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초청 5·18행사 ‘불똥’…지자체, 뒤늦게 축사 취소 소동
  • 정성환·전용찬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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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빼달라” 일부 단체장 ‘5·18대국민선언’ 축사 후폭풍에 전전긍긍
전북도지사, 해남군수·영암군수 “책자 수록용 축사 철회 공문 보내”
“당초 행사 취지와 다르고, 5·18민주화정신에 반해 축사 취소 결정”

광주·전남북의 일부 자치단체와 기관이 특전사 초청 5·18행사에 축사를 보냈다가 뒤늦게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5·18 일부 단체와 특전사동지회의 참배와 대국민 선언에 대해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거세게 반발하면서다. 5·18민주화운동의 용서와 화해라는 행사의 당초 취지에 따라 선의의 의지로 축사를 송부했다는 것이 해당 기관 측의 해명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역사의식의 결여는 물론이고 축사가 지닌 상징성이나 무게감이 적지 않음에도 이를 간과한 경솔한 행위였다는 지적이다. 

19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입구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특전사동지회 참배에 반대하는 ‘오월 정신 지키기 범시민대회’를 열고 있다. 특전사동지회는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배를 저지하겠다고 하자 당초 계획을 앞당겨 이날 오전 비공개로 참배한 뒤 5·18단체 일부가 연 ‘5.18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입구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특전사동지회 참배에 반대하는 ‘오월 정신 지키기 범시민대회’를 열고 있다. 특전사동지회는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배를 저지하겠다고 하자 당초 계획을 앞당겨 이날 오전 비공개로 참배한 뒤 5·18단체 일부가 연 ‘5.18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22일 지역 정·관가에 따르면 5·18 공법3단체 중 유족회를 제외하고 부상자회·공로자회가 사흘전 추진한 ‘5·18민주화운동 용서와 화해, 감사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에 9명의 정·관계 인사가 격려사 또는 축사를 보냈다.

이날 배부된 행사 안내책자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김관용 전북도지사,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비례), 민주당 김종민 의원(충남 논산 계룡 금산), 무소속 양향자 의원(광주 서구을), 정무창 광주시의회 의장, 이병노 담양군수, 명현관 해남군수, 우승희 영암군수의 축사가 게재됐다. 

이들은 축사를 통해 ‘국민통합의 길이 멀지 않았다’, ‘5·18이 포용과 화해와 감사의 역사로 기록될 수 있길 바란다’, ‘담대한 결단에 부쳐’, ‘5·18정신은 포용과 화해로 계승돼야 한다’, ‘희망과 미래를 열어가는 기회의 장을 기원한다’, ‘국민대통합의 또 다른 상징’, ‘정의로운 역사의 또 하나의 이정표’라는 취지로 축하의 뜻을 전했다. 지역 시민사회가 ‘기만적인 행사’ ‘가짜 정치쇼’ ‘도둑 참배’라며 범시민 저지대회와 릴레이식 반대성명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반면 광주지역 일부 국회의원은 행사 취지에 찬성 또는 옹호한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내달라는 부탁을 받고선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22개 시군)과 전북(14개 시군) 단체장은 대부분 축사를 보내지 않았다. 당초 계획안에 공개됐던 강기정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도지사, 민주당 이용빈 의원,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 무소속 양향자 의원 등은 행사에 불참했다. 

시민사회단체의 강한 반발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해당 지자체는 축사 철회에 나섰다. 전북도는 대국민 공동 선언식에 보낸 김관영 도지사 축사를 취소했다. 행사가 열린 지 이틀만이다. 전북도는 21일 ”주최 측에 항의하고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에 책자 수록용 축사를 취소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당초 취지와 달리 진행되고, 지역 여론의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이달 초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는 전북도에 ‘포용과 화해와 감사, 대국민 공동 선언식’ 개최에 따른 축사와 참석을 요청했다. 이에 전북도는 책자 수록용 축사를 보냈다. 전북도 관계자는 ”통상적인 5·18 민주화운동 행사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며 ”지난 17일께 참석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인지했다. 5·18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고 희생자분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의 취지에서 벗어나 있다고 판단해, 늦게나마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축사 취소 공문을 발송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남 해남군과 영암군도 대국민 공동선언식 관련 군수의 축사를 취소했다. 해남군 관계자는 “19일 열린 행사내용 및 선언서 등을 검토한 결과 5·18 민주화운동 정신과 지역정서에 반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돼 축사 취소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승희 영암군수도 “이번 서면 축사는 지난달 31일 5·18부상자회의 공문을 받고 공법3단체(부상자회, 공로자회, 유족회)의 합의로 추진되는 행사로 여기고, 행사 취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통상적인 축사를 발송하게 된 것”이라며 “실무적으로 처리되면서 추후 논란 과정을 체크하지 못해 후속 조치를 놓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광주시의회는 “지역 사회 논란이 일기 전인 이달 초 주최 측으로부터 부탁을 받았고 당시에는 ‘화합과 통합’을 위한 행사로 알려져 있었던 터라 기존 5·18 행사 관례대로 게재용 축사를 보낸 것”이라며 “의장의 뜻이나 시의회의 입장과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축사 취소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고도 설명했다.

‘오월시인' 김준태 시인(맨 왼쪽)이 19일 오전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민대회'에서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김준태 시인
‘오월시인' 김준태 시인(맨 왼쪽)이 19일 오전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민대회'에서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김준태 시인

해당 지자체들은 후폭풍에 곤혹스런 처지다. 행사의 제목과 내용을 봤을 때 뜻깊은 행사로 판단된 데다 시대적 명분도 있다고 보여 축사를 보냈다는 것이 해당 기관들의 해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기관장의 참석이나 축사가 지닌 상징성이 적지 않음에도 행사 취지를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 같다”며 “공문을 통해 축사를 요청받은 대부분의 지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보내지 않은 것과 비교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정치권은 ‘부화뇌동한 일부 정치인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진보당 광주시당 총선 출마 후보자들은 20일 광주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 시의원, 지자체장들이 앞 다퉈 역사를 왜곡하고, 여론이 악화되자 사과 한마디 없이 변명에 불과한 보도자료로 축사를 철회하며 해명에 나서는 등 호남시도민과 국민을 철저히 기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축사를 보낸 국회의원과 전북도지사, 광주시의장, 전남 해남·영암·담양군수 등을 호남 시도민과 국민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9일 공법단체인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공로자회, 특전사동지회 등이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포용과 화해와 감사'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행사에서 ‘계엄군을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발언이 나와 왜곡 논란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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