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권력자’ 조합장 선거는 5당4락…‘조합장’行 열차의 혼탁
  • 정성환·조현중·전용찬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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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광주·전남북 농수축협 동시 조합장 선거…‘5당4락’ 회자, 돈 선거 기승
권한은 막강하지만, 부담은 적은 ‘꽃놀이 자리’…주인인 조합원은 ‘뒷전’으로 밀려
조합장선거는 농협개혁의 ‘첫발’…“협동조합 본질회복 역할 조합장 뽑아야”

‘조합장 선거는 5당4락(五當四落).’

4일 오후 전북 김제시 요촌동에서 만난 농협 조합원 이 아무개(61)씨는 “요즘 조합장 선거가 어떻게 돌아가느냐”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답했다. 그나마 선거관리 당국의 감시 눈초리가 한층 매서워진 점을 감안해서 추산한 것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조합장에 당선되려면 5억 원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4억 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뜻으로 조합장을 둘러싼 금권선거를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이씨는 조합원들 사이에 돈봉투나 금품 수수 여부를 놓고 눈치싸움을 하는 등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1월 말, 김제시 봉남면과 성덕면, 진봉면 등에서는 지역농협에 출마한 한 조합장 후보 측 관계자로 알려진 인물들이 조합원들에게 홍어를 전달해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홍어를 받은 조합원들의 자수행렬이 이어졌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를 확대해 홍어를 받은 20여명 외 조합원들 색출에 주력하고 있다. 익산의 한 농협도 조합원들 간에 현금 살포와 영양제를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돈을 받은 조합원들이 선관위에 자수했다.

선거 뒤에는 돈을 받은 조합원에게 부과되는 과태료 폭탄이 지역전체의 문제로 비화하는 후유증도 우려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조합장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벼슬인지, 또는 무슨 이권이 그리 많은지 혼탁과열 양상 때문에 농·수·축협조합이 ‘선거비리 조합’이 됐다는 조롱도 나온다.  

농협과 수협, 축협 조합장을 뽑는 전국 동시선거가 오는 8일 실시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 관리하는 조합장 선거는 역대 3번째다.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광주와 전남은 199명의 조합장을 선출한다. 광주는 18곳, 전남은 181곳에서 조합장을 뽑는다. 농·축협이 140곳으로 가장 많고 산림조합 21곳, 수협 19곳, 한국농어업협동조합 1곳이다. 전북에서는 농·축협 94곳, 산림조합 13곳, 수협 4곳 등 총 111개 조합에서 조합장을 뽑는다. 접수 마감 결과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곳이 5대 1이며, 무투표 당선 조합은 21곳으로 나타났다.

농수축협 조합장을 뽑는 선거가 오는 8일 실시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 관리하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는 역대 3번째다. 표밭마다 돈으로 유권자인 조합원을 사고파는 ‘돈봉투 선거’의 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관위와 검찰의 지도와 단속으로 많이 나아진 기미를 보이지만 이번에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전남의 한 단위농협 전경 (사진은 기사 본문의 내용과 무관함) ⓒ시사저널 정성환
농수축협 조합장을 뽑는 선거가 오는 8일 실시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 관리하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는 역대 3번째다. 표밭마다 돈으로 유권자인 조합원을 사고파는 ‘돈봉투 선거’의 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관위와 검찰의 지도와 단속으로 많이 나아진 기미를 보이지만 이번에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전남의 한 단위농협 전경 (사진은 기사 본문의 내용과 무관함) ⓒ시사저널 정성환

돈봉투·탈법선거 백화점…현직 조합장, 법 위반 사례 ‘다수’

표밭마다 돈으로 유권자인 조합원을 사고파는 ‘돈봉투 선거’의 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무소불위 ‘농촌의 권력자’로 불리는 조합장행(行) 열차에 올라타기 위해서다. 선관위와 검찰의 강력한 지도와 단속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이번에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난 1일 기준 전남도선관위가 집계한 선거법 위반 사례는 고발 15건, 수사의뢰 2건, 이첩 1건, 경고 28건이다. 전북선관위도 같은 기간 모두 20건(고발 7건·수사 의뢰 2건·경고 11건)의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 위반 유형 중 금품제공 등 기부행위가 10건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전북경찰청도 같은 기간에 모두 24건(45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법 사례는 가지각색이다. 돈과 금품으로 유권자인 조합원을 매수하는 사례가 전형적이다. 전남에서는 한 조합장 후보자의 측근이 조합원에게 100만원을 주고, 이 조합원이 다른 조합원에게 50만원을 건네는 ‘다단계 매수’가 적발되기도 했다. 또 다른 전남의 농협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B씨는 조합원 집에 찾아가 “이번 선거에 한 번만 도와 달라. 일할 때 힘드니까 막걸리라도 사서 드시라”며 현금 100만원을 건넸다. B씨는 또 조합원 215명에게 지난 추석에 굴비 선물세트를 돌렸다가 전남선관위에 적발됐다. 전남지역 수협 이사인 C씨는 지난 9월과 10월 조합 산악회 행사에 참석해 조합원 31명에게 배를 찬조물품 명목으로 제공했다가 경찰에 고발됐다. 

특히 현직 조합장들의 선거법 위반사례가 많다. 4년 임기 동안 차기 선거를 위해 노골적인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익산의 한 농협 조합장은 조합원들에게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고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해 12월에는 한 지역농협의 이사 등 36명이 2박 3일 동안 농협 예산 3000만원을 들여 워크숍 명목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참석자들 가운데 14명은 조합 이사의 배우자들이었고, 이 중 12명은 이 농협의 조합원이었다. 전북선관위는 이들 12명에 대해 960만원 상당의 식사와 이동 편의를 제공한 것은 불법 기부행위라고 보고 해당 농협 조합장을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전북 도내 한 산림조합장의 경우 그동안 조합의 경비로 조합원의 경조사에 축·부의금을 제공하면서 조합의 경비임을 밝히지 않거나 본인의 명의로 제공하는 등 총 500여건, 2600여만원 상당의 축·부의금을 제공한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됐다. 이 역시 현직 조합장의 선거법 위반 사례다. 그런가 하면 아예 후보자를 매수하려 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 2일 전북지역 한 전직 조합장 D씨는 현직 조합장인 E씨를 위탁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출마를 포기하면 1억원이 넘는 돈을 주겠다’며 상대 후보를 매수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돈봉투 살포와 기부행위 외에도 선물, 식사 대접, 찬조금 등 돈을 뿌리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선관위는 조합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과거 전례가 있는 곳을 ‘금품살포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감시를 강화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돈봉투가 뿌려지고 있다는 심증은 확실하지만 제보나 뚜렷한 물증이 없어 단속을 못한 경우가 많다”며 “부정행위가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는 데다 조합원 다수가 고령인 탓에 죄의식도 낮아 부정선거 단속이 겉도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농·수·축협 조합장을 뽑는 선거가 오는 8일 실시된다. 공명선거를 표방하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 관리하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는 이번이 역대 3번째다. 그러나 여전히 금권과 불법 선거가 판을 치고 있다. 전북경찰청도 지난 1일 기준 모두 24건(45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북경찰청 전경 ⓒ시사저널
농·수·축협 조합장을 뽑는 선거가 오는 8일 실시된다. 공명선거를 표방하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 관리하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는 이번이 역대 3번째다. 그러나 여전히 금권과 불법 선거가 판을 치고 있다. 전북경찰청도 지난 1일 기준 모두 24건(45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북경찰청 전경 ⓒ시사저널

불법선거 기승하는 이유는…‘제왕적 조합장 권력’ 탓 

그렇다면 조합장 후보들은 왜 형사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불법선거 유혹을 떨치지 못할까. 이는 조합장이 갖는 막강한 권한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농산물 유통과 판매 금융까지 조합장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조합 규모가 큰 지역에선 ‘조합장이 어지간한 지역 공기업 사장이나 공공기관장보다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 원의 자금을 관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또 임기 4년 동안 조합의 대표권, 업무 집행권, 직원 임면권 등도 행사한다. 

농산물 판매와 하나로마트 운영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한 지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대출 같은 신용사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조합장 전결로 금리와 대출 한도를 정할 수 있다. 여기에 억대 연봉까지 받는 짭짤한 수입도 공기업이나 대기업 간부가 부럽지 않다. 조합 간 편차가 있지만 조합장의 평균 연봉은 통상 1억 1000만원 수준으로 규모가 큰 조합은 연봉이 더 많다. 업무추진비 등 수당은 별도이고, 운전기사와 차량도 제공 받는다. 연임이 자유로워 10년 이상 조합장을 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현행 농협조합법에 따르면 지역농협은 자산규모가 2500억 원을 넘으면 비상임 조합장을 두도록 하는 대신 연임 제한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무제한 연임이 가능하다. 연임 제한이 없는 조합장들은 보통은 3~4선은 기본이고 10선까지 종신·세습형 조합장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전국적으로 비상임 조합장을 두고 있는 지역농협은 462개로 전체의 41.3%를 차지한다. 이들 중 16.2%가 4선 이상이며 10선을 한 조합장도 있다. 농협중앙회 등에 따르면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대전과 충북에서는 일부 조합장이 ‘10선’을 바라보고 있다. 또 7선과 5선은 물론 4선에 도전한 현직 조합장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재임 기간에 해당 조합에서 상왕 노릇은 물론 지역에서 유지를 뛰어 넘어 토호로 불린다. 조합장은 웬만한 지자체장과 맞먹는 파워에 정치적 도약대가 되기도 한다. 실제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 지방의회 의원이나 자치단체장까지 출마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어쩌면 부담도 지자체장보다 적어 꽃놀이 자리다는 평가도 받는다. 조합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력이 강해진데다 지역 유대도 끈끈하다 보니 막강한 권한들이, 조합원을 위해 봉사해야 할 조합장을 ‘농산어촌의 제왕적 권력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현직에 유리한 제도 역시 ‘한몫’…선거법 개정안 국회서 낮잠

현실에 맞지 않는 선거제도 역시 한 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직에 유리한 조합장 선거제도가 돈과 탈법의 유혹에 빠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이 지나치게 제약돼 ‘깜깜이 선거’,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지기 일쑤다. 우선 조합장 선거는 다른 공직 선거와 달리 예비후보 기간이 짧다. 선거운동원이나 선거사무소 없이 후보 혼자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연설회나 토론회를 열 수도 없다. 현직이 아닌 신인들은 좀처럼 얼굴 알릴 기회가 없다. 

물론 유권자 집을 방문할 수도 없다. 농·축협 특성상 조합원들이 논이나 밭, 축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마저 방문하면 안 된다. 이런 제도가 현직 조합장에게 유리한 상황을 제공, 다른 경쟁자들은 돈 봉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남지역 농협 조합장 출마예정자는 “현직 조합장과 경쟁하는 후보들이 자신을 알릴 길은 돈(선물)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조합장 선거의 맹점이 되풀이되면서 선거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런데도 국회는 조합 선거법 개정에 뒷짐을 지고 있다.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해당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수년째 낮잠만 자고 있다. 대다수 농촌 지역구인 여야 의원들이 표 확장력을 가진 조합장들 눈치를 보면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광주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선거운동의 주체를 후보자 한 사람으로 제한한 것은 선거운동이 사실상 온 가족과 친인척에 의해 이뤄지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며 불법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법을 개정해 현직과 신인이 공정하게 선거운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8일 제3회 전국 동시 농수축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지역 시민단체가 고창군청 입구에 내 건 ‘돈 선거 끝장내야 조합원이 주인 된다’고 금권선거 근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독자 제공
오는 8일 제3회 전국 동시 농수축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지역 시민단체가 고창군청 입구에 내 건 ‘돈 선거 끝장내야 조합원이 주인 된다’고 금권선거 근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독자 제공

조합서 멀어지는 농민조합원…농협 주인은 임직원?

무리한 금권과 탈법선거는 향후 △업무상 배임, 횡령 등 내부 금융사고 △채용비리 △일감 몰아주기 △납품비리 △특혜성 대출 △성추행 △갑질 논란 등으로 이어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찮다. 이렇다보니 ‘과연 농협은 누구 것인가’라는 질문이 터져 나온다. 정답은 ‘농민조합원’이다. 하지만 이것은 교과서의 정답일 뿐, 현실에선 ‘농협은 임직원의 것’이란 말이 무성하다. 농협은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자주적 협동조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농업이 몰락하고 농민이 줄어들어도 농협은 점점 커지고, 비민주적 운영으로 농민 조합원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농민의 삶은 쪼그라드는데 농협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뒷전이고 손쉬운 돈 장사(신용사업)만 한다” “협동조합이 아니라 협동공사다”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농협은 조합원이 주인이고, 조합이 조합원의 총의에 따라 그 연합조직인 중앙회를 운영해야 하지만, ‘지역조합은 농민 위에, 중앙회는 지역조합 위에’ 군림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영형 전 해남군농민회장은 “조합장직은 결코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기 위한 벼슬이 아니다”며 “사리사욕에 빠진 나머지 조합장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조합장 노릇만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조합장은 ‘조합장 노릇’ 아닌 ‘조합장 구실’로 주인인 조합원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조합원들에게는 “지연 등 연고와 금품에 좌우되지 않고 협동조합 본질 회복에 제 역할을 해낼 조합장을 뽑아야 한다”며 “현재 농협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합장 한 사람만 잘 뽑아도, 그 농협과 농민 조합원의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조합장 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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