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탄다고 전기 더 드나” vs “비행기 빈자리엔 무료로 타도 되나”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7 07:3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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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들에게 물었다] 대한노인회-서울교통공사 쌍방 인터뷰 
“갈등 조장하는 주장” vs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 

“노인들 때문에 지하철 칸이 증설됐나요? 지하철 전기료가 더 듭니까? 적자 책임을 노인들에게 전가하는 건 세대 갈등만 부추기는 구차한 트집입니다.” - 황진수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장

“비행기에 빈자리 있으면 무료로 타도 되나요? 적자가 극심해 안전시설물 교체할 돈도 없는데,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합니까?” -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위원장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논하는 자리마다 이해관계자들 간 설전이 뜨겁다. 지하철 운영 적자에 대한 책임 소재부터 사회적 득실에 대한 계산까지 입장차가 극명하다. 논쟁은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조짐이지만 뾰족한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아시아 4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에서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가 골치 아픈 문제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이 문제와 관련해 각종 토론회와 언론 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을 인터뷰한 후 토론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매년 1조원 이상 발생하는 적자 가운데 30% 이상이 노인 무임승차에서 나오고 있다며 지금의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인단체 관계자들은 교통공사의 경영 문제 등 다양한 적자 원인을 노인 탓으로만 돌리는 건 불합리한 주장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2월17일 서울의 한 지하철 좌석에 어르신들이 앉아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2월17일 서울의 한 지하철 좌석에 어르신들이 앉아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기본권 박탈” “5000원 소주는 드시면서”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위원장(이하 송시영): “교통공사는 지난 40년간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금을 고스란히 감당해 왔다. 노인 등 무임 대상자들과 돈을 내는 탑승객 모두를 같은 승객으로 취급하고 지하철을 운영한다. 이들을 위해 열차 증편, 시설 유지·보수, 민원을 처리하기 위한 인력 등이 고스란히 제공되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받아야 할 요금을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손실금이 막대하다.” 

황진수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장(이하 황진수): “일상적으로 운행되는 열차에 그저 노인들이 함께 탑승하는 것뿐인데 노인들 때문에 적자가 난다는 논리가 적절한가. 노인을 콕 집어 책임을 묻는 건 사회적인 갈등만 조장하는 수준 떨어지는 주장이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이하 김호일): “교통공사 직원이 1만6000명인데 평균 연봉이 7400만원에 이른다. 간부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다. 적자라면서 고임금을 받고 있고, 직원이라고 전부 지하철 무임승차를 한다. 자신들은 호의호식하면서 노인 때문에 적자가 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열차가 텅텅 비는 시간대에 운행 횟수를 줄이는 등 교통공사 스스로 뼈를 깎는 경영 개선안을 제시하는 게 먼저다.”

송시영: “고액 연봉 지적은 전혀 사실이 아닌 악의적인 내용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평균 임금이 높은 건 공사 인원의 약 70%가 50대 이상인 ‘역피라미드 구조’이기 때문이다. 말단 직원인 저는 월 200만원대 급여를 받고 있으며 많은 공사 직원이 저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공사 인원은 크게 감축됐고 기본적인 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임승차를 노인들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보편 복지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38.97%로 전 세계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저소득 노인들에게 정책적 효과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김호일: “많은 노인이 지하철을 타고 천안에 가서 온천을 즐기는 등 소득과 형편에 크게 관계없이 ‘건강’과 ‘행복’을 얻고 있다. 그로 인해 연간 4000억원 이상의 의료비가 절감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평일에 노인들이 곳곳의 시장을 활성화시켜주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임승차로 인한 득이 더 많은 것 아닌가. 정년퇴직 연령도 높지 않고 노령연금도 충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기본적인 복지마저 줄이는 건 노인의 기본권 박탈이다.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도 전 세계 1위다. 1인당 국민소득 2340달러 시대(1984년)에도 제공하던 걸 3만5000달러가 된 지금 안 주겠다는 게 말이 되나.”

황진수: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우물물을 마실 때 그 우물을 판 사람의 노고를 기억하라는 의미다. 지금 이 지하철을 만든 세대가 누구인가. 최소한의 경로효친적인 마인드도 없이 되레 사회가 노인을 탓하게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실제 젊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노인들을 향해 ‘요금도 안 내는데 왜 자리에 앉아있느냐’며 행패를 부리는 사건까지 발생하지 않나. 노인을 위한 이런 복지마저 줄이려면 정년 연장 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송시영: “지하철 요금이 1250원이다. 솔직히 정말 그렇게 부담이 될 정도로 비싼 요금인지 묻고 싶다. 무료로 지하철을 타고 가서 2만원 넘는 병천순대와 5000원 넘는 소주를 드시지 않나. 그럼에도 꼭 필요한 제도라면 교통공사가 떠안고 있는 막대한 손실금을 국가에서 함께 책임져주면 된다. 앞으로도 공사가 모두 감당하라고 하는 건 상식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무임승차 연령 조정 근본책 아냐…정부 무책임” 한목소리

지하철 운영 적자에 대한 시각은 달라도 이 적자에 대해 정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이들의 목소리는 모아진다. 무임승차 적자 논쟁은 과열되는데 정부의 대응은 계속 차갑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지하철 적자 문제와 관련해 “지방재정 문제는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2013년 무임승차 제도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네 가지 개선안을 전달받고도 10년째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해관계자들은 노인 무임승차 논쟁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며 ‘바우처 지급’ 등 정부가 주체적으로 관련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일 서울연구원 공간교통연구실 연구위원(이하 신성일): “이와 비슷한 논의에서 다른 나라들은 복지부를 비롯해 다양한 관계부처들이 머리를 맞대는데 지금 우리 정부는 사실상 발을 빼고 오로지 지자체에만 떠맡기고 있다. 노인들이 지자체만의 시민인가. 무임승차를 노인들을 위한 보편 복지로 규정하고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도시철도가 없는 지역과의 형평성 지적도 있는데, 교통비 바우처를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해 노인들이 그 지역에 맞는 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시스템적으로 결코 어렵지도 비용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는 방안이다.”

송시영: “현재 정부의 태도는 상당히 무책임하다. 코레일(국철)의 경우 기획재정부에서 60%가량 손실 지원을 해주고 있다. 중앙 공기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같은 서울권인데 코레일 구간엔 국비 지원이 된다. ‘지자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과 모순되는 지점이다. 서울 지하철이 서울 사람들만의 것인가. 사실상 나라 전체 구성원들이 두루 이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특정 지자체에만 떠넘길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차라리 무임승차를 폐지하고 나라에서 노인들에게 교통비를 지원하는 방안이 바람직해 보인다.”

김호일: “지하철 노선 대부분이 서울을 넘어 경기권, 나아가 충청권까지 뻗어있지 않나. 이 지하철이 국철의 보조적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해줘야 할 이동의 기능을 서울 지하철이 보조해 주고 있는 만큼 일정한 지원은 반드시 해줘야 하는 게 맞다. 다만 지금 교통공사가 먼저 방만한 경영을 충분하게 해소하는 모습을 보인 후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게 순서다.”

신성일: “최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을 때도 중앙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들 틈만 나면 균형발전을 강조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무임승차 논쟁을 바라볼 때마다 깊은 의문이 든다.” 

현재 주요한 쟁점이 되는 무임승차 연령 상향에 대해서도 이들은 대체로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부차적인 논쟁이라고 지적했다. 설령 연령을 올리더라도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송시영: “연령 상향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노인의 기준은 의학기술 발달로 계속 변동될 것이고 그때마다 논쟁이 일어날 텐데, 다 사회적 비용이다.” 

황진수: “10여 년 전에도 노인 무임승차 문제가 이슈가 됐었다. 그때 제가 2020년부터 노인 연령 기준을 2년에 한 살씩 올려 2030년에 만 70세 이상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한 번에 올려버리면 사회적 혼란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론이 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간 후 아래에 있는 사람들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는 것이다. 현재 만 63세, 64세인 이들은 머지않아 수혜 대상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을 텐데 갑자기 연령을 높여버리는 건 이들로선 사다리가 치워지는 일과 같다. 연령을 조정하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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