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글래디에이터》를 만났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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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 넷플릭스 글로벌 1위 올라
한국 예능 최초…‘피지컬 판’ 오징어 게임에 전 세계가 열광한 이유

“《오징어 게임》이 《글래디에이터》를 만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실린,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을 다룬 리뷰 제목이다. 성별과 인종 구분 없이 ‘최고의 몸’을 찾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피지컬:100》에는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선수, ‘도마 황제’ 양학선 선수, 격투기 추성훈 선수를 비롯해 레슬링 국가대표 장은실 선수, 운동 유튜버 심으뜸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화제는 열풍으로 번졌다. ‘생존’과 ‘피지컬’을 연결한 이 예능은 공개 보름 만에 한국 예능 최초로 넷플릭스 글로벌 1위에 오르며 프로그램의 피지컬을 입증했다. 《피지컬: 100》은 그동안의 한국 예능과 어떤 결이 달랐기에 이토록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걸까.

‘몸’에 집중…예능적 자막도 없앴다

《피지컬: 100》은 ‘몸’이라는 보편적인 소재에 집중했다. 제목 그대로 ‘피지컬’ 자체를 보여준다. 프로그램에 붙은 별명도 ‘근징어 게임’이다. 출연자의 대결 자체만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서로 편을 나눠 싸우거나 갈등이 고조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특성은 옅어졌다. 최근 미국 비평사이트 IMDb에도 《피지컬: 100》에 대한 이례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시청자들은 “미국 서바이벌은 사소한 갈등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갈등을 강조하는데, 《피지컬: 100》은 다르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갖추는 게 좋다”고 평가했다.

경기에서 패하면 탈락한다. 구조는 간단하다. 경기 내용마저 단순하다. 오래 매달리기, 공 뺏기, 모래 나르기, 배 옮기기 등의 경기는 특별한 룰을 알지 못해도 볼 수 있는 경기다. 복잡한 룰을 사용하는 게임이 아닌, 단순한 경기를 통해 경쟁한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경기를 통해 보여주는 원초적인 대결, 마치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결투 같은 장면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해외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자막 역시 마찬가지다. 배경 설명이 필요한 요소와 예능적인 자막은 최대한 줄였다. 자막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더하는 요소지만, 한편으로는 몰입을 방해하고 편견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효과음이나 표정을 나타내는 스티커 이미지 등 예능 프로그램에 수반되는 요소들도 붙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봤을 때 정서적 문화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최대한 배제했고, 예능적인 자막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피지컬: 100》을 만든 장호기 PD의 설명이다. 단순한 경기 속에서 ‘날 것’을 보여주자는 의도는 통했다. 장 PD는 “의도적인 편집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리얼함을 가지고 승부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담백하게 담는 것이 차별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악마의 편집’ 배제…MC·패널 없는 진행

보통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취지와 다른 경쟁 구도가 들어간다. ‘빌런’이 등장하고, ‘에이스’의 활약을 질투하며, 팀원들 간의 ‘불화’를 조장하는 경우가 필수적으로 삽입돼 있다. 《피지컬: 100》은 이런 구도를 그려내는 스토리와 악성 편집을 최대한 배제했다. 이종격투기 선수 박형근이 여성 보디빌더 김춘리를 제압하는 장면이 논란이 됐지만, 대결에 ‘성별’은 없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후의 혼성대결들에서도 입증됐다. 그 과정에서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되기도 했다. 김춘리 선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정당한 대결에 대한 불만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란을 일축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패널의 부재다. 《피지컬: 100》은 예능이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나 패널이 따로 없다. 보통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평가자나 멘토라는 이름으로 연예인들이 등장해 프로그램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출연자들을 평가하거나 그들의 감정에 동조하는 모습, 탈락을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시청자들의 리액션을 유도한다. 《피지컬: 100》이 체력을 기반으로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데서 채널A의 《강철부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도의 MC와 패널이 없다는 점은 《강철부대》와 달랐다. 이들이 없기에 시청자들의 시선은 온전히 참가자들, 그리고 그들의 대결에만 쏠린다.

출연자들은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서로를 응원한다. 자신은 탈락했지만 공중에 매달려 있는 다른 참가자의 이름을 부르며 버티라고 응원하고, 잡아당기고 있는 무거운 토르소를 놓치지 않게 격려하는 장면도 부각됐다. 격투와 대결 이후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 박수와 악수와 포옹이라는 서사가 이어졌다.

임팩트 강한 연출…토르소의 역할

땀이 흘러내리고, 동맥이 두드러지고,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힘을 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쓰이는 특수 카메라를 통해 참가자들의 육체를 강조한 것이다. 같은 장면이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참가자들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단순한 게임이 무엇보다 화려해질 수 있는 장치다. 서바이벌을 강조하는 무대 장치, 의상, 음향도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 사운드트랙 제작에 참여한 김성수 음악 감독이 제작에 합류했고, 영화 《기생충》 《옥자》의 최세연 의상 감독, BTS 월드 콘서트에 참여한 유재헌 미술감독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프로그램의 연출을 극대화하는 것은 토르소다. 출연자들의 신체를 본떠서 만든 토르소는 출연자들 ‘자기 자신’이다. 패자부활전에서 ‘자신의 토르소’는 ‘지켜내야 하는 존재’로도 기능한다. 공중에 매달린 토르소들은 마치 출연자들의 운명처럼 여겨진다. 탈락자들이 자신의 토르소를 부수는 장면은 장 PD가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이다. 그는 “탈락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데, 통렬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가장 소중한 ‘몸’을 빼앗아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탈락자들이 마치 ‘도자기를 빚는 장인이 스스로 도자기를 깨듯’ 자신의 토르소를 깨며 괴로워했다는 설명이다.

이미 《피지컬: 100》의 영향력은 국내를 넘어섰다. 가디언은 “디스토피아 스릴러에 나올 것 같은 초인간적인 출연진이 잔혹한 미션들을 수행하는 내용인데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새로운 ‘몸’, 최고의 ‘피지컬’을 찾는 이 여정이 해외에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장 PD는 “시즌1은 한국에서 제작했지만, 대륙별 혹은 문화권별로 제작해보고 싶다”며 “전 세계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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