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상대는 적’이란 이분법 대신 ‘역지사지’해야 협치 가능”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1 13:0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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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희상 전 국회의장 “‘노태우·김대중 모델’ 참고해야” 
“승자독식 체제 바꿔야 사생결단식 한국 정치문화 변화 가능”

후반기 국회가 공전 한 달째를 넘어섰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국회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의 한숨은 외면한 채 오히려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해법은 없을까. ‘의회주의자 문희상’에게 물었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맡았던 문희상 전 의장은 누구보다도 협치와 통합을 강조하는 의회주의자다.

그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의장은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적 아니면 동지’라는 이분법적 정치문화를 낳고, 그런 정글의 법칙이 적자생존의 싸움을 낳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는 사생결단식 승자독식 체제가 아닌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분산시키는 ‘제도화’가 이뤄져야 국민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가 21대 후반기 원 구성을 못한 지 한 달이 됐다. 무엇이 근본 문제일까.

“매우 어려운 문제다. 국회의장으로서 일선에 있을 때도 해법을 찾기 어려웠다.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적 아니면 동지’라는 이분법적 문화다. 이를 고치지 않으면 죽기 살기로 싸우는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려면, 법치주의(rule of law)와 삼권분립(check and balance) 모두가 실행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사실 2년마다 비슷한 모습이 반복된다.

“한국 정치는 헌정 이후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점철됐다. 수십 년간을 적 아니면 동지라는 이분법 속에서 지냈다.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은 늘 국민이었다. 4·19 혁명과 6·10 항쟁으로 군부독재를 끝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자 촛불혁명으로 다시금 돌려놨다. 계속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제도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화가 필요할까.

“현재의 한국 정치 문화로는 지금 같은 국회 공전의 악순환은 반복될 거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분산시켜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니면 대통령 중임제를 통해 실질적인 책임 정치를 구현시켜야 한다. 지금은 ‘제왕적 무(無)책임제’다. 유럽식 내각제나 미국식 중임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바꾸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 반복될 거다.”

왜 국회 공전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적하나.

“지금 한국 정치는 대통령 자의대로 하는 체제다. 선거에서 이기면 제왕적 권력을 누린다. 한국 정치 문화의 가장 큰 특성은 승자독식이다. 승자독식 체제에서는 적 아니면 동지라는 이분법만 살아남는다. 한국 정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규정하는 문화 속에서는 적자생존의 싸움 밖에 일어날 게 없다. 승자독식 체제에선 전임 정부의 모든 걸 부정하고 적폐청산에 나서기 쉽다. 대부분 그렇게 된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걸 가진다. 그러니 선거를 앞두고 사생결단 싸움만 한다. 악순환이다.”

대안은 없을까.

“현실에서 협치에 성공했던 두 모델이 있다. 보수의 노태우 모델과 진보의 김대중 모델이다. 노태우 정부는 군사정부였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의회주의자였다. 의회에 간섭하지 않고 의회 결정을 존중했다. 의회도 존중받을 만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원활한 협상과 소통으로 협치를 끌어냈다. 당시 3당 원내총무가 합의하면 바로 협치로 이어졌다.”

김대중 모델은 무엇인가.

“김 전 대통령은 인사로 협치를 이끌었다. 김종필, 이한동, 박태준 등 보수 측 인사를 중용했다. 진보 진영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탕평인사를 했다. 통합형 인사에 대해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주도하니 협치가 가능해졌다. 협치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하고 있다고 보나.

“윤 대통령도 의회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검찰 수사권 입법 축소 법안에 여야가 합의해서 각각 의원총회에서 추인까지 받을 사안을 장관도 아니고 장관 후보자의 말 한마디로 무산시켰다. 사실상 대통령이 관여해 국회 합의를 뒤집은 것이다. 말로만 통합을 외치고, 실제로는 의회가 합의한 것마저 무산시키니 무슨 협치와 통합이 되겠나.”

지금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상대는 적이 아니다.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고, 규정하고, 몰아세우면 극한 대치의 싸움 밖에 남는 게 없다. 보수의 노태우 모델, 진보의 김대중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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