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이 50조로…김진태가 쏘아올린 ‘불신’의 시한폭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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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진화나섰지만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 일파만파
김진태 강원도지사(오른쪽)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월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의 대전환! 강원도가 시작합니다'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김진태 강원도지사(오른쪽)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월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의 대전환! 강원도가 시작합니다'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금융시장이 '레고랜드발(發) 후폭풍'에 출렁이고 있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보증채무 지급 불이행(디폴트) 선언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한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부가 '50조원+α' 자금 투입을 발표하며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 경색을 막을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선제 대응'을 강조해 왔던 윤석열 정부의 리스크 관리에도 다시 한 번 경고등이 켜졌다.

24일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부는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를 둘러싼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태 진화에 돌입했다.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 50조원이 넘는 대규모 긴급 자금을 투입해 채권 및 금융시장 전반을 강타한 '불신의 그림자'를 걷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지방자치단체 보증 거부 사태'로 인한 충격파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이어진다. 이번 사태가 금융 시장의 근간인 '신뢰'를 망가뜨렸고,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사태를 키웠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이 초유의 패닉에 빠진 건 지난달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관련 개발을 진행한 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기업회생 신청 방침을 밝히면서다. GJC는 2020년 11월 레고랜드 사업 자금조달을 위해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2050억원 규모의 자산담보기업어음(ABCP)를 발행했다. 

레고랜드 사업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던 상황이었지만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섰기에 신용평가사들은 이 ABCP에 1등급을 매겼다. 지방정부가 보증을 선 만큼 '뒤탈'이 없을 것이란 강력한 '신뢰'가 작동한 것이다. 이 ABCP는 증권사 10곳과 자산운용사 1곳이 사들였다.

그러나 김 지사가 취임한 지난 7월 이후 급격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급기야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빚 보증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원에 GJC의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회생 절차를 통해 법정 관리인이 GJC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갚겠다는 것이다. 

GJC 회생 신청으로 ABCP 차환 발행은 불가능해졌다. 지자체가 보증한 ABCP가 지급 불능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지난 5일 2050억원 규모의 ABCP는 최종 부도처리 됐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을 비롯한 경제부처장들이 10월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마친 뒤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을 비롯한 경제부처장들이 10월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마친 뒤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 지사가 쏘아올린 불씨는 곧장 시장 전반으로 옮아붙었다. 지방정부가 보증한 채권마저 지급 불능에 빠지는 사태를 마주한 투자자들은 빠르게 돈을 거둬들였고 시장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회사채 AA- 등급 3년물의 금리는 지난 20일 오후 기준 연 5.588%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BBB- 등급 3년물의 금리도 같은 날 연 11.444%로 연고점을 찍는 등 기업의 자금 조달에 적신호가 켜졌다. 초우량으로 분류되는 한국전력 등 채권마저 대규모 유찰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해 증권 업계, 기업들의 줄도산 우려도 가시화됐다. '불신'을 집어삼킨 공포가 가뜩이나 위기인 한국 경제를 덮친 것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는 전날 비상 회의를 열고 '50조원+α' 자금을 투입하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한 발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게 됐다.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로까지 치닫기 전 이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사실상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금융당국이 일제히 강조해 온 '선제적 조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야당은 김 지사가 전임 최문순 지사의 치적 지우기를 목적으로 보증을 거부하고 나서면서 한국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질타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대내외 악재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 됐다'며 김 지사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다. 

김 지사는 이날 레고랜드발 사태에 대해  "본의 아니게 자금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가 초래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원도는 처음부터 보증 채무를 확실히 이행하겠다고 했다"며 "도가 구체적인 변제 일정을 제시했고, 중앙정부도 고강도 대책을 발표했으니 금융시장이 속히 안정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GJC에 대한 회생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하면서 채무보증 지급금 2050억원을 예산에 편성해 내년 1월29일까지 갚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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