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경찰 수사에 갇혀있는 포항 ‘냉천 참사’의 진실
  • 강신후 영남본부 기자 (sisa536@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7 12: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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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人災)와 천재(天災 )사이 수사 5개월째 원인은 오리무중
이강덕 시장까지 겨냥한 수사 ‘용두사미’ 우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의 직격탄을 맞은 경북 포항에서는 지역 하천 '냉천'이 범람해 주민 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고 발생 직후 원인을 둘러싼 의혹과 소문이 난무했고, 참사가 인재(人災)냐 천재(天災)냐를 놓고 서로의 주장과 반박이 맞섰다. 조사와 수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희생자 유족들은 '포항 냉천 유가족협의회'를 결성해 책임자를 찾아 처벌해 달라고 촉구했다.

경찰은 발 빠르게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돌입했다. 유족과 피해 주민들의 바람과 달리 국회나 경상북도 등 지자체 차원에서의 원인 규명은 없었다. 참사의 원인은 사실상 경찰 수사로 밝힐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고 5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경찰은 최종 결론을 내지 못했고, “수사 사항은 기밀”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 5개월 동안 남겨 놓은 수사 흔적을 통해 포항 냉천 참사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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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냉천정비사업, ‘문제 없음’으로 가닥

수사 초기 경찰이 가장 먼저 겨눈 곳은 포항시청이었다. 지난해 10월 경북경찰청은 포항시청과 남구청 등 5~7개 부서에 수사관을 보내 냉천정비사업 관리 자료를 확보했다. 사고가 나자 포항시가 추진했던 냉천정비사업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었기 때문이다. 

시는 2012년부터 7년여간 이 사업에 300억원을 들였다. 하천 수로를 메워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하면서 하천 폭이 최대 25m까지 좁아진 곳도 생겼다. 이에 대해 피해 주민들은 “하천 폭이 좁아지니 유속이 빨라져 지반을 파내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 포항 환경단체와 농민회 역시 시의 무리한 하천 공사가 원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시 농민회 장영태 회장은 “아파트 허가를 위해 오천읍 일대 하천 수로를 변경해 범람을 자초했다”고 주장했다. 포항환경운동연합은 “하천 주변에 부대시설을 지으면서 지면이 빗물을 잘 흡수하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냉천정비사업으로 하천 단면적이 44%가량 줄어든 데다 시가 경북도의 반대에도 예산을 늘려 과다하게 설계를 변경했다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그러나 시는 “좁아진 냉천을 보완하기 위해 하천 바닥을 깊게 팠다”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찰은 설계·감리 업체 두 곳에 정비사업의 불법성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겼는데, '문제 없음'이란 결과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많은 의혹을 낳았던 냉천정비사업과 관련자들에 대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경찰의 1차 압수수색 대상에는 참사가 발생한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포함됐다. 경찰은 인명 피해가 몰린 아파트 주차장 사고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 때문으로 봤다. 당시 주차장에 물이 빠르게 차고 있었음에도 대피시키지 않고 되레 '차를 빼라'고 방송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변을 당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경찰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그러자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일부 주민이 거세게 저항했다. “하천 범람이 예상돼 차를 빼라고 한 것이 무슨 죄냐”고 반박하며 포항시의 냉천정비사업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결국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반려했다. 부정적 여론이 검찰의 영장 반려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냉천정비사업에서 참사 원인을 찾으려던 경찰은 재난대응 과정에서의 관련자들 과실로 눈을 돌렸다. 이는 지난해 말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대상자들을 보면 한층 더 명확해진다. 경찰은 관리사무소 직원 외에도 포항시 공무원과 한국농어촌공사 직원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시 공무원은 냉천정비사업과는 무관한 재난안전 담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폭우가 내리던 당시 오어저수지 물을 방류해 냉천 범람의 피해를 키웠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냉천 하류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을 찾아 상류로 올라간 경찰은 공사 직원들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농어촌공사 측은 "당시 저수율이 낮아 물이 빠져나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결국 영장은 검찰 선에서 반려됐다.

환경과 설비 등 구조적 원인을 찾는 데 애를 먹던 경찰은 재난대응 담당자의 과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도 난관에 부닥쳤다. 경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영장을 다시 신청할 방침인데, 대상자를 줄이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포항 냉천 유가족협의회가 2022년 11월 포항시의회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제보자 제공
포항 냉천 유가족협의회가 2022년 11월 포항시의회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제보자 제공

유가족 “이태원 참사 뒤 수사 분위기 바뀌어”

경찰 수사가 헛돌자 참사 피해 유족들이 진행하고 있는 피해보상 소송에도 차질이 생겼다. 유족협의회는 포항시와 한국농어촌공사를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마중 김주형 변호사는 “경찰 수사 결과에 맞춰 소를 진행하려고 준비 중이어서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경찰이 여전히 사건을 중대하게 보고 있고 광범위하게 수사하고 있어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은 수사 초기 이강덕 포항시장을 포함해 10여 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그러나 “참사 책임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요구와 “사고는 불가항력적이었다”는 해명 사이에서 경찰의 수사는 답보 상태다. 가장 큰 재산 피해를 본 포스코 포항제철소도 경찰 수사 결과를 바라만 보고 있다. 포스코는 태풍 힌남노로 제철소 가동이 49년 만에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최근 간신히 복구작업을 마무리했지만 2조4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경찰이 지난해 11월말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며 "결과를 바탕으로 보험사들이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유가족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한 유족은 “초반에는 수사가 빨리 진행되는 것 같더니 서울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이 눈치를 보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관리 전문가 권기정 박사는 “유가족 입장에서 들어야 하고 듣고 싶어 하는 내용에 대해 경찰이 더욱 경청해야 한다”며 “수사가 지연될수록 유가족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수사 의지나 경과를 더욱 소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경북청 관계자는 “피의자들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되고 있다. 조만간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할 것”이라며 “이번 사고는 완전히 자연재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면 다가올 재난에 또다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던 경찰이 참사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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