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중대선거구제였다면 지역구 기준 민주 127석, 국힘 104석”…원래보다 16석 잃어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31 10:0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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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방정식 ‘선거제 개편’…열쇳말은 ‘수도권’과 ‘복수공천’
“중대선거구제, 제3당 원내 진입 가능성 지금보다 대폭 키워”

지금 대한민국 선거제도는 ‘절반의 국민’에게 ‘승복’을 어렵게 한다. 현행 선거제도인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1등만이 당선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다른 후보에게 던진 표를 죽은 표, 즉 사표(死票)로 만든다. 민주화 이후 13대(1988년)부터 21대(2020년) 총선까지 평균 사표 비율은 무려 49.98%다. 

실제 지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얻은 정당 득표율은 67%인데 실제 의석은 95%를 차지했다. 3분의 2 지지를 받은 양당이 사실상 전체 의석을 거의 다 차지한 셈이다. 선거제가 개혁돼야 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30% 유권자의 다양한 목소리도 제도권 정치에 담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균형 문제는 지역구를 기준으로 보면 더 심각하다. 지난 총선(지역구 기준)에서 민주당은 득표율 49.9%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41.5%를 기록했다. 양당이 얻은 표 차이는 8.4%포인트에 불과했지만, 의석수는 163석 대 84석으로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차이가 났다. 소선거구제가 ‘승자 독식형’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자 최근 국회가 선거제 개편에 나선 주된 원인이다.

국회는 3월30일부터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는 3월30일부터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절반의 국민’ 승복 어렵게 하는 소선거구제

만약 지난 총선을 소선거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로 치렀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 질문은 지금 선거제 개편을 둘러싼 복잡하고 난해한 수많은 논의와 정치 방정식을 꿰뚫는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명분’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양당제의 폐해를 낳았다고 비판받는다. 지금의 정치 양극화는 “사실상 정서적 내전 상태”(김부겸 전 국무총리)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 그 근본 원인인 소선거구제라는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기에 선거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면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김진표 국회의장에게도 지금 선거제 개편의 중심에는 중대선거구제가 있다.

‘실리’도 중요하다. 현역 국회의원들은 물론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자 하는 정치인들에게 “어떤 선거제도가 나에게 유리할까”라는 ‘유불리 잣대’는 정치 개혁을 바라는 민의와 그 명분을 초월할 만큼이나 중요한 변수다. 22대 총선(2024년 4월10일)은 이제 불과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시기고 상황이다. 중대선거구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현역 의원들은 물론 정치 신인들에게도 ‘공천부터 본선까지’ 괜찮은 대안이라는 분위기가 최근 여의도 정치권 수면 아래에서 감지된다.  

‘실현 가능성’ 역시 따져봐야 한다. 과연 국민의힘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이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를 개편할 유인을 갖고 있는지, 어느 한 당에만 유독 타격이 되고 이득이 되진 않는지 계산기를 두들겨보는 일은 이번 선거제 개편 국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일 수 있다. 이미 여의도(국회)는 물론 용산(대통령실)도 나름의 계산을 끝내 놓았을 것이다. 계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양당이 선거제 개편 논의 과정을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 쌓기용으로 활용하면서 현행 제도를 약간만 손보는 식으로 타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명분’과 ‘실리’ 그리고 ‘실현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변수를 조합해 보면, 지금 선거제 개편에서 중요한 화두는 단연 중대선거구제로의 이행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 화두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은 “지난 총선을 과연 소선거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로 치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의뢰한 이유다.

 

중대선거구제에선 ‘수도권 싹쓸이’ 없다

시사저널이 3월30일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020년 21대 총선 득표율을 소선거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해 시뮬레이션(지역구 획정이 미정이니만큼 대선거구제 기준)한 결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소선거구제일 때는 전체 253석 중에서 양당 합계 247석을 가져갔지만, 중대선거구제일 때는 231석을 차지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16석을 ‘제3정당’이 더 가져간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득표율 49.9%의 민주당은 127석을, 41.5%의 국민의힘은 104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지난 총선과 비교해볼 때 민주당은 36석을 잃고, 국민의힘은 20석을 더 얻는 것이다. 

지난 총선의 승패를 사실상 판가름 지었던 수도권에서의 명암은 더욱 뚜렷하게 갈렸다. 총 49석의 서울에서 민주당은 41석을 휩쓸며 8석에 그친 국민의힘을 압도했는데, 중대선거구제 아래서는 26석을 차지하는 데 그치고 국민의힘이 21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59석이 걸린 경기에서도 민주당은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고(51석→32석), 국민의힘은 크게 늘어나는 것(7석→24석)으로 파악됐다. 13석의 인천에선 민주당은 11석에서 7석으로, 국민의힘은 1석에서 5석으로 큰 변화가 나타났다. 즉,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바람’이 분다고 해도 어느 한 정당이 압도적 싹쓸이를 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소선거구제가 중대선거구제로 바뀌면, 영남과 호남에서의 ‘1당 독주 체제’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대구에서 12석 중 11석을 차지했는데, 중대선거구제였다면 7석에 그치고 민주당이 3석 정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각각 10석인 전남과 전북에서 10석과 9석을 차지했는데, 중대선거구제 아래서는 각각 6석 정도를 차지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에서의 제3당 출현이나 무소속의 약진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1석을 얻는 데 그쳤는데, 중대선거구제였을 경우 5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제3당의 원내 진입은 물론 제3당 단독으로 혹은 타 정당과의 연합을 통해 원내교섭단체(20석)를 꾸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기존의 소선거구제가 거대 양당의 기득권은 지키고 제3당 출현은 가로막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조사 결과”라면서 “단순하고 유권자에겐 익숙하지만,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여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양당제라는 폐해를 고착화시키는 소선거구제를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소선거구제를 지키겠다는 정치인들도 역시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尹의 물갈이, 중대선거구제로 충돌 없이 가능

국회는 3월30일부터 2주간 5차례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고 선거제 개편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전원위는 국회의장을 제외한 의원 299명 전원이 참여해 특정 안건에 대해 토론하는 기구다. 전원위 개최는 2003년 이라크 파병 논의 이후 20년 만이다. 그만큼 선거제 개편이 복잡하고 난해한데 이해관계도 첨예해 풀기 어렵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물론 거대 양당 등 내년 총선 승패에 명운이 갈리는 모든 주체는 지금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전원위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제시한 3개 안을 압축해 단일안을 도출하고 이 안을 다시 ‘정개특위→법사위→본회의’ 순으로 의결해 최종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물론 전원위에서 의원 다수가 찬성하는 개편안을 만들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 직전까지 선거제 개편을 둘러싸고 혼란과 공방이 이어질 수도 있다.

전원위에 상정된 3개 안은 ①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③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다. 

①안은 국민의힘이 제안했다.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에서는 3~5명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어촌에선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안이다. 이 제도 아래에선 지역구 의원에게는 상대 당 후보뿐만 아니라 같은 당 의원 역시 경쟁자가 된다. 일부 지역구를 통폐합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지만, 현재 선거제 개편 논의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여권 핵심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이 안을 제시한 이유는 ‘명분’과 ‘실리’는 물론 ‘실현 가능성’도 가장 높게 충족하기 때문”이라면서 “여권은 내년 총선의 승패가 수도권에서 갈린다고 본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 의석 121석 중 16석에 그쳤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어떻게 보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이유도 ‘실리’적 이유로 분석했다. 그의 말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승리를 원하고, 그 핵심 방법론은 검사 등 새로운 정치세력 유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대적 인적 개편은 ‘인위적 물갈이’라는 반대에 부닥치기 마련인데, 중대선거구제에서는 물갈이 대상인 현역 의원들도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소한 공천을 두고 경선을 해볼 여지가 생긴다. 정치 신인 입장에서도 기회가 아예 박탈되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나을 수 있다. 여러 플레이어 모두가 의외로 새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일부 감지된다.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은 중진 의원들의 경우 앉아서 ‘공천 학살’을 당하는 것보다는 국민이 원하는 선거제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새로운 제도에서 경쟁해 보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②안과 ③안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제시했다. ②안은 한 선거구당 4~7명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지역구 선거를 치르고, 개방형 명부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대선거구제를 채택한 ②안에선 정의당 등 제3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③안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입장에서 계산기를 두들겨보면 소선거구제 유지가 더 이득일 수도 있다. 전체 지역구 253석 중 40%를 차지하는 수도권에서 우위를 보이는 게 바로 민주당이기 때문”이라면서 “민주당이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제만 손보는 ③안을 함께 낸 배경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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