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론’ 부른 당정분리 잔혹사 [김형준 쓴소리 곧은 소리]
  •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db827@naver.com)
  • 승인 2023.02.17 12: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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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때 정동영’ ‘박근혜 때 김무성’ ‘윤석열 때 이준석’ 최악의 결과 초래한 당정 트라우마
‘당정분리=선, 당정일치=악’은 이분법적 사고…대통령, 당무 개입 지나치면 위기 때 속수무책

국민의힘 새 당대표를 뽑는 3·8 전당대회 초반부터 당정분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오랜 논쟁이 촉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견제하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의사를 표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를 두고 노골적인 선거 개입으로 당정분리를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1호 당원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김기현 후보는 “대통령과 자꾸 어긋난 길로 가고, 당정분리라고 하면서 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견제해야 한다고 하면 왜 여당을 하나. 야당을 해야지”라고 응수했다. 여권 일각에선 프랑스의 사례를 따라 대통령이 집권당의 명예대표가 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 관계 논쟁은 그동안 집권세력 내부에서 벌어졌던 ‘당정분리 잔혹사’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당정분리 문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불거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분리를 선언했다. 집권 초반(2003~04년) 당정분리를 통해 정당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당 총재직을 포기하고 정당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그런데 당정분리 원칙을 지켜 나가는 과정에서 당 장악력 약화로 당내 갈등이 증폭됐다. 가령, 집권 초기 대북 송금 특검법안을 놓고 청와대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집권당 새천년민주당 간 적대관계가 형성됐고, 급기야 집권당 지도부가 제1야당과 손잡고 노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를 밀어붙였다.

‘과도한 당정분리’가 갖는 위험성은 차기 유력 대권후보가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10개월 전에 유력 대권후보로 부상한 정동영 세력들의 압박으로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을 떠밀리듯 탈당했다. 이 사례는 한국 정치 상황에서 섣부른 당정분리가 얼마나 위험한 정치실험인지를 잘 보여준다. 당정분리를 부르짖고 실천했던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당정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재검토해 봐야 한다”며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누가 책임지나. 책임 없는 정치가 돼버렸다”고 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11일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및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 환송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리자형·종속형·매버릭형·독립형

정치권의 ‘당정분리’ 논쟁은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의 관계 적절성에 대한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집권당 대표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당정일치에 따른 ‘관리자형’과 ‘종속형’이 있고, 당정분리에 기반한 ‘매버릭(maverick)형과 독립(자율)형이 있다. 관리자형은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 당대표가 대통령실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 움직이며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원만하게 당무를 이끈다. 이런 관리형 대표 체제는 당정 관계의 안정을 담보할 수 있지만 집권당이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면서 정권이 공멸할 수 있다.

종속형은 집권당 대표가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지만 대통령과 당 대표가 상하 종속적 관계를 형성하는 유형이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은 8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 이정현 후보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이 신임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대통령과 맞서고 정부와 맞서는 것이 마치 정의이고 그게 다인 것처럼 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그건 여당 소속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했다. 당정 관계가 지나치게 종속·밀월 관계로 가는 것의 치명적인 한계는 대통령이 결정적인 위기 순간을 맞이할 때 당대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균형감각이 마비된 채 오로지 박 대통령의 방패 역할에 급급했던 이정현 대표는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한편, 매버릭형 대표란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대통령실과 수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독자적으로 자기 정치를 하는 유형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비박의 김무성 대표, 윤석열 정부 취임 직후 이준석 전 대표가 이에 해당한다. 독립형은 대통령이 당무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집권당 대표가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이런 당대표 체제의 최대 약점은 대통령 따로, 당 따로가 되면서 당이 대통령을 흔들어 ‘책임 없는 정치’가 판을 칠 수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초반에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보여준 모습과 메시지는 당정분리에 기반한 매버릭형과 독립형 대표보다 당정일치에 부합하는 관리형 또는 종속형 대표를 선호하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대표로 윤석열 정부와 보수의 운명이 달린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의 얼굴과 윤 대통령이 이뤄낸 성과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당정분리는 선이고 당정일치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美는 자당 후보 지원 유세, 佛은 당 인사 관여

우리의 정치 구조상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위해 대통령이 일정 수준 당무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당정 관계의 두 원칙 사이에 조화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불가피하지만 당대표를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당을 하위 조직으로 보는 극단적인 당정일치는 피해야 한다. 또한, 차별성과 자율성이 지나쳐 안정성과 책임성을 훼손하는 극단적 당정분리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정치 선진국인 미국과 프랑스에서 대통령의 당무 및 선거 개입은 책임정치 차원에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령,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각종 선거와 관련해 자당 후보의 승리를 위한 선거 유세 지원에 나선다. 당 전국위원회, 상·하원 의원 및 지자체장 재정자립을 위한 후원 행사에도 수시로 참석한다. 

프랑스 대통령은 명예당수로 당대표 및 상·하원 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 인사와 관련해 지지 의사를 보이는 등 당무에 적극 개입한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다. 당정분리를 처음 도입한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책임 없는 정치가 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역설할 만큼 정치권은 진영 논리를 넘어 정당민주주의와 책임정치에 부합하고 한국 정치 실정에 맞는 당정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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