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동 안된 한동훈式 인사검증 시스템…책임론 ‘눈덩이’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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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낙마’ 후폭풍 커지면서 검증 실패 책임 도마에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현안 브리핑에서 국가수사본부장 검증 관련 대통령실의 입장 설명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현안 브리핑에서 국가수사본부장 검증 관련 대통령실의 입장 설명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임명 하루 만에 낙마하면서 부실한 검증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 '음지'에 있던 인사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법무부 산하에 설치한 인사정보관리단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사실상 검증 실패로 책임론이 들끓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이 하루 만에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실이 인사검증의 미흡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파문 진화에 나섰으나, 정치권을 비롯해 각계에서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국가수사본부장 공모부터 임명까지 한 달 넘도록 '아들 학폭'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해 경찰청장은 물론 법무부 장관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전날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공직 후보자 자녀와 관련한 문제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면서도 그 원인을 초기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찰 탓으로 돌렸다. 이번 국가수사본부장 인사는 경찰 인사추천위원회의 1차 검증, 인사정보관리단, 대통령실 순으로 3단계 검증을 거쳤다. 경찰이 공모를 진행한 후 경찰청장이 종합심사를 거쳐 추천한 인사에 세평 수집까지 더해졌음에도, 대통령실은 '아들 학폭' 관련 내용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1차 책임이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몰리고 있다. 거센 내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검사 출신을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추천한 윤 청장의 입지는 이미 한층 좁아졌다. 경찰국 설치와 이에 반발한 총경들에 대한 인사 보복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인사 파동까지 초래한 윤 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 청장은 이날 오전 경찰청 로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국가수사본부장 인선과 관련해 추천권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출석차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는 '낙마 사유가 된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를 추천 단계에서 인지했느냐'는 취재진 질의에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 추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고민은 늘 하고 있다"고 답했다. 윤 청장은 지난 17일 열린 국가수사본부장 공모 지원자 종합심사에서 정 변호사를 최종 후보자로 선정해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책임론도 거론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인사 투명성을 높인다며 당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담당했던 인사 검증 기능을 없앤 뒤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권한을 넘겼다. 인사정보관리단 출범 당시 법무부는 "음지에 있던 인사 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 투명성을 높이고, 감시가 가능한 통상의 시스템하에 두는 것"이라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검증 업무와 관련해 '대통령실의 요청이 있으면 검증할 것'이라고 했었으나, 이번 정 변호사 인사와 관련해 대통령실의 요청은 물론 "특정인에 대한 검증 여부는 확인이 어렵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사죄와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와 관련해 "사임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정순신 학폭 및 인사검증 실태 조사단 구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미 5년 전 언론에 보도된 학교폭력 문제를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윤 대통령이 과연 몰랐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은 인사 참사를 직접 책임지고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진 인사 검증 시스템을 배우겠다며 미 FBI까지 방문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책임도 크다. 온통 검사로 채워진 대통령실 인사 검증 라인을 반드시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입장을 밝힌 뒤 국회 정보위에 출석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대통령 임명 하루 만인 지난 25일 전격 낙마하면서 경찰과 대통령실의 인사검증 과정에서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국회 정보위에 출석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대통령 임명 하루 만인 지난 25일 전격 낙마했다. Ⓒ연합뉴스

이번 '인사 참사'로 국가 인사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검증 실패의 원인으로 여러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검찰 출신이 장악한 인사라인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대통령실은 대검찰청 사무국장 출신 복두규 인사기획관과 검사 출신 이원모 인사비서관이 인사업무를 총괄하고, 역시 검사출신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검증을 총괄한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단장은 인사혁신처 공무원 출신이지만, 공직후보자의 사회분야 세평을 수집하는 1담당관이 검사 출신이다. 인사 추천부터 검증까지 전 과정을 검사 출신들이 맡아 '자기 식구'들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법연수원 기수, 출신학교 선후배로 엮여 상명하복 분위기가 강한 검찰 조직의 수직적인 문화도 제대로된 검증을 막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학교폭력에 대한 국민 공분이 커진 만큼 공직자의 인사 검증의 범위에 배우자와 자녀까지 포함해야 국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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