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가능성에 금융 지원”…‘한국형 실리콘밸리은행’ 꿈꾸는 대전시
  • 이상욱 충청본부 기자 (sisa4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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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본사 둔 기업금융 중심 은행 설립 추진…올해 ‘대전투자청’ 설립

“혁신적인 기업의 가능성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이 필요하다. 한국형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필요한 때다.”

벤처 대출(Venture Debt)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을 만들겠다며 대전에 본사를 둔 기업금융 중심 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장우 대전시장의 말이다. 돈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총체적이고 활력 있는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핵심 내용이다. 대전시는 SVB처럼 기업금융을 지원하는 자본금 10조원 규모 특수은행 설립을 목표로 하는데, 올해 징검다리가 될 ‘대전투자청’을 설립한 뒤 기업금융 중심 은행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2월22일 옛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전시의 ‘2023년 제1차 은행설립 추진위원회 및 용역 착수 보고회’ 참석자 기념사진 촬영 모습 ⓒ대전시
2월22일 옛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전시의 ‘2023년 제1차 은행설립 추진위원회 및 용역 착수 보고회’ 참석자 기념사진 촬영 모습 ⓒ대전시

대전시는 올해 1월 케이뱅크·카카오뱅크 출범 당시 컨설팅을 담당한 EY컨설팅이 관련 연구를 맡기는 등 기업금융 중심 은행 설립 채비로 분주하다. EY컨설팅은 기업금융 특화 특수 국책은행 신규 설립안과 시중은행·지방은행·인터넷은행 등 일반은행 신규 설립안, 공공기관의 특수은행화 검토안, 현 시중은행 기반 활용안 등 네 가지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앞서 대전시는 지난해 7월 대전에 본사를 둔 기업금융 중심 은행 설립 추진위원회를 출범하며 벤처투자 전문은행 설립에 발을 들였다. 

이 시장은 “디지털 대전환, 글로벌 팬데믹, 미·중(美中) 패권 경쟁, 기후변화가 몰려오는 세계사적 변곡점에서 우리가 믿을 것은 살아 움직이는 창업 생태계다. 대전은 최고의 인재들이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내기에 가장 좋고 효율적이다”라고 했다. 대전이 글로벌 혁신과 창업의 요람이라는 말이다. 

대전에는 높은 성장 가능성과 기술력을 지닌 중소·벤처기업들이 많다. 지난해 기준 충청권 소재 벤처기업은 대전 1419개, 충남 1131개 등 총 3580여 개다. 이는 경기(1만941개), 서울(1만292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인구 10만 명당 창업기업은 서울(7.6개)보다 많은 10.3개에 달한다. 이처럼 대덕 특구 단지가 있는 대전의 창업 열기는 높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들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정부의 정책자금과 모태펀드 예산은 지난해 대비 각각 19.6% 39.7% 감소했다. 유동성 긴축에 따라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지난해 3분기 기준)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54.2% 축소됐다. 국내 벤처캐피탈 투자 규모(지난해 3분기 기준) 역시 2021년 3분기 당시 2조913억원에서 1조252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벤처기업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과 IT서비스 기반 기업의 경영 애로 중 가장 큰 요인이 ‘자금 조달’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빈약하다.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도 앞서 2009년, 2015년 연구를 통해 대전지역 벤처기업 금융의 문제점으로 엔젤 투자 관련 인프라 부족과 재무제표 위주의 대출 심사, 성숙기 기업 위주의 정책자금 수혜 등을 지적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이런 여건에서 대전 벤처기업들이 혁신 허브로 세계를 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창업 지원 금융 시스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자들은 월스트리트 대형 투자 은행들의 투자 제의를 거절할 만큼 당당하다. 그들은 ‘열정과 패기’를 일찍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며 더 큰 도전에 나선다. 젊은 창업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1983년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문을 연 SVB는 시스코, 트위터, 우버 등 대박을 터뜨린 스타트업들을 포함해 수만 개 스타트업의 탄생 때부터 거래해 왔다. SVB는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벤처캐피털에 자금과 신용을 지원하고, 벤처캐피털은 수많은 스타트업을 속속들이 기술력을 살피며 투자한다. 돈만 대주는 게 아니라 경영 시스템과 지혜까지 빌려주고,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조차 공유한다. EY컨설팅 측은 “이제 우리나라도 기술 중심 벤치기업을 중심으로 벤처기업이 다양한 방식의 자금 조달 지원을 받아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업금융 중심의 새로운 은행 설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때마침 기업금융 중심 은행 설립을 위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권 돈 잔치 주범으로 ‘5대 은행 과점체제’를 지목하고 완전경쟁을 촉진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금융당국에 주문했다.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 추가 허용과 특화은행 활성화 등 은행업 진출 장벽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 함께 은행의 경쟁 촉진을 위해 은행업 인가 단위를 세분화해 개별인가로 내주는 ‘스몰 라이선스’ 도입도 고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실리콘밸리형 모델 적용을 해결 방안으로 언급하며 대전시가 추진 중인 기업금융은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정부가 직접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을 챙기는 방식은 규모가 한정돼 있고 효율성도 높지 않다고 우려한다. 벤처캐피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고용 지표나 세수, 정책 집행 성과 등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고용을 많이 한다는 이유 등으로 특별한 기술이 없는 기업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리콘밸리은행을 제대로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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