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감정이나 경험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연습 때와는 달리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톤이 나올 때가 있다. 그때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이번 안나를 연기하면서 그런 느낌을 꽤 많이 받았다. 그 재미가 있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화가 많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때마다 감독님이 ‘그런 표정 너무 좋아’ 하셨다. 하하.”

연기도 연기인데, 빛나는 ‘미모’에 대한 칭찬도 일색이다.

“그 수수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잠도 못 잤다. 하하. 생각보다 저의 초췌한 모습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웃음). 수수한 얼굴은 유미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스틸컷ⓒ쿠팡플레이 제공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스틸컷ⓒ쿠팡플레이 제공

이번 드라마에서 150여 벌의 의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극 중 ‘촌스러움’이라는 단어가 꽤 많이 나온다. 유미에서 안나로 변해 가는 과정을 미세하게 의상으로 표현했다. 유미는 컬러를 많이 넣어 촌스럽게 보이길 바랐다. 내재돼 있는 욕망을 화려한 색깔로 숨기려는 의도였다. 진짜 안나가 되는 과정에서는 점점 색을 빼고 고급스러움을 입혔다.”

이 작품으로 얻고 싶은 수식어가 있나.

“예전에도 그랬지만 진정성 있는 배우이고 싶다. 진짜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

영화 《건축학개론》부터 《안나》까지, 배우 수지는 성장 중이다. 스스로 어떤 부분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그때는 모르는 게 많아 감독님께 의지하며 자문을 많이 구했다. 지금은 책임감이 더욱 많이 생겼다. 특히 이번 작품은 욕심을 냈던 작품이고, 제가 해내야 할 게 많아 사명감마저 들었다. 단순히 안나를 ‘거짓말하는 여자’로 비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깊게 고민하고 연기했다.”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도 궁금하다.

“《안나》는 내가 욕심을 많이 냈던 작품이다.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순간순간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안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안나에 대한 생각과 촬영 때 느꼈던 감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 썼다. 꽤 오랫동안 치열하게 연예계 일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생각나는 순간이 많지 않더라. 그런데 《안나》의 모든 순간이 내 일기장에 저장돼 있고,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느낌이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여러모로 내게 소중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결국 《안나》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유미의 거짓말과 잘잘못보다는 유미가 왜 그 같은 선택을 했고, 왜 그런 삶을 사는지 등 결국 한 여자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유미라는 인간상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종이 한 장 스펙을 맹신하는 사회이지 않나. 한 여자의 인생에 초점을 맞춰 보신다면 공감 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극 중 ‘항상 그랬어요, 나는 마음먹은 건 다 해요’라는 안나의 대사가 있다. 개인적으로 마음먹은 목표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실 목표를 정하지 않은 지 꽤 됐다. 목표를 정하지 않는 게 목표다. 열심히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뒤 비로소 조금 편해졌다. 예전엔 그 강박 때문에 힘들었다. 꽉 붙잡고 사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그때보다 여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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