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공법 2단체-특전사동지회, 민심 역행 참배에 화난 ‘光州’
  •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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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군화차림으로 43년만에 첫 참배·공동선언식…지역사회와 충돌
엇갈린 시각…“계엄군도 피해자” vs “일방적 가짜 화해 정치쇼”
광주전남 113개 시민사회단체 “사죄·진상규명이 먼저” 한목소리

5·18 공법단체와 특전사동지회가 함께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것을 두고 광주가 들끓고 있다. 우선 5·18민주묘지 합동참배가 화해와 용서냐, 보여주기식 행사냐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진실규명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짜 화해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과 상호 ‘참배 교류’를 통해 진실과 화해에 다가서야 한다는 5월 단체의 주장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5·18 공법 3단체 중 유족회가 반발하며 불참해 오월단체 간 내분으로까지 번진 가운데 화가 난 113개 시민사회단체가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광주공동체 행동방향을 결정하기로 해 광주 내부에서 지른 불이 어디까지 번질지 주목된다. 

19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입구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특전사동지회 참배에 반대하는 ‘오월 정신 지키기 범시민대회’를 열고 있다. 특전사동지회는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배를 저지하겠다고 하자 당초 계획을 앞당겨 이날 오전 비공개로 참배한 뒤 5·18단체 일부가 연 행사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입구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특전사동지회 참배에 반대하는 ‘오월 정신 지키기 범시민대회’를 열고 있다. 특전사동지회는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배를 저지하겠다고 하자 당초 계획을 앞당겨 이날 오전 비공개로 참배한 뒤 5·18단체 일부가 연 행사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군사 작전하듯’…5·18유족회 빠진 반쪽자리 참배 

5.18 공법 3단체 중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19일 오전, 지역사회 반대를 피해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5.18민주묘지를 기습 참배했다. 애초 이날 오후 5·18묘지를 참배하기로 했으나 특전사동지회 초청 행사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배를 저지하겠다고 하자 아무도 없는 시간을 틈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5·18묘지를 찾은 것이다. 황일봉 부상자회장과 정성국 공로자회장은 특전사동지회 집행부 25명과 함께 합동 참배했다. 

지역시민사회 안팎의 비판이 거센 데다 5·18유족회가 빠지고 단체 내부의 반발도 이어지면서 ‘반쪽짜리’ 행사가 될 게 분명해 보였지만 행사를 마련한 측은 묘지 참배를 강행했다. 참배 이후 이들은 대국민 공동선언식이 예정된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지역 시민단체가 이 행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피묻은 군홧발로 5·18을 짓밟지 마라’ 등의 손팻말을 든 시민단체 회원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경찰들과 대치했다. 일부는 드러누워 “게엄군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특전사동지회의 행사장 입장을 막으려다 경찰과 외주경비업체와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5·18부상자회와 특전사동지회는 공동선언식을 강행했다. 

이날 특전사동지회의 합동참배와 공동선언식 참석은 지난달 오월단체 회원들의 5·18 당시 숨진 계엄군 묘역 참배에 대한 답방 성격이다. 지난달 5.18 공법 3단체 회장단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5·18 당시 작전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계엄군들의 넋을 위로했다. 5·18민주화운동 43년 만이었다. 언론에선 ‘화해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행한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은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를 약속했다.

19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화해와 용서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에서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화해와 용서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에서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 5·18 당시 투입된 주력 부대는 특수전사령부 예하 3·7·11 공수여단이다. 당시 사령관이던 정호용 씨는 2011년 만들어진 특전사전우회 초대 회장이다. 특전사전우회는 이후 특전동지회와 통합해 특전사동지회가 됐고 2021년 4월 정식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5월 단체는 그간 특전사동지회 등 특전사 출신 인사와 교류를 하지 않았는데, 1980년 5월 항쟁 당시 특전사·공수부대 등이 투입돼 유혈진압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에 5월 단체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계엄군 23명의 묘소를 참배한 적이 없었고, 특전사 단체 또한 5·18민주묘지를 공식 참배한 적이 없었다.

5·18부상자회에 따르면 최근 5월 단체는 진압 작전에 투입된 부대원 대다수는 전두환·노태우 군사 정권의 부당한 명령을 받아 따를 수밖에 없었으며 이들 또한 지난 43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점을 이해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로 방침을 정했다. 특전사 단체 또한 5월 단체에 화해 손길을 뻗쳤다. 특전사동지회 광주시지부 관계자 3명은 11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를 방문해 5월 단체에게 감귤 20박스를 전달했다. 특전사 단체가 5월 단체를 공식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훈처도 이미 지난주 9일 이번 행사 비용으로 2000만 원가량을 책정해 두 단체에 지원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장은 “계엄군들이라고 모두 광주사람 학살하겠다고 온 사람은 아니고, 상부의 부당한 명령 하나로 운명이 바뀐 사람들이 많다”며 “많은 세월이 흘렀고, 나서서 사죄 의사를 밝힌 계엄군의 뜻을 받아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길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진정한 화해냐, 보여주기식 행보냐’ 논란

그러나 합동참배가 진정한 화해냐 보여주기식 행보냐를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월어머니집은 성명을 내고 ‘가짜 화해 정치쇼’를 그만 두라고 즉각 반발했다. 학살의 책임자들의 진정한 사죄와 고백 없이는 용서와 화해도 없다는 것이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우리도 화해와 용서에 반대하지 않지만, 이들의 주장에서는 어떤 진정성도 찾을 수 없다”며 “책임자들의 발포 명령과 암매장의 진실도 밝히지 않는데 화해와 용서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지난 13일 오월어머니집이 처음으로 이번 행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 이후로 5·18 관련 단체들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반발 기류가 확산했다. 5·18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 성명이 이어졌다. 광주전남추모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가능해지려면 올바른 진상규명이 먼저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며 “특전사동지회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계엄군을 대신한다면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온 국민 앞에 밝히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5·18민중항쟁 기동타격대동지회와 5·18민중항쟁 구속자회,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 5·18공로자회 민주화추진협의회, 5·18 바로세우기연합회 등 5개 단체는 5·18 민주광장에 모여 행사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포용과 화해, 감사 대국민선언’ 행사가 정치놀음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또, 특전사동지회가 진상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19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화해와 용서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에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 참석하고 있다. 진실규명 협조와 진솔한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행사장 입구 도로에 드러누워 항의하고 있다. ⓒ독자 제공
19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화해와 용서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에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 참석하고 있다. 진실규명 협조와 진솔한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행사장 입구 도로에 드러누워 항의하고 있다. ⓒ독자 제공

갈라진 ‘오월 공법 3단체’

5·18 공법단체 간 내부 갈등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번 행사를 둘러싼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나뉘면서다. 지난달 17일 국립현충원 내 계엄군·경찰 묘역을 찾을 당시에는 ‘오월 3단체’로 불리는 공법 3단체 중 유족회도 동행했지만, 유족회장이 공석이라 홍순백 상임부회장이 참석했다. 5·18 공법 3단체에는 유족회, 부상자회, 공로자회 등이 소속하고 있다.  
이후 유족회 신임 회장이 선임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족회는 지난 14일 양재혁 유족회장 명의의 결정문을 통해 “특전사회와 함께하는 공동선언식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법 3단체가 유족회, 부상자회·공로자회로 갈라진 것이다.

양 회장은 “5·18 진상규명과 특전사 수뇌부 사과에 기대를 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면담에 참석했으나 행사 이후에도 진실규명을 위한 양심선언과 수뇌부 사과는 확실히 보장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찬반 논란이 팽배해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며 “행사 취지와 달리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진실규명이 선행되지 않는 한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쪽 모두 피해자”…불지른 공동선언문 ‘양시론’ 

특전사동지회와 5·18 공법단체가 발표한 공동 선언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양측은 이 선언문에서 1980년 당시 계엄군의 진압 작전에 투입된 공수부대원 등을 상부 명령에 복종이 불가피했고, 그동안 아픔을 겪어왔다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 민주화 시위 참여자와 진압군 모두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해 볼 게 아니라 양쪽 모두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상황논리에 근거한 이른바 ‘양시론(兩是論)’으로 보자는 얘기다.

5·18에 대한 이 같은 ‘양시론’은 과거 전두환 신군부와 5·18을 폄훼하고 왜곡해온 세력이 주장해온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이 5·18 공법단체와 특전사동지회의 공동선언문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앞서 특전사동지회 총재 인터뷰에도 그대로 반영돼 논란이 됐다.

광주시민사회단체협의와 광주전남추모연대 등 108개 시민단체도 공동선언문과 행동강령 내용도 문제 삼았다. 선언문에는 5·18 정신을 계승·발전하는 데 상호 협력하고,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는 계엄군 장병을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노력한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 단체가 17일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연 기자회견 내용이다. 

“계엄군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필요시 법적·제도적 지원을 가능하게 한 공동선언문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며 5·18 정신을 망각하는 행위이다. 대국민선언을 폐기하고 사과해야 한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진실 된 자기고백과 자기반성이다.” 

 

들끓는 시민사회단체…‘비상대책회의’ 결성

광주전남 113개 시민사회단체는 한 목소리를 내며 뭉쳤다.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지역사회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특전사동지회와 행사를 강행한 것에 대한 반작용에서다. 80년 이후 처음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운 광주정신을 회복하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이들 단체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광주본부를 비롯해 광주경실련, 광주YMCA, 광주YWCA,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광주흥사단, 전교조광주지부, 전국교수노조광주전남지부 등이다.

단체는 21일 오전 광주 동구 YMCA 무진관 2층에서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민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지역사회 여론을 무시하고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대국민공동선언식과 합동 참배를 한 것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한편 5·18 당시 계엄군 진압으로 광주시민 355명(당시 사망 165명·행방불명 78명·부상 이후 사망 112명)이 희생됐다. 현충원에 안장된 계엄군의 상당수는 ‘군인 간 오인사격’으로 숨졌다. 13명이 오인사격으로 숨졌고 시민군과 교전 중 사망자는 5명이다. 2명은 차량사고, 2명은 사망경위가 명확하지 않다. 국방부는 2020년 이들의 사망경위를 모두 다시 조사해 ‘전사’에서 ‘순직’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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