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커진 아가동산, 영농법인 세우고 음반 매출 700억 돌파
  • 공성윤·김현지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3 07:3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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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가동산 사건 그 후 27년, 400명이던 주민 50명으로 줄었지만 물적 규모 오히려 성장
주민들 여전히 의혹 부인, 신나라레코드도 관계 부인...'김기순 치매설'로 재산권 분쟁 가능성 有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667번길. 차 한 대만 겨우 지나다닐 만한 이 좁은 밭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옆쪽에 10m 폭의 넓은 도로가 등장한다. 아스팔트가 맨들맨들하게 깔려 개미 한 마리 안 보이는 이 도로는 대장로 278번길이다. 초입에는 마치 군 보충대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디귿(ㄷ)자가 일어선 형태의 문이 설치돼 있다. 양쪽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비석이 우뚝 서있다. 각각 ‘네이쳐팜’과 ‘아리랑월드’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1996년 말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아가동산 사건. 이곳은 그 아가동산의 본산이다.

MBC가 만들고 넷플릭스가 배급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잊혀가던 27년 전의 사건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1996년 검찰 수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가동산은 원래 협업농장을 표방하며 설립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혹사와 살인을 자행한 사이비 종교집단이라는 의혹이 자자했다. 수사와 처벌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혹’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법원은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의 살인과 폭행 혐의를 끝내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월28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장로 278번길 초입에 위치한 아가동산 입구 ⓒ시사저널 최준필
3월28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장로 278번길 초입에 위치한 아가동산 입구 ⓒ시사저널 최준필

‘아리랑월드’로 부활한 흑막의 아가동산

대신 김기순은 횡령과 조세포탈 등 혐의는 피하지 못하고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는 아가동산으로 돌아갔다. 그사이 400명에 달했던 주민은 상당수 이탈해 지금은 50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물적 규모는 오히려 커졌다. 수사받기 직전 해인 1995년 아가동산은 ‘신아영농조합법인’을 세워 정부의 영농지원금 33억여원을 받았다. 이를 유리온실과 논밭을 일구는 데 썼다. 김기순이 돌아온 후 아가동산은 이름을 ‘신나라네이쳐팜’으로 바꿨다. 2017년에는 농산물을 유통하는 ‘아리랑영농조합법인’을 추가 설립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아가동산 입구의 비석에 적혀 있는 그 이름이다. 지금껏 김기순은 주민 이름을 빌려 회사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아리랑영농조합의 경우 자신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시사저널은 3월28일 오전 10시30분경 아가동산을 찾았다. 사전에 아리랑영농조합 대표이자 아가동산 이장인 안동조씨로부터 “주변만 둘러보는 건 괜찮다”는 허락을 구했다. 일대에는 전부 낮은 펜스가 설치돼 있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중앙의 대장로 278번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트럭 한 대가 느린 속도로 기자를 쫓아왔다. 멈춰 세우고 “왜 쫓아오냐”고 물어봤지만 창문을 닫은 채 말이 없었다. 그때 운전자의 휴대폰에 전화벨이 울렸다. ‘기자 질문에 답해도 되나’라는 취지의 대화가 이어졌다. 통화를 마친 그는 그제야 창문을 열고 신분을 밝혔다. 아가동산의 새마을지도자로 일한다는 남성 김아무개씨(68)다.

백발을 부스스하게 기른 김씨는 중장비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천안 출신으로 20대 때 어머니와 함께 아가동산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작고한 지금은 부인과 자녀 없이 혼자 살고 있다. 쭈뼛쭈뼛하던 김씨는 아가동산에 대한 세간의 시선에 대해 묻자 점차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우리보고 사이비 종교라고 하는데 대체 사이비를 판단하는 기준이 뭔가”라고 반문하며 “하느님 입장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게 사이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가동산을 둘러싼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1987~88년 김기순은 당시 5세이던 최낙원군을 비롯해 강미경씨(당시 21세), 윤용웅씨(당시 44세) 등 3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들의 죽음에 대한 목격자 진술을 다량 확보했지만 시체를 찾지 못해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김씨는 “최군은 엄마의 주장대로 심근경색으로 죽은 것”이라며 “강미경씨는 법정에서 살아있다는 증언이 나왔고 윤용웅씨는 음독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송 장면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의혹 부인하는 주민 “뭐든 기승전 ‘김기순’이냐”

‘하루 16시간 노동을 강요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강요인가”라며 정색했다. 김씨는 “각자가 좋아서 하는 건데 하다 보면 16시간 넘게 일할 수도 있고 훨씬 적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누구를 탓할 거리가 안 된다”고 말했다.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묻자 김씨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다리에 힘을 주며 “한번 만져보라”고 했다. 지방이 전혀 없는 돌덩이 같은 근육이 느껴졌다. 또 기자의 머리를 조이는 시늉을 하며 “젊은 사람도 나한테는 안 될 것”이라며 체력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입구의 접견실 근처에서 풀을 뽑고 있는 한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주민 이아무개씨(66)다. 그와 대화를 하려고 하니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도 기자 대응 방향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때마침 주변을 둘러보니 CCTV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씨는 31세에 혼자 아가동산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아가동산의 음반 사업체인 신나라레코드물류(현 미디어신나라)에서 경리로 일했고, 지금은 아가동산에서 정원 가꾸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역시 김씨와 마찬가지로 가족은 없었다. 김기순은 주민들에게 ‘인정선’ ‘물욕선’ ‘정욕선’을 가르쳤다고 알려져 있다. 가족과의 관계를 끊고 이성과 재물을 멀리하라는 지시다.

이씨는 다른 주민들을 ‘식구’라고 표현하며 “식구가 많아 전혀 외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에서는 돈 벌려고 싫은 일 억지로 하면서 버틴다는데, 나는 아무 근심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의 이빨을 가리키며 “최근에 치과 치료한다고 수백만원 들었는데 아가동산에서 치료비도 내줬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그는 “보여줄 게 있으니 잠깐 기다려보라”며 접견실에 들어갔다. 30분쯤 후에 그는 사과와 찐호박, 카스텔라, 모시송편 등을 들고나왔다. 전부 아가동산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만든 음식이라고 했다. 이씨는 “고기와 생선만 밖에서 사먹고 대부분 자급자족한다”고 했다. 아가동산 부지는 약 16만 평(52만8900㎡)에 이른다. 부지 곳곳에는 크고 작은 유리온실 10채와 논밭이 조성돼 있다. 일대 땅은 김기순 본인이 아닌 주민들이나 아리랑영농조합 명의로 돼있다.

이씨도 아가동산에 관한 의혹은 전부 거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옛날에는 기사가 전부 사실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예 안 본다”며 “뭐든지 ‘기승전 김기순’이냐”며 비판했다. 그 외에 접촉한 주민들도 모두 같은 취지의 얘기를 반복했다. ‘김기순을 존경하는 이유가 뭔가’라고 묻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회장님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모두가 공평한 세상을 만든 분”이라고 했다. 같은 질문에 김씨 역시 잠시 생각하다 “의미 없는 삶에 용기와 희망을 준 분”이라고 답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이씨가 일어섰다. 그는 “주민들이 정해진 시간에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한다”고 했다. 아가동산 안쪽에는 단면적 600㎡의 4층짜리 정사각형 건물이 있다. 사방에 거대한 기둥이 세워져 있어 외관은 더 넓어 보였다. 이곳에는 김기순의 거처를 포함해 공동식당과 주민들의 방이 모여 있다. 목욕탕과 수영장도 있다고 한다. 건물 뒤편에는 약 5000㎡ 규모의 공터가 마련돼 있다. 《나는 신이다》에 등장하는, 김기순과 주민들이 야외 행사를 진행한 그곳이다.

경기도 이천 소재 아가동산 안쪽의 외부인이 접근 불가능한 건물(왼쪽)에는 김기순의 거처와 공동식당 등이 모여 있다. 주변에는 유리온실 10채가 설치돼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경기도 이천 소재 아가동산 안쪽의 외부인이 접근 불가능한 건물(왼쪽)에는 김기순의 거처와 공동식당 등이 모여 있다. 주변에는 유리온실 10채가 설치돼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경기도 이천 소재 아가동산 안쪽의 외부인이 접근 불가능한 건물(왼쪽)에는 김기순의 거처와 공동식당 등이 모여 있다. 주변에는 유리온실 10채가 설치돼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경기도 이천 소재 아가동산 안쪽의 외부인이 접근 불가능한 건물(왼쪽)에는 김기순의 거처와 공동식당 등이 모여 있다. 주변에는 유리온실 10채가 설치돼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김기순 회장님은 모두가 공평한 세상 만든 분”

‘건물 안을 보고 싶다’고 하니 이씨는 “물어보겠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수원 관리를 맡고 있는 아리랑영농조합 이사 홍아무개씨였다. 홍씨는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과의 접촉은 힘들다”며 거절했다. 홍씨는 기자가 대화를 나눈 주민이 누구인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들렀다. 오전과 달리 눈에 띄는 주민이 한 명도 없었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접촉한 주민들은 모두 아가동산의 최대 사업체 미디어신나라와 연관돼 있었다. 김씨와 홍씨는 각각 미디어신나라 지분 17.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씨는 계열사 신나라뮤직(구 킹레코드)의 대표였다. 음반업계 큰손인 미디어신나라의 전신은 김기순이 1982년 설립한 신나라레코드물류다. 이곳은 1990년대 들어 신나라레코드 간판을 걸고 국내 음반산업을 주도했다. 전국에서 운영한 소매점은 10곳이 넘었다.

그러다 아가동산 사건이 공론화되고 음반산업 침체까지 닥치자 외형이 쪼그라들었다. 현재 운영 중인 소매점은 서울 마포구 홍대점이 유일하다. 그래도 온라인 유통으로 빨리 전환해 매출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온신오핫(온라인은 신나라레코드, 오프라인은 핫트랙스)’이란 신조어가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가 공개되며 또 한 번 위기를 맞닥뜨렸다. 주요 고객층인 10·20대 사이에 아가동산과의 연결성이 알려지며 불매운동이 감지됐다. 파장은 연예계에도 미쳤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3월20일 팬카페에 소속 걸그룹 아이브의 정규 1집 예약판매 공지를 올렸는데, 신나라레코드를 제외하고 핫트랙스 등 다른 판매 사이트의 주소만 올렸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3거리에 위치한 신나라레코드 매장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마포구 동교동 3거리에 위치한 신나라레코드 매장 ⓒ시사저널 최준필

“판매량 줄었다”는 신나라, 입지·재무는 탄탄

시사저널이 신나라레코드 홍대점을 방문했을 때도 침체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3월28일 오전 11시40분경, 영업이 한창이었지만 손님은 외국인 여성이 유일했다. 직원에게 ‘《나는 신이다》 공개 이후 매출에 영향이 있나’라고 물어보니 “오프라인 매장 판매량은 확실히 이전에 비해 줄었다”고 전했다. 이날 매장에 수십 분 더 머물렀지만 새로운 손님은 없었다.

다만 경기도 용인시의 미디어신나라 본사 건물은 달라진 게 없다는 분위기였다. 물류창고로 사용되는 이곳은 음반 운송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앞서 3월27일 오후 본사를 찾았을 때 화물차량 한 대가 박스를 싣고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경비원 A씨는 “직원들이 안에서 음반을 포장하면 이를 화물차량에 실어 보낸다”고 설명했다. 건물 밖에서 들여다본 1층 사무실에는 박스 수십여 개가 잔뜩 쌓여 있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일했다는 A씨는 “하루에 한 번 정도 화물차량이 와서 물건을 싣고 나간다”며 “최근 다큐 공개로 인해 달라진 점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본사 직원들은 아가동산 사건과 무관하다. 미디어신나라가 사용하는 공간은 건물 한 층뿐이고 나머지는 다른 회사에 임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접촉한 다른 직원들은 “잘 모른다”며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

향후 미디어신나라의 재무제표를 봐야 알겠지만, 최근의 회사 입지는 탄탄하다. 2021년 기준 미디어신나라는 아이리버, 지니뮤직, 와이지플러스, 로엔엔터테인먼트 등과 수십억원 상당의 외상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 음반 유통업체들과 교류가 원만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무 상황도 건전하다. 2019~21년 매출액은 572억원, 640억원, 765억원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당기순이익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9년간 줄곧 흑자다.

눈여겨볼 부분은 그사이 급여 수준이 20억원 안팎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매출액이 2013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는데 급여는 고작 1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가동산은 ‘무임금 노동’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1998년 대법원은 아가동산에 대해 “임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으면서 마치 지급한 것처럼 허위로 경리장부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조세포탈 혐의를 인정했다. 아가동산 안동조 이장은 “(미디어신나라에서) 외부 직원도 일한다”고 했다.

3월28일 아가동산에서 주민이 일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3월28일 아가동산에서 주민이 일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김기순, 치매 걸려 서울에서 치료중"

그렇다면 아가동산과 미디어신나라의 배후에 있는 김기순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안동조 이장은 “치매에 걸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아가동산이 낸 《나는 신이다》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에 관해 변호를 맡은 안상운 변호사는 “이번 가처분 신청은 김기순이 아닌 안 이장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했다.

김기순이란 상징적 인물이 힘을 잃으면서 향후 아가동산에 얽힌 재산권을 놓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아가동산 부지의 복잡한 소유권을 둘러싸고 이탈자와 주민 간에 수차례 송사가 있었다. 또 주민 대다수가 고령인 데다 추가 유입자가 없어 존속 여부도 미지수다. 반면 안 이장은 “아가동산은 공동이 소유하는 비법인사단(학회, 동창회, 친목회 등 법인격을 갖추지 않은 사단)이기 때문에 구성원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아가동산의 창과 방패…진보·보수로 갈렸다

아가동산을 수사했던 검사와 변론했던 변호사는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의 행보가 정확히 엇갈렸다는 점이다. 김기순을 대리한 김종훈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개혁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창단 멤버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때 DJ 대북 송금 수사 특검보를 맡았다. 또 다른 법률대리인인 검사 출신 양인석 변호사는 김대중 정부에서 ‘옷로비 사건’ 특검보를,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냈다.

2001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아가동산을 파헤친 내용을 방영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김기순이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방송이 불발됐다. 당시 변론을 맡은 사람이 안상운 변호사다. 안 변호사는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아가동산 측은 3월8일 《나는 신이다》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을 때도 안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이와 반대로 아가동산 사건을 겨냥했던 인사들은 보수정당에서 활동했다. 사건이 기소된 이후 공판검사로 합류한 원희룡 검사는 16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으로 정치판에 입성한 후 제주지사 등을 지냈다. 현재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사건을 끈질기게 보도한 동아일보 박종희 기자는 16·18대 한나라당 의원을 지냈다. 수사를 맡아 사건을 세상에 알린 강민구 검사 역시 한나라당 공천에 도전한 바 있다.

언론계에서도 아가동산에 대한 시선이 갈렸다. 김기순은 2001년 “대법원에서 살인·폭행 혐의가 무죄로 확정됐음에도 관련 기사가 떠있어 명예가 훼손됐다”며 일간지와 통신사에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연합뉴스와 한겨레, 경향신문, 문화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6개 언론사는 관련 기사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했다. 이 중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진보 색채가 짙은 신문사다. 반면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를 비롯해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은 기사를 내리지 않았다. 이들은 “확정판결에 반하는 기사는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 “판결을 떠나 한 시대를 풍미한 사건은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등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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