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아 죽고, 굶어 죽었다…지켜내지 못한 아이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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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신호’ 있었지만…해마다 40명씩 학대로 목숨 잃어
2월11일 인천 한 장례식장에서 학대로 숨진 초등학교 5학년생 A(12)군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공룡 인형을 두 손에 든 아이는 영정 액자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A군의 의붓어머니 B(43)씨와 친아버지 C(40)씨는 각각 아동학대치사와 상습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 연합뉴스
2월11일 인천 한 장례식장에서 학대로 숨진 초등학교 5학년생 A(12)군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공룡 인형을 두 손에 든 아이는 영정 액자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A군의 의붓어머니 B(43)씨와 친아버지 C(40)씨는 각각 아동학대치사와 상습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 연합뉴스

공룡 인형을 들고 환하게 웃는 아이. 7살 때 친모가 사 준 내복을 12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입고 있던 아이는 온몸 한가득 피멍을 안은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뼈가 살을 뚫고 나올 정도로 말라가는 동안, 몸 구석구석 살이 아닌 멍이 차오르는 동안에도 아이의 일상을 제대로 들여다 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 또 다른 아이가 있다. 한겨울 사흘간 홀로 집에 방치됐던 아이는 가장 안전해야 할 바로 그 장소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생후 20개월, 작은 아이의 몸이 세상을 향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오랜 기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저출생 국가로 연일 '인구 위기'를 부르짖는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역대 정부도, 정치권도 해마다 줄어드는 '출생아 수'에 집착하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지켜내는 데는 실패했다. 

12일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 2020년 43명, 2021년 40명으로 연평균 38명에 달한다. 올해는 벌써 2명의 아이가 부모로부터 맞거나 수일 간 방치된 끝에 목숨을 잃었다. 

2021년까지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연령대는 0세부터 만 3세까지 영유아가 26명으로, 전체의 65.0%를 차지했다. 모진 학대를 받다 사망한 아이들 중 절반인 19명(47.5%)는 교육기관을 다니지 않아 사회 감시망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12살 초등학생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계모와 친부가 2월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12살 초등학생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계모와 친부가 2월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위험 신호' 있었지만 이번에도 놓쳤다

인천에서 친부와 계모의 반복된 학대 끝에 숨진 12세 A군도 장기간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친부와 계모는 유학을 이유로 '홈스쿨링'을 하겠다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여러 신호가 있었지만 학교와 교육부는 아이의 위기 상황을 제때, 제대로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 

A군은 열흘 넘게 등교를 하지 않고 출석도 인정되지 않는 '미인정 결석' 학생인 동시에 집중관리대상자로 분류된 상태였다. 그러나 학교는 결석 일주일 만인 지난해 12월 A군 계모가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방문한 것을 끝으로 사실상 아이 상태 확인에 손을 놓고 있었다. 학교는 지난해 연말과 올해 1월 사이 A군 계모에 3차례 유선으로 연락했지만, 아이의 온몸에 보라색 멍이 뒤덮일 때까지 별도의 가정방문은 하지 않았다.   

생후 20개월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사흘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A(24)씨가 2월4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생후 20개월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사흘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A(24)씨가 2월4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인천의 한 빌라에서 숨진 생후 20개월 B군도 사망 전 위험 징후를 알리는 정보가 있었지만 정부는 이 데이터를 읽어내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예방접종과 영유아 건강검진 여부 등 총 44종의 정보를 분석해 위기 아동을 발굴한다. 

그러나 B군에게는 유명무실했다. B군은 생후 4개월 이후 필수 예방접종을 단 한차례도 받지 않았고, 최근 1년간 의료기관 진료 기록도 전무했다. 20대 생모가 사흘 간 집을 비운 사이 아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2017년 3만923건에서 2021년 5만2083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고 건수는 늘고 있지만 사망 아동 감소로는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 확보를 통한 인력 확보, 촘촘한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안전하지 못한 가정, 위험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사후 조치까지 이어가는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선 국가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852명, 아동보호전문기관은 85개소, 학대피해아동쉼터는 115개소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나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학대 피해를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대 당한 아이를 원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점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2021년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3만7605건 중 3만1804건(84.6%)의 아동이 분리 조치 없이 원가정 보호(보호체계 유지)가 결정돼 가정으로 돌아갔다. 학대 가해자 절대 다수가 부모(3만1486건·83.7%)인데, 피해 아동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은 채 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15%에 육박한 아이들이 가정에서 재학대 피해를 당했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아동보호 시스템에 구멍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동을 방임과 학대로부터 보호하고, 안전한 환경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한층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과 지자체 단위의 촘촘한 관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현장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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