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진 복수극 콘텐츠, 뮤지컬로 확대될까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2 11:0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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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복수극 3대장 《퍼레이드》 《몬테크리스토》 《스위니 토드》 등 주목

지난 연말 시즌1이 처음 공개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가 얼마 전 시즌2를 내고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고등학교 시절 다섯 명의 동급생에게 극심한 학교폭력을 당한 문동은(송혜교 분)이 성인이 돼 처절한 복수를 벌이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시즌1의 여운이 남아있고 시즌2 공개가 임박했던 사이에 학교폭력에 관한 사회적인 관심이 촉발되는 사건이 있었다.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고교 동급생에게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해 소송까지 걸어 2차 가해를 했으며 끝내 패소했음이 뒤늦게 알려져 정 변호사가 낙마한 일이다.

ⓒEMK뮤지컬컴퍼니·뉴욕시티센터·뉴시스 제공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더 글로리》가 부른 사적 복수 열풍

또한 학교폭력 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권의 많은 나라에서 ‘반(反)학폭’ 운동과 가해자를 찾아내는 ‘학폭 미투’로도 이어졌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들을 보듬고 이제라도 가해자의 반성을 촉구하게 하는 정의 실현의 기폭제가 됐다. 《더 글로리》가 가져온 후폭풍이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더 글로리》는 피해자가 오랜 기간 절치부심해 준비한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복수극의 서사’를 따르면서도 피해자가 당한 과거의 고통이 현재진행형임을 알리는 장치가 많이 등장한다. 복수에 나서는 피해자가 완벽한 정의 구현의 히어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한 인간임을 보여줘 학폭의 위험성에 대해 재차 환기하는 교육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

이처럼 대중문화에서 보여지는 복수극의 서사는 피해자가 벌이는 사적 복수의 통쾌함보다는 그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적인 방지책이 부족한 현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한다. 무대에서 인기가 높은 뮤지컬에서도 복수극을 소재로 한 대형 작품이 적지 않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권력에 의해 개인적인 삶과 일상 그리고 행복이 망가진 인물이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이러한 소재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킬 앤 하이드》의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뮤지컬로 2009년 3월 스위스에서 초연하고 한국에서는 2010년 초연됐다. 그동안 다섯 차례 공연됐으며 실황도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1845)을 원작으로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의 현재적인 고통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2002년 영국·미국·아일랜드 합작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유사하다.

19세기 초 프랑스가 이 작품의 배경이다. 능력 있는 1등 항해사 에드몬드 단테스는 항해 중 선장이 급사하면서 새 선상으로 승진한다. 연인 메르세데스와 약혼식도 올리는 등 순탄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항해 중 엘바섬에 유배 중이던 나폴레옹으로부터 서신을 전달받은 사실을 주변에서 폭로하면서 억울하게 14년간이나 투옥당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탈옥에 성공해 복수를 실행한다. 그를 감옥에 집어넣은 당사자는 빌포트 검사다. 편지의 수신자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자신까지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을 두려워해 누명을 씌웠던 것이다. 그를 밀고한 주변 사람들 중에는 한때 친구였고 한배를 탄 동업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철저히 사적인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특히 빌포트는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1979년 브로드웨이 작품으로 2007년 우리나라에 초연돼 지금까지 네 차례 공연을 가진 뮤지컬 《스위니 토드》 역시 주인공 벤자민 워커가 자신의 부인과 어린 딸을 빼앗아간 터핀 판사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는 이야기다. 그 역시 에드몬드처럼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명확한 죄명도 없다. 그의 아름다운 부인을 탐한 권력자 터핀 판사의 계략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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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한 장면 ⓒ뉴시스

대중은 복수극에 열광하지만 치유 해법도 함께 찾아야

터핀 판사는 그의 아내를 파티장으로 불러내 강간하는데 주변에 있던 상류층 사람들은 누구도 그것을 말리지 않고 구경했다. 신분 세탁을 위해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꾸고 런던에 돌아온 주인공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터핀 판사와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운다. 하지만 자신은 평소 그들을 마주칠 수도 없는 일개 서민이라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자조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이 작품에는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는커녕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단단한 권력의 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오히려 1차 복수가 실패로 돌아가자 곧바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카니발리즘적인 살육 축제를 벌인다. 이는 사적인 복수가 지나쳐 가해로 확장된다면 그 역시 구원받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는 점을 심오하게 보여주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뉴욕시티센터·뉴시스 제공
뮤지컬 《퍼레이드》의 한 장면 ⓒ뉴욕시티센터 제공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퍼레이드》는 또 다른 관점에서 사적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극 《드라이빙 미스데이지》의 극작가 알프레드 유리의 작품으로 1913년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유대인 공장장 레오 프랭크는 백인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체포된다. 매스컴은 이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대중은 당장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결백함을 믿고 그를 적극 변호한 부인의 노력으로 겨우 사형을 면했지만, 감옥에 다시 들어가는 과정에서 분노한 군중이 그 행렬을 습격한다. 결국 그는 마을의 나무 위에서 ‘사적인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다.

100년도 더 지난 사건이지만 세상을 뒤덮은 반유대주의 인종차별과 황색 저널리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이 여기에 담겨 있다. 잘못된 정보에 의해 대중이 사적 복수라는 달콤함에 빠져 집단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세상의 문동은과 같은 피해자들이 모두 복수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들은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과 법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등에 업고 피해자를 무력화시키기에 동은에게는 ‘복수’가 꿈이 되는 것이다. 이제라도 복수가 아니라 치유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그 해법을 찾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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