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강성 지지층에 갇혀 극한 대치…민생도 경제위기 대처도 ‘올스톱’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1 10:0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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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국회’라던 20대 국회보다 더 최악인 21대 국회…한 달 넘게 원 구성 못 해
국민은 이제 ‘분노’ 넘어 ‘냉소’…여야 ‘강성 팬덤’에 휘둘려

두 딸의 아버지 정석진씨(가명·40)는 화물차를 몬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가계에 시름이 깊어졌다. 뛰는 물가와 금리도 벅찬데 기름값마저 매주 오르니 막내딸을 학원에 그만 보내야 하나 고민이다. 피아노와 태권도 모두를 좋아하는데 어떤 걸 줄이자고 해야 하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최근 정부가 유류세 인하 결정을 내렸지만, 기름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어 2주 전 가격으로 돌아가는 정도밖에 안 된다. 여야가 유류세를 50%까지 더 깎는다는 뉴스를 봤는데, 언제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 국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러다가 분통이 터졌다. 국토교통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를 차례로 찾았는데, 위원회 구성 자체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떤 일정도, 회의도 없었다. 정씨는 어느 의원실에 전화해 이런 사정을 호소하고 물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퍼펙트 스톰 오는데 국회는 한 달 ‘개점휴업’

국회가 멈췄다. 국회는 지금 존재하는 걸까. 정씨처럼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애쓰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국회는 분명 존재하는데, 분명 맡은 바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멈춰선 국회는 산적한 민생 과제를 풀기 위한 초당적 입법 과제는 손도 못 대고 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열지 못했다. 민생을 살피지도, 행정부를 견제하지도 못하는 국회를 지켜보며 국민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국회는 왜 갑자기 멈춰선 걸까. 한 달 전만 해도 싸우기는 해도 존재했던 국회다. 그 많던 국회의원이 때 이른 여름휴가를 간 것일까. 그 이유는 ‘원(院) 구성’이라는 세 글자에 숨어있다.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국회법에 따라 국회는 2년마다 구성을 새롭게 한다. 국회를 이끌어가는 국회의장과 부의장 등 의장단과 민생 이슈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17개 상임위원회도 2년마다 새롭게 꾸려진다. 즉 2년마다 새롭게 의장단과 상임위 구성원을 정하게 되는데, 이 절차를 바로 ‘원 구성’이라고 한다. 

원 구성은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한다. 의석수 20석 이상인 정당의 원내대표만이 원 구성 협상을 할 수 있는데, 현재 국회 내 교섭단체는 국민의힘(115석)과 더불어민주당(170석)밖에 없다. 즉 한마디로 국회 공전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집권여당과 제1야당에 있다. 

사실 역대 국회는 원 구성을 제때 한 적이 없다. 지금의 원 구성이라는 관행이 시작된 34년 전인 13대 국회부터 원 구성 법정시한을 지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장단은 임기 개시 후 7일째에 본회의를 열고, 상임위원장은 그로부터 3일 뒤에 뽑아야 한다. 이미 후반기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금의 21대 국회는 2년 전인 전반기 원 구성 때도 법정시한을 넘겼는데, 이번에 또 시한을 넘기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국회 원 구성이 매번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법제사법위원회 때문이었다. ‘입법부의 상원’으로 불리는 법사위의 막강한 권한 때문에 여야는 늘 지지부진한 협상을 이어갔는데, 민주당은 이미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주었다. 그럼에도 원 구성은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원 구성 지연에 따른 국회 공백은 2년마다 반복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총체적인 복합위기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상황이 심상치 않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악재는 악화일로인데 1997년, 2007년 경제위기 때보다 더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지표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은 이미 충격파를 맞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연일 연저점을 새로 쓰고 있고,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1300원을 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이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북한이 7차 핵실험 징후를 보이는 등 한반도 리스크는 아직 본격화하지도 않았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지금 경제위기라는 기차가 달려오는데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철교 위에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언론이 경마 보도하듯 국회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며 연일 날 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여야가 꿈쩍도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이 국회의 오래된 고질병, 민생을 볼모로 한 직무유기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국회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양향자 무소속 의원ⓒ연합뉴스
국회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양향자 무소속 의원ⓒ연합뉴스

‘사라진 반사효과’에 ‘지지층 바라기’ 정치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정면대결 양상이다. 민주당은 6월28일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국민의힘이 7월 초까지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7월4일 본회의를 열어 의장단을 단독 선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쳤다. 170석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어 의장단을 선출할 수 있다. 당장 국민의힘은 “입법독주 재개 신호탄”이라고 반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필리핀 새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출국했다. 협상의 문을 아예 닫아버린 셈이다. 여야 모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빗발치는 여론의 비판에도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왜 진흙탕 이전투구를 멈추지 않는 걸까. 사실 지금 여야 모두 상황이 좋지 않다. 여당은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는 게 걱정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6주 만에 긍정·부정 평가가 역전되는 ‘데드크로스(부정 교차)’ 지지율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야당 상황도 녹록지 않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지만 반사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에 추월당한 정당 지지도를 언제 다시 역전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민주당이 지지부진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격차를 벌리며 치고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당과 정치인만큼 여론에 민감한 집단은 없다. 상대가 못하면 내가 점수를 얻고, 상대가 잘하면 내가 점수를 잃기 때문이다. ‘민심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격언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무엇보다 귀하다. 그런데 만약 이런 흐름이 일부 깨졌다면 어떨까. 내가 못해도 상대가 점수를 얻지 못한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런 흐름을 ‘사라진 압박의 메커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윤 실장은 6월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이 이제 싸우는 국회에 ‘분노’하기보다는 ‘냉소’와 ‘무시’를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봤다. 국회가 ‘악플’보다 ‘무플’의 대상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반사이익’이라는 오래된 정치의 법칙이 깨진다는 점이다. 내 헛발질로 상대가 반사이익을 얻어 지지율이 쭉 올라가면, 여론의 쏟아지는 질타 속에 급한 대로 혁신 등을 하는 척이라도 한다. 그런데 압박의 메커니즘이 깨지면 지금의 경로와 전략에서 벗어날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내 탓보다는 네 탓에서 찾게 되기 십상이다. ‘비호감 대선’에 이은 ‘비호감 국회’의 탄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입장에선 여론의 전체적인 흐름보다 강성 지지층의 여론이 더 중요하다. 마침 이번 대선은 0.73%포인트라는 초접전의 격차로 승부가 갈렸다. 지방선거는 국민의힘 압승으로 끝났지만,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은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쳐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라’는 여론도 강하게 뭉쳐있다. ‘침묵하는 다수’는 국회를 냉소하고 무시하며 등을 돌렸지만, ‘행동하는 강경한 목소리’는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각각의 지지 정당에 또렷한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의 무한 대치는 누군가에게는 ‘제대로 싸우는 모습’이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은 전임 정부가 나라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들에겐 부동산(임대차 3법)과 검찰 ‘정상화’(검수완박 법안 헌법제판소 제소) 등이 매우 시급하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넘기는 대신 반대급부로 요구한 ‘검수완박’ 관련 국회 사법개혁특위 구성과 헌법재판소 소 취하 등을 지금의 국민의힘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이런 입장에선 정쟁의 책임은 오로지 거대 야당에 있다. ‘입법독주’라는 메시지는 자연스럽다.

반면 전임 정부를 떠받쳤던 지지층이 보기엔 민주당이 이제야 제대로 싸우고 있다. 애초에 법사위원장을 그렇게 넘겨선 안 됐다. 이들이 보기에 여당은 어차피 협치를 할 생각이 없다. 현 정부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처럼 전임 정부를 향한 칼날만 들이댄다. 법무부가 검수완박 법안을 헌재로 가져간 것도,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움직임도 모두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음주운전 전력을 가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 강행할 움직임도 보인다. 이런 와중에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 원내대표가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랐다. 민주당엔 더 강경한 대여 투쟁이 필요하다. 단독 개원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직무유기라는 논리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반도체에만 여야가 따로 없을까

여야가 다수의 국민 목소리가 아닌 소수의 지지층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면 국회의 공전을 막을 방법은 없다. 협치는 우리의 정의를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화제의 저작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 유지를 위한 조건으로 경쟁자에 관한 관용과 권력 행사의 자제라는 두 규범을 꼽았다.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쓴 강원택 서울대 교수도 ‘독선’을 내려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 교수는 “대통령은 경쟁 정당과의 공생의 가치 속에서 정당 간 상호 관용과 권력 행사의 자제라는 규범을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마침 협치의 씨앗이 태동하기도 했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여당이 주도하는 국회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국민의힘 제안을 수용했다. 민주당 출신인 그는 “반도체에 여야가 따로 없다”고 했다. 곧 민주당 소속 김영록 전남지사도 특위에 합류했다. 글로벌 기술전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부와 국회의 전폭적 지원은 필수적이다. 반도체에만 여야가 따로 없는 게 아니다. 민생에도, 경제위기 극복에도 여야가 따로 없다. ‘비호감 국회’라는 냉소를 ‘일하는 국회’라는 기대로 바꿔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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