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송환’ 장담 못하는 법무부…피해자들은 “차라리 미국 갔으면”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7 17: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 대표 신병 놓고 한국·미국·싱가포르 ‘경쟁’
‘100년형’ 가능한 美송환 원하는 피해자 목소리 높아
도피 행각을 벌이던 중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3월24일(현지 시각)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 있는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피 행각을 벌이던 중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3월24일(현지 시각)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 있는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든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의 신병 확보를 위한 국가 간 '쟁탈전'이 본격화됐다.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및 피해 회복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최대 종신형 선고까지 가능한 미국으로의 송환을 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7일 법무부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 후 구금된 권 대표의 신병 확보를 위해 범죄인 인도 청구 및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수사 선상에 올라 있던 권 대표가 국제 공조로 추적 11개월 만에 해외에서 검거됐지만, 국내 송환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과 싱가포르도 앞다퉈 권 대표 신병 확보에 나선 데다, 몬테네그로 검찰도 검거 하루 만에 그를 공문서위조 등으로 기소하면서다. 몬테네그로를 제외하더라도 한국을 비롯해 3개 국가가 권 대표 신병 확보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권 대표를 어느 국가로 보낼 지는 몬테네그로 법원 판단에 달렸다. 현재까지 진행된 권 대표 주요 혐의 관련 수사 상황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각국 검찰 및 법무부의 몬테네그로 재판부 설득이 관건이다. 

이에 대해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미국·싱가포르 세 국가 중) 누가 제일 선점권을 갖고 있느냐, 피해자가 어디에 많으냐, 국적이 어떻게 되느냐, 형사사법의 정의가 어느 나라에서 가장 확실하게 실현될 거냐, 이런 걸 몬테네그로 법원이 따져서 판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승 연구위원은 "(어느 국가가) 설득력 있는지를 볼 것"이라며 "(국내 송환 가능 여부는) 대한민국 법무부가 얼만큼 노력하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전문 분석업체인 원더프레임의 김동환 대표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미국 검찰은 이미 (금융 사기 및 시세 조종 등 8개 혐의로 권 대표를) 기소했고, 한국도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으며 원래 권 대표가 살던 곳인 싱가포르도 800억원 (사기 혐의 관련)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그쪽도 신병 인도 요청을 했다"며 "결과적으로 몬테네그로가 누구에게 (권 대표를 인도해) 주느냐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테라·루나 사태를 수사해 온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은 권 대표 신병 확보와 동시에 공범으로 지목된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에 대한 보강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신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도 저울질 하고 있다. 

도피 행각을 벌이던 중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3월24일(현지 시각)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 있는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
도피 행각을 벌이던 중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3월24일(현지 시각)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 있는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

피해자들 "구속영장 줄기각, 한국 법원 못 믿어"

권 대표 신병 처리를 바라보는 국내 피해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피해 회복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중한 처벌이 가능한 미국으로의 인도가 더 낫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신 전 대표에 대한 1차 구속영장 청구 당시 법원이 테라와 루나를 증권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등 기소되더라도 국내에서 엄중 처벌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여론이 높다. 

테라·루나 사태 관련 피해자 온라인 카페에서 권 대표의 국내 송환 여부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진행한 결과 이날 오후 4시 기준 100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72명(72%)은 '권도형이 미국으로 인도돼 처벌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권 대표의 한국 송환을 바라는 의견은 15%, 잘 모르겠다는 13%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를 진행한 카페 운영진은 "루나·테라 사기 사건으로 (피해자들의) 고소가 이뤄진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권도형을 제외한 공범 신현성 및 연관된 어떠한 이들도 검찰에 기소된 사실이 없다"며 "이는 앞으로 국내 재판에서는 권도형을 포함한 사기 일당들이 법원에서 중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원들도 댓글에서 "한국 법원을 믿을 수 없다", "신현성과 일당들 구속영장 줄줄이 기각하는 꼴을 보면 답 나온다", "한국은 10년 정도 징역이지만 미국은 종신처럼 감옥에서 죽을 수 있다"며 미국 송환에 찬성 입장을 폈다. 

승 연구위원은 권 대표가 미국으로 송환되고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인정 받는다면 '100년 이상의 형'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에서 (권 대표를) 8가지 죄명으로 기소했는데 사기가 포함됐다"며 "2009년 메이도프라고 70조원 가까이 폰지사기를 한 사람이 150년형을 받아서, 권도형이 저질러 놓은 범죄가 52조원 정도라면 적어도 100년 이상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권도형은 '도망간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2개 나라 위조 여권을 만들었고, '전 재산을 다 잃었다'고 했는데 스위스은행에 비트코인 등 약 2000억원을 갖고 나왔다는 게 입증됐다"며 이 같은 행위가 양형에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 송환을 바라는 국내 여론에 대해 "검사가 (권도형을) 자본시장법178조 사기적부정거래로 공소를 제기했는데, 2020년 자본거래법 위반 62건 중 집행유예가 나오는 게 40%가 넘는다"며 "'차라리 미국 보내라'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합리적인 분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