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멀어져 가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8 15: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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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 액션은 사이즈를 이용할 때 제맛
장점의 부재·빌런 캉의 흐릿한 존재감 아쉬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양대 축이던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퇴장 이후의 마블 행보를 바라보는 심정은 정점을 찍은 후 ‘떡락’하는 주식을 보는 기분이랄까. 히어로 영화를 향한 피로감과 거듭되는 실망 속에서 ‘다음 마블 작품은 괜찮겠지’ ‘그래도 마블인데 설마!’를 되뇌며 희망 고문하는 사이 페이즈4(《블랙 위도우》부터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까지)도 끝나버렸다. 도대체 뭘 보여줬다고! 세대교체라는 거대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그마저도 팬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한 페이즈4는 그렇게 마블의 시대는 저무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했다.

페이즈5의 문을 여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앤트맨3》)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했다. 팬들의 마음을 돌릴 회심의 일격까지는 아니더라도, MCU가 여전히 즐길 만한 오락영화라는 점은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앤트맨3》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마주했는데…누가 불렀더라. “점점 더 멀어져 가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양자 세계로의 본격적인 진입

사이즈 조절의 달인인 앤트맨 스캇 랭(폴 러드)은 인생역전의 산증인이다. 배스킨라빈스에서 해고된 생계형 전과자였다가, 원조 앤트맨 행크 핌(마이클 더글러스)의 선택을 받아 슈트를 물려받고, 어벤져스 일원으로 세계를 구하며 영웅이 된 인물. 세상은 성공신화를 좋아하는 법이고, 돈 냄새 잘 맡는 출판계는 그런 성공신화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타노스가 일으킨 ‘블립’(우주 생명체가 절반으로 사라진 사건) 사태 이후 현실로 돌아온 스캇 랭은 그사이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도 얻었다. 그가 쓴 책 제목은 ‘스캇 랭-작은 남자를 지켜라!’ 네이밍 참 절묘하다.

변한 건 스캇 랭만이 아니다. 금이야 옥이야 금지옥엽처럼 아끼던 딸 캐시(캐서린 뉴튼)도 몰라보게 자랐다. 양자 영역 관련 기계까지 만드는 과학영재로! 아이언맨이 살아있었다면 필시 ‘스타크 인더스트리’로 스카우트해갈 만한 재능이다. 그러나 재능은 곧 위기를 가져온다. 양자 영역에 신호를 보내는 기계 성능을 실험한 게 빌미가 돼 스캇 랭은 와스피인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 호프의 부모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과 행크 핌과 함께 양자 영역 안으로 빨려 들어가버린다. 출구 없는 양자 영역 안에서 헤매는 이들 앞에 나타난 건 누구? 마블이 빌런계의 차세대 주자로 밀고 있는 캉(조너선 메이저스)이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캐릭터의 횡적 확장을 위해 페이즈4에서 ‘멀티버스(다중우주)’를 힘껏 끌어안았던 마블이 페이즈5의 시작과 함께 전면에 내세운 건 ‘양자역학’이다. 마블 팬이라면 낯설지 않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후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희망이 돼줬던 게 바로 이것, 양자 영역을 통한 시간여행이었다. 《앤트맨2》에선 양자 영역에 갇혀 죽은 줄 알았던 재닛 구하기가 핵심으로 그려지기도 했었다. 페이즈5는 이 양자 영역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앤트맨3》의 전반과 중반은 이 양자 영역의 세계를 소개하는 그림들이 연신 펼쳐진다. 문제는 분명 다른 개념의 세계라는 건 알겠는데, 그 모습은 우리가 기존 우주 배경 영화에서 봐왔던 행성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양자 영역 세계 구현에 투입된 상상력이랄 게 별것 없다. 다른 언어를 쓰는 원주민, 기이하게 생긴 우주 생명체, 이들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존재들. 이는 가깝게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멀게는 《스타워즈》 시리즈 등에서 수없이 봐오지 않았나.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거대해진 배경이, 아기자기함으로 승부해온 앤트맨 특유의 개성을 경감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앤트맨》 시리즈가 MCU 안에서 개별적으로 사랑받은 건, 크기가 작아지거나 커지는 히어로의 능력을 비웃으면서도 그 매력을 다양한 액션에 영리하게 녹여왔기 때문이다. 장난감 기차 트럭 위에서 펼쳐지는 빌런과의 위트 넘치는 승부, 샤워 욕조 안에서 펼치는 수돗물과의 처절한 사투, 거대해진 앤트맨이 화물트럭을 킥보드 삼아 질주하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사물을 이용해 아기자기한 액션을 선보여왔던 장점이, 양자 영역으로 가면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크기 조절을 이용한 액션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판타지적인 세계 안에서만 이뤄지다 보니 그저 그런 SF물 속 크리처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유머가 이전만 못하다 보니, 이전 시리즈에서 거침없는 B급 유머를 차지게 날렸던 스캇 랭의 동업자 루이스(마이클 페나)의 부재가 더 허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 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것은 앤트맨 영화인가, 캉 영화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맞춰 달려야 하는 마블 동료들을 신경 쓰느라 개별 작품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지르지 못하는 건 마블 유니버스의 오랜 난점으로 지적돼 왔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심하다. 타노스의 대체재 역할을 할 빌런 캉에 대한 소개의 장으로 앤트맨을 소비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영화가 맥 빠지는 가장 큰 원인은 빌런 캉의 흐릿한 존재감이니 말이다.

마블이 타노스에 대적할 빌런으로 점지해 내세운 캉의 무기는 시간이다. 수많은 시간대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캉은 사실상 불사신이다. 죽으면 다른 시간대에서 시간여행을 해서 오면 되니,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가 ‘계속 존재하는 자’로 표현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 영역을 임팩트 있게 그려내지 못한 페이튼 리드 감독은 캉 역시 그리 매력적으로 매만지지 못한다. MCU 역사상 최고의 빌런이라고 하기엔 그의 파괴 본능 동기가 아직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고, 앤트맨 한 명 상대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모습에선 왜 그가 절대 지존인지 물음표만 남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건 앤트맨도 아니고, 와스프도 아니고, 캉도 아니고, 과학영재 캐시도 아니다. 그건 예상 밖의 인물. 《앤트맨1》에 등장했던 행크의 옛 조수이자 빌런인 대런 크로스(코리 스톨)다. 죽은 줄 알았던 대런이 모독이란 이름으로 돌아왔는데, 어쩌다가 왕바위 얼굴이 됐는지,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듯한 그 비주얼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모독을 통해 다시금 느낀 점. 앤트맨 시리즈는 역시 사이즈를 이용할 때 제맛이라는 것. 그런 장기를 놔두고 왜 엄한 곳에 가서 헛발질을 하고 있는지.

그런데 이것 참. 마블과 《앤트맨3》에 대한 아쉬움을 구구절절 써놓았지만, 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가 나오면 극장으로 달려가겠지. 이건 죽일 놈의 (마블) 사랑인 건가, 미련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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