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어느나라 대통령이냐” 절규 쏟아낸 강제징용 생존자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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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덕 할머니 등 생존자 3명, ‘제3자 변제안’ 반발
“한국 기업이 내는 돈, 사죄 아냐…죽어도 못 받아”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3월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3월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평생을 고통 속에 살면서 바라온 건 일본의 사죄 뿐이다. (윤석열은) 어느나라 대통령이냐"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일본 기업이 빠진 '제3자 변제안'을 공식화하면서 피해자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피해자 측은 정부 제시안은 '해법'이 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 면책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6일 광주에서 열린 정부 배상안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동냥해서 (주는 것처럼 하는 배상금은) 안 받으련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양 할머니는 정부가 끝내 '제3자 변제안'을 공식화하자 허탈함을 드러내며 "정부가 옳은 판단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우리 기업이 마련한 돈은 진실된 사죄의 의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곧 죽어도 그런 돈은 못 받는다"며 수차례 고개를 가로 젓기도 했다.

양 할머니는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부 등 정부 대응을 꼬집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나라 대통령이냐"고 질타했다. 

양 할머니는 "(정부가) 강제로 돈을 쥐어줄 심산이어도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와 연대해 막아낼 것"이라며 "살아있는 동안 그런 식으로 들어오는 돈은 결코 받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오면서 바라온 건 일본의 사죄 뿐이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요원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아흔을 넘었지만 억울해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없다. 정부는 옳은 판단으로 피해자들의 입장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양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해 있는 징용 피해자 3명은 모두 정부 해법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일본제철·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 소송 원고 대리인단(김세은·임재성·장완익·민족문제연구소)은 정부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피해자들의 경우 법원 판결에 따른 기존 추심 집행절차를 신속 진행하고, 압류·추심명령에 따른 새로운 추심금 청구 소송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만일 생존 피해자들이 배상금 수령을 끝내 거부한다면 정부는 피고 기업과 채무인수 계약을 체결해 '채권자 동의 없는 채권소멸'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 쪽에서 무효 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지만,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결국 일본 기업의 진정한 사과 없이 변제 금액만 지급된 채 배상 절차가 종결될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 지원 단체도 이 점을 우려해 정부 후속 절차에 신속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3월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징용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얼굴을 만지고 있다. ⓒ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3월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징용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얼굴을 만지고 있다. ⓒ 연합뉴스

민족문제연구소와 법률대리인들은 정부안에 대해 "식민지배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2015년 일본 위안부 합의 당시엔 일본 정부의 사죄가 있었던 반면 "지금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위안부합의보다 더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저자세로 일관해 일본의 사과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그 어떤 재정적 부담도 없는 굴욕적인 해법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광주에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도 "대한민국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시킨 '사법 주권의 포기'이자 자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비난했다.

피해자 측은 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미래청년기금'(가칭) 조성 추진에 대해서는 "한국의 외교참패를 감추기 위한 꼼수"라고 평가했다.

특히 외교부의 피해자 측 의견수렴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일본제철과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 징용 피해자 및 유족 9명 중에서 4명은 명시적으로 한국 정부 입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김세은 변호사는 "정부는 정해진 안을 발표하기 위해 사전에 만남을 갖고 설명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설명들을 두루뭉술하게 하면서 절차를 진행했을 뿐"이라면서 "정부는 정부가 하고 싶은 안이 있었고 거기에 반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아무런 코멘트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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