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공약과 너무 다른 ‘당정일체론’…속내는?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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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당정일체 필요성, 역사가 증명”…정진석 “文정권 보라”
천하람 “당정일체 하면 당 망해”…김용태 “尹대통령, 공천개입 바라나”

“대통령이 된 저는 당의 사무와 정치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10일 대선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이같은 ‘당정분리’ 기조를 밝혔다. 하지만 약 1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당정일체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은 ‘당·정부·대통령이 같은 방향을 보고 나갈 수 있도록 소통하는 취지’라는 입장이다. 여기에 대통령을 ‘명예 당대표’로 추대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다만 당내에선 ‘당정일체론’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비윤(비윤석열)계에선 “당정일체로 가면 당이 망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당정일체를 추진하는 속내는 따로 있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열린 미래 우주 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열린 미래 우주 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盧·朴정권 때 ‘당정분리’로 어떤 비극 있었나

‘당정일체론’에 시동을 건 것은 친윤계 좌장 격인 장제원 의원이다. 그는 지난 1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정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 충돌했을 때 정권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됐는지 우리 정당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며 “미국은 대통령이 특정 대표 후보를 지지하고 프랑스는 대통령이 명예당수로 활동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가세했다. 그는 1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문재인) 정부 때도 청와대와 당·정부 간 유기적 협력체계 가동됐다”며 “이처럼 대통령을 탄생시킨 집권당과 대통령실은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어 국정 공동운명체로서 긴밀한 협력체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힘 당헌 8조 규정된 우리 의무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친윤계가 당정일체론을 띄운 이유는 과거 당정분리 시도 때의 역풍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차원으로 보인다. 당정분리는 앞선 정권들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당이 거수기 노릇을 했던 과거 등을 고려해 당정분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후 당정갈등이 심각해져 집권 세력의 분열을 초래했다. 결국 2007년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도 “당정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재검토해봐야 한다”며 후회한 바 있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은 당정분리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2016년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무성 당 대표의 공천파동을 야기했다. 결국 박근혜 정권은 총선 참패는 물론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극까지 겪어야 했다. 이후 정치권에선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 당정일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재차 나왔다.

김기현·천하람·안철수·황교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연합뉴스
김기현·천하람·안철수·황교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연합뉴스

“전당대회 변수에 대한 ‘플랜 B’…김기현 ‘탄핵’ 발언 경고 가능성도”

당내에선 ‘당정일체론’을 두고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자칫 과거 권위주의 시절 횡행했던 수직적 당정관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당정은 약간의 건강한 긴장도 유지해야 하는 관계”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비윤(비윤석열)계는 당정일체 추진의 ‘속내’가 따로 있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친이준석계인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이날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결국 ‘당정일체’는 한 목소리로만 가자는 의미”라며 “비주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얘기랑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당’은 국민의 목소리가 다양한 만큼 그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있어야 한다”며 “당정 일체가 되면 기본적으로 (당이) 망할 것”이라고도 일갈했다.

천 후보는 “문재인 정부 때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때문에 당에서 거의 자발적으로 당정일체를 선택한 것”이라며 “그러면서 당내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사라지게 됐다. 그러다보니 당정이 함께 폭주해 조국 사태를 필두로 망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억지로 이상한 용어를 만들어낼 시간에 폭넓은 지지를 받을 방안을 모색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일각에선 전당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윤 대통령이 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기현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 경우 ‘플랜 B’를 염두에 뒀다는 의미기도 하다. 또 국민의힘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혹시나 김 후보가 당 대표에 당선된 후 갑자기 노선을 바꿀 일말의 가능성도 대비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당정일체를 통해 윤 대통령과 친윤계 의원들이 총선 공천에 관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용태 최고위원 후보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정일체를 외치는 분들의 속내는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총선 공천 개입’을 바라는 것 아닌가”라며 “권력에 아첨하고자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마저 팔아먹는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내년 총선의 공천권 행사가 가장 큰 목적”이라며 “임기 말 레임덕을 어떻게든지 막고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해서 윤 대통령이 주도권을 가져가면, 다음 대권 승계 문제도 윤 대통령이 주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대통령 측에서 ‘탄핵’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기현 후보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 메시지’를 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준한 교수는 “김 후보가 급한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대통령에게 마이너스인 실언들을 앞으로도 할 수 있다”고 봤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후보 캠프 관계자도 “실언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김 후보에게 ‘신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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