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린데탕트’인가…에너지 긴급위기 넘을 ‘실천전략’ 절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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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남북강원 그린데탕트 포럼’ 성료…“北 호응이 관건”
“핵은 눈에 보이는 도전, 기후변화는 눈에 안 보이는 도전”
전문가들 입 모아 거시적 안목-실용적 관점 ‘조화’ 강조
北 위협 억제하면서 화해협력도 추구해야 하는 역설적 환경
강창희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전 국회의장)
강창희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전 국회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원주한라대 제공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도발도 단순하지 않다. 일회성이 아니다. 북한은 주한미군과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놓고 전술핵 능력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지난여름부터 연이은 연합훈련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는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북한도 뒤질세라 군용기 150여대를 동원한 공중훈련을 사상 초유로 감행하는가 하면 9·19 남북 군사합의에서 규정한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에서 방사포를 발사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7차 핵실험도 임박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북에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고, 출범 초기부터 그린데탕트(green detente·녹색 화해협력)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지만 특별한 성과는 거두고 있지 못하다. 이런 가운데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등 남북한을 가리지 않고 영향을 주는 한반도의 또 다른 현실 변화에 주목하자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100년간 지구는 0.85도, 한국은 1.1도, 북한은 1.4도 올랐다

지난 10월19~20일 강원도 원주에서 개최된 ‘2022 남북강원 그린데탕트 포럼’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 40여명은 특별대담과 두 개의 세션을 통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기후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적응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포럼을 주최한 김응권 원주 한라대 총장은 개회식 환영사에서 “핵과 미사일이 눈에 보이는 도전이라면, 기후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전 지구의 기온 상승이 지난 100년간 0.85도였는데 남한은 1.1도, 북한은 이보다 더 높은 1.4도를 기록했다는 기상청 자료를 인용하면서  “한반도를 나누어 살면서 경계를 맞대고 있는 북한의 기온 상승과 그로 인한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총체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총체적인 대응 방향의 원칙으로 ‘거시적 안목’과 ‘실용적 관점’의 ‘조화’를 꼽았다. 

특별대담 연사로 나선 김창섭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전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는 “한국의 전기 에너지 연결망은 분단으로 인해 고립된 섬나라처럼 되어 있어 불안정성이 항시 내재되어 있다”며 생존과 위기 대응이라는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남북한과 중국이 연결되는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장기적인 구상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기후와 자연재해가 동북아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그 누구도 에너지 수급의 긴급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10월19~20일 강원도 원주에서 개최된 ‘2022 남북강원 그린데탕트 포럼’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 40여명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원주 한라대 제공 
지난 10월19~20일 강원도 원주에서 개최된 ‘2022 남북강원 그린데탕트 포럼’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 40여명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원주 한라대 제공 

“그린데탕트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분명히 이익”

정부와 민간, 지자체에서도 그린데탕트의 중요성과 실용적 차원에서 주목하는 모습이다. 박무결 통일부 개발지원협력과장은 “그린데탕트는 북한의 기후위기 대응과 적응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서 분명히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정유석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그린데탕트가 우리나라의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양철 강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보다 구체적으로 강원도 접경지역을 북한 에너지 믹스, 물류 인프라 측면에서 협력할 수 있는 테스트 베드(시험장)로 제안하며 이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강원도의 지역 인프라 강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포럼에서는 한반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제적 관점에 입각한 거시적 안목도 강조됐다. 포럼을 공동 주최한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파리협약 이후 전 세계의 평균 기온이 1.5도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러한 글로벌 움직임에 맞춰 새 정부가 준비한 그린데탕트 과제도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파트너들과 함께 협력할 때”라고 했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한반도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파리협정 하에서 자발적 탄소시장을 활용하고, 이때 ESG 경영과 연계해 기후위기 대응 사업이 활성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거시적 안목과 실용적 관점이 조화된 비즈니스 방향도 제시했다. 

 

북한의 호응이 관건…장기적 안목 중요

최근까지도 북한과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한스자이델재단의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국대표는 “국제적 시각에서 북한에 대한 ODA(공적개발원조) 측면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관점도 제시했다. 남북한은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상의 남북한 특수관계에 따라 내부적으로는 나라 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지만, 외부적으로는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국제사회 보편의 문제를 다룰 때는 북한을 하나의 나라로 보고 협력방향을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 것이다. 토마스 비에지보프스키 유럽연합 유락세스(EURAXESS) 한국사무소 대표 역시 “현재 논의하고 있는 그린데탕트에 북한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양자 및 다자협력 등의 노력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관건은 역시 북한의 호응 여부이다. 조건식 한라대 동북아경제연구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10월 현재 남북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시점에 나무 문제나 논의하느냐고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조 원장은 “지금 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가 언제 한반도에서 터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 후손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며 “우리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언젠가는 통일 한반도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한 단기적인 전술보다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강조했다.  

포럼을 기획하고 준비한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우리는 한편으로 북한의 위협을 ‘디터런스’(Deterrence·억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데탕트’(Detente·화해협력)를 추구해야 하는 역설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며 이를 ‘2D 패러독스(2차원적 역설)’로 정의했다. 

훗날 지금을 ‘2D 패러독스’의 시대로 기록한다면 한쪽에서는 안보와 국방을, 다른 한쪽에서는 화해와 협력을 논의하는 두 바퀴가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때로 기억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두 바퀴는 튼튼한 축으로 연결되어야 수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일방으로 치우친 논의보다 객관적이고 실사구시적인 관점으로 한반도와 남북관계 전반을 끊임없이 진단하고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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