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 인사’에 검증시스템 마비됐나…들끓는 인사 참사 책임론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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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장관 “구조적 문제”…선 긋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법제처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법제처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에 대한 인사 검증 부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현 정부의 '답정너'식 인사에 추천·검증 과정이 '기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인사 실패'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한 인사를 위해 출범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정 변호사의 검증 과정에 관여한 모든 기관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양새다. 당초 대통령실은 "공직 후보자 자녀와 관련한 문제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었음을 공식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을 1차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찰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전날 윤희근 경찰총장이 1차 검증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했다고 밝히면서 책임소재가 달라졌다. 윤 청장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정보위원회에서 '정순신 변호사에 대한 인사검증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의에 "국수본부장 임명 과정에서 경찰청은 인사검증 권한이 없고 검증 결과를 보고받을 뿐"이라며 "(법무부로부터 정 변호사) 인사검증 결과 '아무 문제 없음'으로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에 대한 인사검증은 경찰청이 아니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맡았고, 경찰청은 문제 없다는 결과를 받아 국가수사본부장에 추천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법무부는 구조적인 문제라며 책임에 선을 그었다. 인사정보관리단은 '기계적'인 1차 검증만 거쳤고, '아들 학교폭력(학폭)' 사건을 알리지 않은 정 변호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전날 기자들에게 학폭 문제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무부의 인사정보관리단은 대통령실의 의뢰를 받는 사안에 한해 기계적인 1차 검증을 하는 조직"이라며 "가족 문제라든가 송사 문제는 개인정보보호나 여러 상황상 본인이 먼저 그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 한 걸러내서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은 경찰에, 경찰청장은 법무부에, 법무부는 다시 공직후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인사 검증 실패'를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법무부와 대통령실이 2단계에 걸쳐 검증을 했지만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과 강제전학 징계, 이를 취소하려는 소송전을 걸러내지 못하고선, 이를 스스로 말하지 않은 정 변호사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답정너'식 인사와 '검사끼리' 검증이 인사시스템 작동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청장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정 변호사를 추천하기 전에 대통령실과 의견 교환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경찰 내부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 17일 공모 지원자 종합심사에서 검사 출신인 정 변호사를 최종 후보자로 선정해 대통령에게 추천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추천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지시가 있었냐'는 질문에 "별도로 대통령실의 요청을 수용한 것은 아니고, 의견 교환을 통해 적격자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추전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날 국무회의 의장을 맡은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날 국무회의 의장을 맡은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정 변호사 아들 학교폭력 문제를 정말 알지 못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정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재직했던 2018년 11월 아들 학폭 사건이 익명으로 보도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한 장관은 3차장검사로 같은 검찰청에서 근무했다. 통상 소속 검사 관련 보도가 나올 경우 기관장은 사건을 보고받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인사 사태를 '예견된 참사'로 규정 짓고 인사 검증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8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득권 카르텔은 바로 윤석열 사단"이라고 지적하면서 "'정순신 사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검사 동일체' 막장 시스템으로 예견된 참사"라고 비판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사 검증단이 검증도 제대로 못 하지만, 법무부에 있는 것도 옳지 않다"며 "대통령실이나 인사혁신처에 두는 게 맞는다고 보고 정부조직 개편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부실 검증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8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실한 검증 후에 바로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 낙마한다는 것은 인사 검증 기능에 중대한 구멍이 있다는 것"이라며 "책임져야 할 분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검증 라인에 있는 분들이 그 과정을 다시 복기해보고, 누가 이것을 찾아야 하는지, 왜 놓쳤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며 "(정권이 출범한 지) 여러 달이 지나고, 숱한 인사 검증을 했는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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