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 덩어리를 인양한 것”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1 16:0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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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전남 완도 송곡항 유나양 일가족 차량 인양 현장
“체험학습 간다더니”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경찰, 극단적 선택에 무게…폐업·실직·투자 실패 등 생활고 흔적도

6월29일 오전 9시경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유나양(10) 가족 차량 인양 작업을 앞두고 날씨는 해가 쨍쨍했다 흐렸다를 반복하며 변덕을 부렸다. 요란한 날씨와 달리 앞바다 파도는 비교적 잔잔했다. 송곡항은 유나양 가족의 차량이 실종되기 직전인 5월30일 밤 11시쯤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이다. 당시 명사십리해수욕장 주변 펜션 CCTV에는 유나양과 아버지 조아무개씨(36), 어머니 이아무개씨(35)가 펜션을 나와 차량에 탑승하는 장면이 찍혔으며, 뒤이어 인근 송곡마을 버스정류장 CCTV에 유나양 가족이 송곡항으로 향하는 장면이 기록됐다. 이후 31일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유나양과 이씨, 조씨의 휴대폰 신호가 차례로 꺼진 곳 또한 송곡항이었다. 

인양 시간이 다가오자 경찰버스와 취재진, 마을 주민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난간을 붙잡고 사고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100여 명의 주민 사이에서는 조씨 일가족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면서도 극단적 선택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주민 이기원씨(67)는 “어제와 오늘,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취재진이 몰려온 것 같다”며 “전국으로 방송을 탄 탓인지 지인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쇄도하지만 이러다가 마을 선착장이 극단적 선택의 성지로 떠오를까봐 내심 걱정도 된다”고 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정성환
6월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 선 착장 인근 방파제에서 관계자가 10m 바닷속에 잠겨있는 조유나양(10) 가족의 차량을 인양한 뒤 조사를 위해 지상으로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차량 올라오자 지켜보던 주민들 큰 한숨 

당초 인양 작업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실제 작업은 10시15분부터 진행됐다. 은색 차체가 차츰 윤곽을 드러낼 때마다 주민들은 저마다 한숨을 쉬거나 탄식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마침내 낮 12시20분께 유나양 가족이 탑승한 차량이 뒤집어진 채 물 밖으로 올라오자 현장에선 “설마 했는데”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송곡마을 토박이 김상근씨(67)는 “인근 물하태 도선장 등에서는 차량이 종종 바다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며 “실낱같은 기대도 했는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전수미씨(여·42, 광주 서구)는 “마지막에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었을 것 같다”며 “국민적으로 애타게 찾았던 아는 얼굴이라 아이의 죽음이 더 가슴 아프다”며 울먹였다. 

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생환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유나양 가족’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제주도로 체험학습을 간다고 했다가 마지막 행적이 확인된 지 29일 만, 경찰에 실종 신고된 지 1주일 만이다. 경찰은 “지문 상태가 양호한 어머니 이씨와 아버지 조씨의 신원이 먼저 확인됐고, 오후 9시30분쯤 유나양 신원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씨는 안전벨트를 맨 채 운전석에 엎드린 상태였고, 뒷좌석에는 이씨와 유나양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 나란히 앉아있었다고 한다. 옷차림은 5월30일 밤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 펜션을 빠져나가면서 방범 카메라(CCTV)에 포착된 모습과 동일했다. 앞자리에선 슬리퍼가, 뒷자리에서 휴대전화 2개가 든 이씨의 핸드백이 발견됐다. 트렁크에서는 낚싯대도 나왔다.

경찰은 조씨 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일가족의 시신에서 제3자나 외부인에 의한 타살을 의심할 만한 단서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씨 부부의 인터넷 검색 기록은 이러한 판단에 힘을 싣는다. 이들은 완도 송곡항 일원에서 마지막 생활반응을 보이기 전까지 최근 폭락 사태를 빚은 암호화폐인 ‘루나 코인’과 ‘수면제’, 극단적 선택 관련어 등을 여러 차례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 부부는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이 가족이 어려운 경제적 형편에 처해 있었던 정황이 그 원인으로 주목된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 가족은 광주광역시에 살았으며, 지난해 6월 운영하던 컴퓨터 판매점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또한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그만둔 뒤 이들 부부는 1년 가까이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 부부의 금융기관 채무는 1억원 초반대로 신용카드 대금 등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정성환
완도 송곡항 선착장에 모여든 기자들ⓒ시사저널 정성환

경제적 궁핍 내몰려…“터질게 터졌다” 반응

하지만 이 가족의 부채 규모 등을 고려하면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섣불리 단정 짓기도 어렵다는 시각 또한 있다. 일각에서 조씨 부부가 지난 5월 ‘루나 코인’을 수차례 검색한 정황이 발견되면서 일가족의 비극이 코인 투자 실패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나양 부모가 학교에 체험학습을 가겠다고 알린 시기도 루나 코인 폭락 사태와 시기가 맞물린다.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는 5월12일 기준 99% 이상 폭락하면서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유나양 부모는 그달 17일 학교에 제주도 체험학습을 가겠다는 신청서를 냈다. 루나 폭락 사태가 벌어진 지 5일 만이다.

극단적 선택이 아닌 추락 사고 등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인양된 차량에서 조씨는 안전벨트를, 이씨는 핸드백을 메고 있던 점이나 어머니 등에 업힌 채 신발을 신고 있는 유나양의 모습까지 고려하면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둔 마지막 모습으로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의문이 따른다. 또 차량 기어봉(변속기)이 ‘D(주행)’가 아닌 ‘P(파킹)’에 놓여있었고, 운전석 문이 잠겨있지 않은 점도 의아한 대목이다. 경찰도 차량 결함이나 사고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정밀 감식하고 있다.

이번 사고를 접하면서 많은 이들에게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히 무너진 사회 시스템과 함께 경제적 낙오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등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최근 컴퓨터를 통해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횟수가 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전해진다. 이날 SBS에 출연한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적인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통상적으로 2014년까지는 3000명이 채 안 됐다. 그런데 2015년을 기점으로 3000명이 넘은 이후 지금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며 “경제적인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동기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현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봇물을 이룬 뉴스기사에 달린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대다수는 어린 유나양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가려면 혼자 가든지 하지, 애가 무슨 죄냐?” “제발 아이들은 가만둬라. 애들이 뭔 죄가 있느냐”며 부모를 질타했다. “아직 젊어서 무슨 일이든 하면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을 건데 왜 죽음을 택했느냐” “엄마가 애 데리고 도망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반면 “아마 사회제도로 지원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사각지대에 사는 분이 많아도 구제가 잘 안되는 것으로 안다. 진짜 혜택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은 이래저래 혜택받고…”라며 사회적 모순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댓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살은 없다. 타살만 있을 뿐이다. 좋아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택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개인의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나 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의 탓이다. 이를 인정해야 문제가 풀린다. 송곡항에서 유나양 가족 차량을 인양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 덩어리를 건져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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