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잇따르는 산재사고…중대재해처벌법 있으나마나?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4 17: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 시행 이후 근로자 사망자 수 1년 전보다 9명 줄어…효과 미미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 임직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 임직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SPC 계열사 제빵공장 근로자가 근무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지 8일 만에 또 다른 계열사 공장에서 근로자의 손가락이 절단됐다. 경기 안성 신축 공사장에서 추락한 5명의 근로자 중 치료 중이던 1명이 숨지면서 사망자가 3명으로 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노동자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올초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SPC계열사의 잇따른 노동자 사고에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경찰과 관계부처도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SPC 사고 수사전담팀은 24일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고자 합동감식에 들어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담당자 20명은 오전 11시부터 평택시 추팔산업단지 내 SPC계열 SPL 제빵공장 사고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부는 강동석 SPL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경찰은 앞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과 SPL 평택 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SPL 제빵공장 내 안전관리 업무를 하는 회사관계자 B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 

추락사고로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안성시 저온 물류창고 신축 현장의 시공사인 SGC이테크건설 대표이사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노동부는 이날 SGC이테크건설 안찬규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SGC이테크건설과 하청업체인 삼마건설, 제일테크노스의 현장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노동부는 관련 수사를 마무리한 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 또한 노동부와 별도로 현장소장 등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산업재해 예방 및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올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의 변화를 실감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해당 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올해 1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8개월간 중대 산업재해 443건이 발생해 446명이 사망하고 110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의 사고 비중은 전체 443건 중 35.2%(156건)나 차지했다. 고용부 통계에서도 같은 기간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432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9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법 시행을 앞두고 업계에 돌았던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법 시행 이전에는 사업주들이 안전보건 체계 마련에 박차를 가하면서 지난해 산재가 감소했지만, 법 시행 이후부터 경영계를 중심으로 법과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긴장감이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산재 사망자를 목표대로 700명대로 줄이기 위해 산업 현장 점검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안전 불감증과 노동 경시 풍조가 현장에 만연돼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제도적인 미비점을 보완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가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SPC 사고에서도 주·야간 2개조가 12시간씩 장시간 근무하고 휴식시간에도 근무를 멈추지 않는 노동환경이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부가 구상 중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한 추가 논의도 시급해졌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우리나라 산재 사망사고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관련 로드맵을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었다. 산업 현장을 안전하게 개선할 수 있도록 노사가 자율적으로 예방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 주로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