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즈5 시작됐다…‘마블민국’의 사랑은 돌아올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8 12: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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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의 부활 이끌어야 할 ‘앤트맨’의 무거운 어깨
《앤트맨3》로 페이즈5 열어젖힌 마블의 과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더 마블스》도 올해 출격

마블의 페이즈5가 시작됐다. 문은 앤트맨이 열었다. 2월15일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앤트맨3》)가 한국에서 개봉했다. 마블 스튜디오의 사장 케빈 파이기는 《앤트맨3》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가장 중요한 영화”라고 말했다. ‘차세대 어벤져스’로서 마지막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칠 영화. 그것만으로도 《앤트맨3》가 짊어진 무게는 상당하다.

한 가지 과제가 더 있다. 한국에서의 흥행이다. ‘마블민국’이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에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로 마무리된 마블의 페이즈4 영화들은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페이즈5의 시작과 함께 마블의 새로운 흥행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앤트맨의 어깨가 더 무거운 이유다. 왜 굳건할 줄 알았던 ‘마블민국’의 팬덤은 옅어진 걸까. 앤트맨은 마블의 전성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위기에 빠진 마블을 구해낼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중심 히어로의 부재와 혼돈

그동안 마블이 쌓아온 시간은 길고도 깊다. 시작은 2008년 《아이언맨》이었다. 그와 함께 시작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였으니 어느새 장장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서사는 방대해졌다. 이 방대함을 커버하기 위해 마블은 ‘페이즈’라는 단위를 통해 복잡한 세계관을 구분해 왔다. 각자의 매력과 개성을 통해 팬덤을 만들어낸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앤트맨 등 많은 히어로가 페이즈3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장대한 피날레를 선보였다. 1400만 명의 한국 관객이 이에 화답했다. 히어로들이 하나로 뭉쳤을 때 최대의 흥행이 이뤄진다는 마블의 공식은 주효했다.

그렇게 최종장과 같았던 페이즈3가 끝난 뒤, 마블은 ‘혼돈의 시기’를 마주했다. 어벤져스의 중심 축이었던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사라졌다. ‘선대 어벤져스’ 일부가 퇴장한 상황에서 세계관 확장과 세대교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마블의 새로운 과제였다. 2021년 개봉한 《블랙 위도우》가 페이즈4의 포문을 열었고, 아시안 히어로 샹치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을 통해 베일을 벗었다.

초인 히어로 10명이 등장한 《이터널스》에 이어, 2022년 기존 히어로 시리즈인 《토르: 러브 앤 썬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닥터 스트레인지2》)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주연배우가 세상을 떠나면서 페이즈4의 새로운 중심축이 돼야 할 블랙 팬서는 갑작스레 세대교체됐다. 페이즈4의 마지막 작품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2대 블랙 팬서와 ‘미래의 아이언맨’이 공개됐다.

중요한 캐릭터의 부재를 인정하고 서사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히어로나 ‘2대 히어로’를 등장시키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새 얼굴들은 기존에 형성된 마블의 팬덤에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이터널스》는 생소한 초인 히어로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작품이 가진 의미로는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의 역사를 쓰지 못했다. 《샹치》는 17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드라마틱한 서사를 기반으로 팬덤을 만들어낸 기존 히어로들과 달리, 새로 등장한 히어로들은 대중에게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는 평이다. 결집을 통해 히어로의 매력과 전투력을 보일 새도 없었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페이즈4의 불친절한 서사

페이즈4 영화들 중 관객 수 500만 명을 넘긴 작품은 《닥터 스트레인지2》(558만 명)와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755만 명)뿐이었다. 단독 영화와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매력을 보여준 히어로들의 인기가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 영화들이다. 특히 《스파이더맨》은 1~3대 스파이더맨을 모두 한자리에 모으며 멀티버스라는 세계관을 직관적으로 보여줬다는 데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페이즈4에서는 영화가 ‘불친절하다’는 비판도 존재했다. 멀티버스는 영화의 세계관을 넓히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그 매력을 보여주지 않는 한 새로운 신규 관객의 진입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특히 영화를 100%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즈니의 OTT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콘텐츠를 봐야 했다. 디즈니플러스는 페이즈4에서 《완다비전》 《로키》 《문나이트》 《변호사 쉬헐크》 등 드라마 7편을 내놓은 바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 완다가 ‘흑화’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즈니플러스의 9부작 드라마인 《완다비전》이 선행 학습돼야 했다. 드라마를 보지 않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 《완다비전》의 요약본을 유튜브에서 보고 가라’는 팁이 공유되기도 했다.

기존에는 인기가 있었던 영화를 중심으로 단편이나 드라마가 구성됐다면 이제는 드라마가 영화를 잇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마블의 영화에 충성심을 보여온 관객이라도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시리즈를 보지 않으면 내용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 OTT 콘텐츠와 극장 콘텐츠를 연결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려고 했던 마블은 오히려 마블에 로열티를 지녔던 일부 관객에게 진입장벽을 만들어버렸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게 했고, 일부 영화를 건너뛰게 되는 현상도 일어났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2021) 스틸 및 포스터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2022) 스틸 및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히어로의 매력과 ‘결집’의 성공 공식

마블의 팬덤은 히어로들 각자의 매력, 영화를 통해 접하는 흥미로운 세계관, 그들이 뭉쳐서 보여주는 어벤져스의 힘이라는 삼각형에서 나왔다. 《앤트맨3》는 비록 디즈니플러스 《로키》 시즌1과 궤를 함께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드라마 감상은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볼 때 진입장벽이 높지는 않다. 앤트맨의 매력도 분명히 있다. 시즌1과 2를 통해 이미 팬덤을 형성한 히어로다. 그 자신이 말하듯 ‘운이 좋은’ 앤트맨은 어떤 히어로보다도 평범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다. 중년이지만 시즌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언제나 가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그의 매력이 페이즈5를 힘차게 열어젖히는 힘으로 얼마나 작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가족 관계를 더 깊이, 복잡하게 파고 들어가는 《앤트맨3》는 가족주의적 지향점이 과한 부분도 있지만, 페이즈4에서 잠시 무뎌졌던 가족애를 마블이 대놓고 발산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빌런의 매력도 히어로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다. 새롭게 등장하는 빌런인 정복자 ‘캉’에게는 인피니티 사가의 메인 빌런이었던 타노스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숙명이 있다. 핑거 스냅으로 인한 인류 절반의 소멸과 같은 극한 위기 속에서 맞서 싸울 때 히어로들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제 마블에게 ‘친절함’은 이미 기대하기 어렵다. 멀티버스를 지나 페이즈5의 본격적인 배경이 되는 것은 ‘양자 영역’이다. 이미 페이즈3의 우주, 페이즈4의 멀티버스를 거쳐 양자 우주까지 뻗친 마블에 세계관을 알기 쉽게 설명하라는 주문은 통하지 않는다. 마블의 배경이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갈수록, 새로운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얼마나 황홀하고 흥미롭게 펼쳐놓는지가 중요해진다.

《앤트맨3》의 페이턴 리드 감독은 “양자 영역은 세계관 창조 작업의 끝판왕”이라며 “도시와 문명을 디자인할 뿐만 아니라, 그 안의 논리와 역사를 창조하고, 그 안을 온갖 생명체와 존재, 구조물로 채워야 했다. 전자현미경 사진부터 1970~80년대 헤비메탈 잡지 사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서 시각적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비록 어렵지만, 양자 영역은 관객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관객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류와 문명의 발전 양상은 《앤트맨3》에서 화려하게 등장한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양자 세계와 빌런 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양자 세계와 빌런 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블 발목 잡은 PC, 무게감 조절이 관건

영화에 ‘다양성’을 도입하는 것은 마치 마블의 과제처럼 여겨진다. 캐릭터와 상관없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을 일컫는 ‘화이트 워싱’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다원주의를 수용하려는 시도다. 민족과 언어, 성차별 등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초반에는 성공적이었다. 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에 대한 긍정적인 호응이 나오며 영화는 흥행으로 이어졌고, 흑인 히어로인 《블랙 팬서》에 대한 팬덤도 굳건했다.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페이즈4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마블의 시도는 급물살을 탔지만, 모든 히어로를 다양성이라는 틀에 맞추는 것은 어려웠다.

《이터널스》는 원작 만화와 달리 유색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등 인물을 한꺼번에 부각시켰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인물이 평면적인 캐릭터가 돼버렸다는 비판이 존재했다. 상업영화의 팬덤은 ‘재미’에서 나온다. 히어로로서의 강력함과 캐릭터 특유의 매력 대신 다양성과 사회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마블의 오락적인 매력이 반감됐다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영화에 녹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게감을 조절해 캐릭터의 매력과 고유의 스토리를 지켜내는 것이 마블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

이제 《앤트맨3》가 시작한 게임은 5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받는다. 6년 만에 돌아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다. 가모라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던 피터 퀄이 위기에 처한 은하계 동료를 지키기 위해 가디언즈와 함께 힘을 모은다. 제임스 건 감독이 경쟁사인 DC로 가게 되면서 사실상 마지막 시리즈가 된 만큼, 아쉬운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리즈의 최종편이다. 그만큼 가장 방대한 스토리와 대규모 액션 신을 그려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극장가 성수기인 7월에는 《캡틴 마블》의 후속편인 《더 마블스》가 온다. 최초의 무슬림 여성 히어로인 미즈마블이 캡틴 마블, 모니카 랭보와 함께 팀을 이뤄 우주를 지키기 위해 협력한다. 마블이 디즈니플러스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새로운 히어로이니만큼, 시리즈 관람이 필수적인 부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캐릭터 설정뿐 아니라 스토리에서도 문화적 다양성을 녹여낸 《미즈마블》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의 흥행에 힘을 보태는 이는 배우 박서준이다. 박서준은 비중은 크지 않지만 눈길을 끄는 배역을 맡는다. 캡틴 마블의 남편이자 음악 행성의 왕자인 얀 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앤트맨3》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더 마블스》를 무기로 쥔 마블은 2023년 ‘마블민국’의 사랑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까. 이제 마블의 다섯 번째 페이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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