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죄고 한쪽은 푸는 엇박자 정책에 딜레마 빠진 한은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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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안정특별대출 재개 여부에 고심
‘돈맥경화’ 우려에 금리 인상 폭 조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레고랜드 발 유동성 부족 사태에 한국은행이 고심에 빠졌다. ‘돈맥경화’ 우려에 채권시장에 자금을 공급해야 해서다. 이는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 공급을 줄이려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에 엇나가는 조치다. 통화정책 방향을 놓고 한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오는 27일 금튱통화위원회를 열고 적격담보대출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 대출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공공기관채와 은행채를 포함하는 방안이다. 은행들은 현재 한은으로부터 대출할 때 국채·통화안정화증권·정부보증채 등 국공채만을 담보(적격담보증권)로 제공한다. 이 적격담보증권에 은행채도 포함해달라는 게 은행들의 요청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보유한 은행채를 대출 담보로 활용할 수 있어 그만큼 자금 여력이 늘고 자금 조달 압박을 덜 받게 된다.

관건은 금융안정특별대출 시행 여부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18일 이창용 한은 총재를 만나 증권업계가 유동성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금융안정특별대출 재도입을 건의했다. 금융안정특별대출은 일반기업이나 증권사·보험사·은행 등 금융회사로부터 한은이 우량 회사채(AA- 이상)를 담보로 받고 대출해 주는 제도다. 비상시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다. 한은은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020년 5월 이 제도를 신설한 뒤 3개월씩 두 차례 연장을 거쳐 지난해 2월 종료했다.

한은 입장에서 금융안정특별대출을 재개하기는 쉽지 않다. 한은은 현재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안정특별대출 재개는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면서 한쪽으론 자금을 공급하는 격이다. 이는 트러스 감세안으로 홍역을 치렀던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과 유사한 행보다.

일각에서 자금 경색을 우려해 한은이 금리 인상 폭을 조절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는다. 박정우 노무라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11월 인상이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내 금융 스트레스의 증가와 성장 약화 징후가 한은의 정책 대응 기능을 재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0.25%포인트 수준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 번째)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장들이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 번째)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장들이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연준 4연속 자이언트스텝 유력에 '유동성' 변수까지 등장 

일단 한은은 기존의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거시 통화정책 운영에 관한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의 긴축 속도가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오는 11월 1~2일(현지 시각) 열리는 미국의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4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 단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은도 지난 23일 ‘해외경제포커스-최근 해외경제 동향’에서 “미국의 9월 실업률(3.5%)이 여전히 낮은 수준으로 보였고 근원 인플레이션도 오름세를 지속했다”며 “최근 경제지표를 고려할 때 4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12월 FOMC에서 빅스텝(0.5%포인트 인상) 및 내년 1월 추가 인상을 통해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이 내년 초 4.75%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한·미 금리 차이 폭을 고려해야 하는 한은의 입장에서는 ‘채권 시장’이라는 없던 변수의 등장은 통화정책 결정에 고심을 더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 한은은 오는 11월 24일 올해 마지막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핀셋 조치로 안정을 도모하겠지만 적극적인 지출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신용이 중요한 채권 시장이 정부의 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얼마나 빨리 안정을 되찾느냐가 11월 금통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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