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단수 대란] 구멍 난 상수도 행정…‘도둑 맞은 재난 안전’
  • 정성환·배윤영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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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人災’ 역대급 가뭄 불구, 정수장 밸브 고장으로 5만여톤 물 허비 ‘망신’
수원지 해제·인프라 예산 투입 인색…온라인 기우제 개최 등 ‘천수답식 대책’
수도관 절반 이상이 20년 노후…줄줄 새는 수돗물, 연 934만 톤 땅 속으로
지난 12일 광주 남구 덕남정수장에서 정수한 물을 배수지로 내보내는 송수관로 유출 밸브가 고장 나 수돗물 5만7000톤을 허비했다. 이 사고로 남구 등 일부지역 2만8000여 세대 수돗물 공급이 일시 중단됐고, 늑장 알림 등으로 식당 등이 피해를 입었다. 덕남정수장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12일 광주 남구 덕남정수장에서 정수한 물을 배수지로 내보내는 송수관로 유출 밸브가 고장 나 수돗물 5만7000톤을 허비했다. 이 사고로 남구 등 일부지역 2만8000여 세대 수돗물 공급이 일시 중단됐고, 늑장 알림 등으로 식당 등이 피해를 입었다. 덕남정수장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최근 광주의 핵심 현안은 역대급 가뭄으로 인한 상수도 공급 위기와 수돗물 단수 사태다. 지난 12일 광주 남구 덕남정수장에서 정수한 물을 배수지로 내보내는 송수관로 유출 밸브가 고장 나 수돗물 5만7000톤을 허비했다. 이 사고로 남구 등 일부지역 2만8000여 세대 수돗물 공급이 일시 중단됐고, 늑장 알림 등으로 식당 등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장기 가뭄으로 절수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해 원성을 키웠다.

광주에는 급수 인구가 88만 명인 동구 용연정수장과 58만 명인 남구 덕남정수장 등 두 곳의 정수장이 있다. 용연정수장의 생산 용량은 하루 최대 30만톤, 덕남정수장은 44만 톤으로, 150만 광주시민의 하루 최대 물 이용량 53만 톤을 넘어선 상태다.

전문가들은 휴일 오후 광주시민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은 사상 초유의 단수 대란은 ‘이변’이 아닌 ‘사필귀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수도는 지하철, 도로, 가스, 교통 등과 함께 도시의 핵심 기반시설(인프라)이다. 그런데도 광주시가 물공급 시설에 대한 예산 투자나 관리를 소홀히 한 천수답식 대책이 재난 사고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방치한 노후시설, 인색한 예산투입, 기본을 무시한 정책 대안’ 등이 어우러진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는 것이다. 

가뭄은 강수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광주시의 안일하고 근시안적인 물 관리와 상수도 행정이 시민들의 재난 안전과 일상을 빼앗아 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노후된 정수장 시설과 수돗물이 줄줄 새는 낡은 상수도관을 장기 방치하고 기존 수원지를 아무런 대책 없이 해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누수 원인인 노후수도관 교체 예산이 적절하게 배정되지 않았고, 예비 취수원 제4수원지를 보호구역에서 해제해 재난에 가장 유력한 대비책 중 하나였을 제4수원지의 공적 가능성을 팔아 치워버렸다. 반면에 무속(巫俗)에 기댄 ‘온라인(SNS) 기우제’가 유달리 광주시 정책적 대안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12일 광주 남구 덕남정수장에서 정수한 물을 배수지로 내보내는 송수관로 유출 밸브가 고장 나 수돗물 5만7000톤을 허비했다. ⓒ연합뉴스
휴일인 12일 광주 남구 행암동 덕남정수장 정수지에서 유출밸브의 고장으로 수돗물이 도로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 사고로 남구 등 일부지역 2만8000여 세대 수돗물 공급이 일시 중단됐고, 늑장 알림 등으로 식당 등이 피해를 입었다. ⓒ연합뉴스

강기정 시장, 사흘 만에 ‘사과’…“송구하고 죄송”

강기정 광주시장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광주 남구 덕남정수장의 밸브 점검이 허술하게 이뤄지고, 의무화한 동작시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강 시장은 16일 광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덕남정수장 밸브 고장으로 수돗물 공급이 끊긴 데 대해 불편과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시민들께 사과했다. 단수사고가 난지 사흘만이다. 강 시장은 “상수도사업본부가 재난상황실로 상황을 전파하지 않았고, 재난안전문자를 조기에 발송하지 못해 시민 혼란을 야기했다”면서 “결론적으로 식용수 사고현장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다”고 부실대응을 인정했다. 

그는 사고 원인에 대해 “1994년 설치 이후 상시 개방 상태로 유지되던 밸브가 시설 노후화와 정비 부족으로 베어링 및 기어 축이 이탈해 밸브 잠김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향후 사고원인규명 자문단을 구성해 정확한 사고원인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또 피해를 입은 세대와 영업장들에 피해 보상도 약속했다. 강 시장은 “이번 사고로 피해를 입은 2만8576세대에 대해 2월 12~13일 이틀간 수도요금을 일괄 감면조치 하겠다”고 밝혔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16일 오후 광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덕남정수장 밸브 고장으로 수돗물 공급이 끊긴 데 대해 불편과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시민들께 사과했다. ⓒ광주시
강기정 광주시장은 16일 오후 광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덕남정수장 밸브 고장으로 수돗물 공급이 끊긴 데 대해 불편과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시민들께 사과했다. ⓒ광주시

‘땅속 시한폭탄’ 노후상수도관 교체는 지지부진 

지난 12일 단수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고장 난 유출밸브는 1994년 덕남정수사업소 준공과 함께 설치된 30년 가까이 노후한 시설이다. 이미 사용가능기간(내용연수)인 11년을 두 배 이상 넘긴 탓에 철저한 관리가 요구됐지만, 광주시는 형식적인 육안 점검과 외관 조사에 의지하는 등 소홀하게 관리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시에 따르면 고장을 일으킨 덕남정수장 밸브는 2018년, 2020년, 2021년 등 최근 세 차례 점검을 했다. 그러나 2018년과 2021년에는 동작 시험이 선택 과업이어서 육안 검사만 했다. 하지만, 5년마다 하는 2020년 정수장 기술진단에서는 수도법상 동작 시험이 의무화됐는데도 실시하지 않은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상수도 전문가들은 노후 상수도 시설을 ‘땅속 시한폭탄’으로 비유하며,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후 상수도관 등 상수도 시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예측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광주도심 지하에 깔린 수도관은 총 4046㎞다. 이 중 20년 이상된 노후관은 절반인 2013㎞에 이른다. 일부 노후 상수도관은 정부에서 1994년부터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상수도관으로 사용을 금지한 아연도(금) 강관인 것으로 드러나 심각성을 더한다. 

노후 상수도관은 지하로 수돗물이 새는 누수율과도 직결된다. 광주시의 누수율은 전국 특·광역시 평균인 4.8%보다 높은 5.2%로, 연간 누수량만 934만여톤에 이른다. 광주와 경제 규모 등이 비슷한 대전시 누수율은 1.7%에 불과하다. 광주시민이 하루에 사용하는 급수량이 49만여톤(1인 기준 337리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시민이 19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수돗물이 매년 땅 속으로 새고 있는 셈이다. ‘유수율’은 2017년말 기준으로 86.7%로 7개 대도시 가운데 꼴찌였다가 2년 전 90%대에 턱걸이했다.  

반면에 노후 상수도관 교체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 올해 노후 상수관 교체 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29억원 늘어난 114억원을 배정하는 데 그쳤다. 내년도 전체 상수도사업 예산도 작년(1373억원)보다 겨우 54억원(4.1%) 증가했을 뿐이다. 114억원이면 노후 상수도관 31㎞를 정비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예산배정 속도면 당장 교체가 시급한 노후 상수도관 229㎞를 정비하는 데만 10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게 상수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후상수도관 정비를 위해 이미 확보한 노후상수도관 정비 사업비 114억 원에 추경에서 50억 원을 추가 확보해 총 164억 원 투입, 긴급한 곳부터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광주 제4수원지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북구 청풍동 무등산 자락 제4수원지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영끌해도 모자랄 판’에…제4수원지 해제, 비상수원 확보 역행

광주시의 근시안적인 물관리 정책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제4수원지의 상수원보호구역 해제가 적절했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 9월 예비 식수원 중 하나인 제4 수원지 일대 9.7㎢를 41년 만에 상수원보호구역에서 해제했다. 제4수원지는 석곡천을 막아 1967년 준공됐으며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은 1981년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취수 기능이 떨어진 데다 2021년 5월 각화정수장 폐쇄 결정으로 수원지 존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비상 취수원 확보와 난개발 등을 이유로 반대했음에도 외면했다. 사유지가 5.7㎢임에도 상당수 국립공원지역에 편입돼 개발행위가 불가능하나 공원 미편입지에 4수원지 부근 사유지 5.7㎢가 국립공원 구역에 묶여 있더라도 상수원보호구역에서는 일단 풀리는 만큼 토지주 등의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져 빼어난 경치를 밑천 삼아 카페·펜션 건축 등 개발 행위가 잇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또한 갑작스럽게 취수원이 필요해질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보호구역 해제는 섣부르다는 주장도 폈다. 당시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 측은 “동복댐, 주암댐에서 매일 받는 50만톤 물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반대 의견을 일축했다. 이성기 조선대 교수(환경공학과)는 “하루 2만톤 공급이 가능했던 제4수원지는 물 활용의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비상수원으로 남겨놓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경희 광주환경연합 사무처장도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광주시 자체 수원지인 4수원지를 비상 상수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상수원 보호 구역 지정은 지속 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 물 순환 선도도시인데…지난해 전담 부서 폐지

현재 광주의 상수원은 전남 화순 동복호와 승주 주암호다. 그러나 댐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자원 확보와 관리에는 물 공급에 한계가 있는 만큼 상시적인 빗물 활용, 지하수 등 잠재적 수자원에 대한 관리대책 등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광주시의 물 공급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광주는 자연 물순환 체계 구축을 위해서 빗물침투시설을 설치하는 물순환 선도 도시다. 광주시는 2016년 환경부의 물순환 선도 도시 조성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뒤, 서구 상무지구 일대(2.1㎢)에 빗물 침투 시설을 설치해 불투수 면적을 91%에서 59%로 낮추는 것 등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물순환 선도 도시사업에 295억원, 식물 재배화분 및 투수블럭 등을 설치하는 그린 빗물 인프라 조성사업에 2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 1월 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설치했던 물순환 전담 부서가 2022년 조직개편 때 사라졌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2022년 12월2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들의 절수 운동에만 기대지 않고 물순환 체계로 가는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어 가뭄 상황을 근본적인 기후위기 행동 마련의 기회로 바꿔보겠다”고 약속했다.

15일 오전 광주 남구 행암동 덕남정수장 사고 현장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15일 오전 광주 남구 행암동 덕남정수장 사고 현장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70년대식 동원체제?…가뭄대책 없이 ‘시민 물절약 캠페인’

광주는 극심한 가뭄에 따른 상수원 고갈로 단수조치가 예정된 재난 예비상황이다. 광주시는 가뭄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이 캠페인성 대책이라는 게 문제다. 시는 또 가뭄 상황 장기화에 대비한 ‘위기대응 가뭄극복 추진단’을 구성하고, 수시로 회의를 열어 물 절약 실천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가뭄을 극복할 만한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는 줄곧 “지금은 5월로 미뤄졌지만 올 3월이면 상수원이 고갈되고, 선제적으로 1월부터 제한급수에 들어갈 수 있다”며 시민을 대상으로 20% 물 절약 캠페인에 나서고 있고, 시내 길목 곳곳에 현수막 게첨과 함께 물 절약 긴급 재난 문자를 수시로 보내고 있다. 심지어 ‘소원 빗방울 모으기 프로젝트’라는 ‘SNS 기우제’까지 지내고 있다.

시는 비상수단으로 덕흥보 주변 영산강물 끌어다 쓰기, 동복호 상류, 용연·덕남 정수장 18개 배수지 주변 관정 개발하기, 동복댐 바닥 부위 저층수 뽑아 쓰기 등을 구상 중이지만, 기술적 문제 등으로 당장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수장 시설이 노후화된 데다 수돗물 누수의 주원인인 노후 상수도관 교체사업을 미루는 바람에 매년 땅 속으로 광주시민이 한 달 가까이 쓸 수 있는 수돗물이 줄줄 새고 있고, 새로운 상수원을 확보해도 부족할 판에 기존 수원지마저 해제하는 등 기후변화에 역행하는 행정을 반복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선 과거 1970년대 동원 체제를 방불케 하는 ‘대시민 물 절약 캠페인’에 앞서 상수도 예산을 확대 배정하고,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가뭄 대책부터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변화로 인해 물 부족은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으니 광주시의 상수도 정책도 이에 맞춰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노후 상수도관의 조속한 정비와 대체 수원 개발 등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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