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폭되는 ‘조상준 사직’ 미스터리…국정원장도 몰랐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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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원장 건너 뛰고 대통령실에 사의 표명
국감 당일 면직처리…배경 두고 ‘루머’ 확산
임명 넉 달 만에 사의를 표명한 뒤 하루 만인 10월26일 면직 처리된 조상준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사진은 조 전 실장이 대검 형사부장으로 있던 2019년 10월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 국정감사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발언을 듣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임명 넉 달 만에 사의를 표명한 뒤 하루 만인 10월26일 면직 처리된 조상준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사진은 조 전 실장이 대검 형사부장으로 있던 2019년 10월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 국정감사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발언을 듣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조상준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차관급)이 돌연 사퇴하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 발탁 4개월여 만에 갑작스레 물러난 데다, 사의 표명 과정에서 사실상 국정원장을 '패싱'한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26일 대통령실과 정치권에 따르면, 조 전 실장은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전날 대통령실의 유관 비서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조 전 실장의 사의 표명은 윤 대통령에게 곧바로 보고됐고,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재가했다. 임명 4개월에 불과한 국정원 2인자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이었지만, 후속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조 전 실장으로부터 직접 사의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원장은 전날 오후 8~9시께 대통령실 통보가 있기 전까지 조 전 실장의 '결심'을 몰랐다. 

조 전 실장의 갑작스런 사의는 이날 진행된 국정원 국감에서도 쟁점이 됐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이날 국정원 국감 도중 기자들에게 "국정원장이 어제 (오후) 8시에서 9시 사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조 실장 사의 표명) 유선 통보를 직접 받았고, 그래서 (대통령실로부터) 면직 처리됐다"며 "그에 대해 조 실장이 직접 원장에게 사의 표명 전화를 한 바는 없는 걸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정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도 동일한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윤 의원은 "(김 원장이 조 실장 사의를) 용산(대통령실) 담당 비서관으로부터 유선으로 통보받았다고 한다"고 부연했다.

조 전 실장의 구체적인 면직 이유가 알려지지 않으면서 의혹은 더 증폭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과 국정원 모두 '일신상의 이유'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유 의원은 조 전 실장 사의 배경에 대해 "일신상의 사유로 파악이 될 뿐, 구체적인 면직 이유에 대해서는 국정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윤 의원 역시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국정원에서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2020년 1월10일 당시 인사이동을 앞둔 대검찰청 검사장급 참모진들이 법무부에 보직변경 신고를 하러 가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조상준 대검 형사부장,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 ⓒ 연합뉴스
2020년 1월10일 인사이동을 앞둔 대검찰청 검사장급 참모진들이 법무부에 보직변경 신고를 하러 가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조상준 대검 형사부장,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 ⓒ 연합뉴스

대통령실 "일신상의 이유…원장 패싱 아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자 국정원 '2인자'인 조 전 실장이 국감을 하루 앞두고 돌연 사퇴하면서 각종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원장과의 알력설, 방위산업 관련 비리 연루설, 음주운전설, 건강이상설 등 미확인 루머들이 급속도로 퍼졌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페이스북에 "국정원의 왕실장, 조상준 기조실장께서 국정감사 개시 직전 사의 표명했다는 TV 속보에 저도 깜놀"이라며 "인사 문제로 원장과 충돌한다는 등 풍문은 들었지만,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썼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내부 알력설 또는 비리 연루설, 음주운전설 등을 묻는 취재진에 "지라시(정보지)를 근거로 답변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해 보인다"며 "개인적 사정으로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고 그것이 수용된 것이다. 개인적 사유이기 때문에 저희가 더 이상 밝혀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패싱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은 "임명했던 것도 대통령이고 면직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며 "따라서 대통령에게 의사를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조 전 실장이 사의 표명 의사를 대통령실로 직보했다는 점에서 '패싱'과 '내부 갈등설' 논란은 불가피 할 전망이다. 

조 전 실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99년 검사로 임관했다.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 대검 수사지휘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등을 지냈다.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수사로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19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때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그러나 이듬해 추미애-윤석열 충돌 과정에서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사실상 좌천됐다. 이후 사직서를 내고 검찰을 떠난 조 전 실장은 국정원 입성 전까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변호를 맡았다.

그는 지난 6월 국정원 조직과 예산 등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기조실장에 전격 발탁됐다. 조 전 실장 임명 후 국정원은 전직 국정원장들을 정조준했다. 서훈·박지원 두 전직 원장에 대한 유례 없는 고발 조치를 단행했고, 조직 내 물갈이도 본격화했다.

국정원은 동시에 문재인 정부 때 좌천됐거나 퇴직한 간부들을 1급 간부로 임명했고, 전임 정부에서 승진한 간부들은 퇴직 수순을 밟았다. 조 실장은 국정원 원훈을 1961년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서 쓰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하는 작업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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