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몰랐다”는 윤희근…거세지는 ‘퇴진’ 압박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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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아들 학폭 논란 후폭풍에 입지 ‘흔들’
윤희근 경찰청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국회 정보위에 출석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대통령 임명 하루 만인 지난 25일 전격 낙마했다.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2월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국 신설과 이태원 참사로 고비를 맞았던 윤희근 경찰청장이 또 한번 고개를 숙였다. 숨고르기를 하던 윤 청장을 향한 퇴진 압박은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를 계기로 재부상하는 모양새다. 

윤 청장은 27일 정 변호사 임명 취소 사태와 관련해 "추천권자로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짧은 입장을 밝혔다. 윤 청장은 이날 오전 1시간 가량 일찍 출근해 언론 노출을 피했고, 국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원론적인 입장만 내며 공개 발언을 자제했다. 

국회에 도착해서도 윤 청장은 '자진 사퇴'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거취) 고민은 늘 하고 있다"며 "우선 (국수본부장) 후임자 선정을 신속하게 진행해 공백 우려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문제를 인지했는데도 추천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경찰청장에 오른 윤 청장은 취임 이후 줄곧 사퇴 압박에 시달려왔다. 경찰국 신설로 거센 내부 반발을 샀고, 직후 이어진 이태원 참사 대응 책임 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태원 참사 책임과 관련해 간신히 무혐의 처분을 받은 윤 청장은 그러나 연이어 터진 '인사 참사' 논란으로 다시 사면초가에 몰리게 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2022년 12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조직·인사 제도 개선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 청장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2022년 12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조직·인사 제도 개선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 청장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윤 청장은 경찰 내부의 거센 반발이 예상됐음에도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수본부장에 정 변호사를 최종 추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경찰국 신설에 따른 후속 조치와 인사 보복 논란으로 일선 경찰들의 불만이 쌓여있던 상태에서도 임명을 강행했지만 결과적으로 '검증 실패' 동반 책임을 떠안게 됐다. 

정 변호사 낙마 후 경찰 내부 게시판에는 윤 청장을 향한 사퇴 압박이 불 붙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조직이 붕괴돼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소신있게 말 한마디 못하는 무능한 경찰청장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용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경찰 중립성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윤 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경찰청의 치안감 및 치안정감에도 수사를 전문분야로 하는 대상자가 있는데도 외부에서 임용할 필요가 무엇이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며 윤 청장에 추가 해명을 요구했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수본부장 외부 공모는 '필요가 있을 때'만 하도록 규정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윤 청장이 일선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찰국 신설 등 윤석열 정부에 '코드 맞추기' 정책을 강행해 온 만큼 대통령실과 사전 교감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찰 수사 독립의 상징적 기관인 국수본의 장을 검찰 출신에 맡기도록 하는 결정을 윤 청장 단독으로 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수통 출신인 정 변호사가 윤석열 대통령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 등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및 이원석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27기)인 점도 이번 인선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 변호사가 국수본부장 지원을 앞두고 변호사 휴업을 한 것도 의구심을 더하는 대목이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책임지는 법무부와 대통령실이 정작 이번 인사 참사에서는 발을 빼고, 경찰이 모든 비판을 짊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읽힌다. 앞서 대통령실은 "공직 후보자 자녀와 관련한 문제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인사 검증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궁극적 원인을 초기 검증에 실패한 경찰 탓으로 돌렸다.

경찰 출신인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해방된, 독립된 대한민국에 다시 일본인 정치총감, 일본인 조선총독부 총독을 앉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경찰청장이) 이걸 막지 못한다면 그만둬야 한다"고 윤 청장을 맹비난했다. 

황 의원은 검사 출신 국수본부장 임명 논란에 대한 일선 경찰들의 반응을 언급하며 "'너무 수치스럽다. 이렇게 모욕감을 주는 인사를 할 수가 있느냐' '검사 출신이 또 국수본부장으로 온다면 수사경과를 반납하고 수사를 포기하겠다'" 등 들끓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검찰 출신 인사를 국수본부장에) 추천했다는 것이 경찰청장 본인 의사는 아닐 것"이라며 "지난번 총경 인사도 있을 수 없는 인사였고 경찰청장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놓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일련의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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