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국립공원 지리산 개발 ‘빗장’ 풀리나
  • 지종간 영남본부 기자 (sisa531@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9 15: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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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 허가에 지리산권 지자체들 ‘너도나도’
‘보전이냐’ vs ‘개발이냐’ 두고 난개발 논란 재점화
 환경단체ㆍ생태 전문가 “환경부 존재 이유 인식해야”

한동안 잠잠했던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열풍이 지리산에 다시 불고 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의 조건부 허가를 시작으로 국립공원 관리에 대한 환경부의 정책 변화 시그널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리산 권역은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소멸론’이 나오는 만큼, 케이블카 설치를 지역 회생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남의 경우 박완수 지사가 직접 나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강조하며 공식적으로 불을 지폈다. 박 지사는 3월2일 “지리산 케이블카는 주민 숙원사업이다.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경남 산청과 함양, 전남 구례, 전북 남원시 등 지자체들 역시 지금이 지리산 개발의 ‘최적기’라고 보고 허가 가능성을 점치며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사진 제공 김종관·하동군
아름다운 지리산의 운해 ⓒ김종관 제공
ⓒ사진 제공 김종관·하동군
알프스 하동의 지리산 산악열차 계획 ⓒ하동군 제공

박완수 지사 발언으로 개발 논의 불붙어 

지리산 권역은 낙후지역이면서 ‘인구소멸지역’에 속한다. 특히 이들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평균 10% 내외다.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해 경제가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낙후지역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졌다.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으로 그간 해당 지자체들이 추진해 왔던 케이블카나 산악열차 등 개발사업 역시 자연스럽게 주목받았다.

대형 토목사업도 과거와 달리 친환경적 공법으로 진행 가능하다. 지리산의 우수한 자연환경을 장애인이나 노약자들도 공유하는 등의 공익성을 내세우면서 개발 당위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최근 환경부의 빗장을 ‘연합’으로 돌파하는 지자체도 등장했다.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이 양양군에 사업을 양보하자 일각에선 단일화가 오색 케이블카 탄생을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지리산권 지자체들이 이런 강원도 사례에서 환경부 문턱을 넘는 노하우를 습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환경단체들은 “설악산에서 시작된 국립공원 개발 바람이 지리산으로 불고 있다”면서 결사 항쟁에 나서는 모양새다. 케이블카에 이어 지리산 산악열차를 추진하고 있는 남원시에서 매주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리산을 더 이상 토목 현장으로 만들 수 없다며 퍼포먼스도 이어가고 있다. 생태 전문가들도 지리산은 국립공원 1호라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설악산보다 더 강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일단 개발 빗장이 풀리면 전국 국립공원이 ‘도미노식’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생태학자인 최송현 부산대 교수는 “케이블카 설치나 산악열차 같은 개발사업 자체가 국립공원 설립의 기본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환경부가 지금까지 케이블카 설치를 불허했는데 조건부를 내세워 허가 도장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부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며, 국립공원 난개발의 빌미를 제공하는 큰 사건이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특히 “낙후된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보전을 목적으로 지정한 국립공원을 경제적 이유로 손대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어서 득보다 실이 많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들도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시민단체 ‘지리산사람들’ 윤주옥 대표는 “개발이 불가능한데도 지자체들이 용역비를 써가며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예산과 행정력 낭비다”면서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에 케이블카나 산악열차가 들어서면 전국 국립공원에 대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리산지킴이로 잘 알려진 김종관씨 또한 “지리산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아름다운 곳을 본 적이 없는데 지자체들이 앞다퉈 개발에 나서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례로 스위스는 1914년 알프스 지역 최초로 국립공원을 지정한 후 10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최송현 교수에 따르면, 스위스 국립공원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케이블카가 없다.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가 설치된 일본이나 캐나다는 환경 문제 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이 시설 역시 관광 목적이 아니라 관리용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국립공원 지정 취지에 어긋나는 케이블카 설치를 1980년대 이후 중단했다고 최 교수는 부연했다. 

ⓒ진제공 윤주옥 대표
시민단체 ‘지리산사람들’회원들이 남원시청에서 산악열차 반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윤주옥 대표 제공

지리산 케이블카ㆍ산악열차 추진 실태는?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다시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는 지자체는 현재 경남 산청과 함양, 전남 구례, 전북 남원시 등 4곳이다. 먼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지리산 장터목을 거쳐 함양 추성리까지 연결하는 10.5km 구간이 있다. 2개 지자체를 거치는 최장 구간이다. 2016년 7월 반려된 사업을 친환경적 설치 등을 골자로 국립공원계획 변경 신청서를 같은 해 12월 다시 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반려됐는데, 최근 박완수 지사의 발언으로 개발 논란이 재점화됐다.

4차례 사업을 신청한 구례군은 반려된 구간을 대폭 조정하는 사업계획을 세웠다. 구례읍에서 섬진강을 건너 오산 사성암까지 2.34km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내용으로 2025년 운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는 10여 년 동안 끌어오던 케이블카 사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모정에서 지리산 정령치를 잇는 산악열차 설치에 최근 행정력을 쏟고 있다. 경남 하동군도 ‘알프스 하동’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지리산 산악열차를 추진했지만, 군수가 바뀌면서 용역비만 낭비했다는 지적 속에 뚜렷한 사업 추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케이블카 설치나 산악열차 등 국립공원 내 개발사업은 환경 문제 등으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비록 환경부가 규제보다는 활용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해도, 시군 사업 구간 단일화란 변수가 있다. 특히 지리산 개발사업은 단체장의 치적과도 연관돼 있어 총론에서는 협의가 가능하지만 각론에서는 합의나 양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생태학자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주문했다. 국립공원은 지정 자체가 보전이 목적이어서 규제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케이블카가 왜 필요하고, 산악열차가 꼭 있어야만 하는지 당위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히 수익 창출과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국립공원을 만끽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다른 방안은 없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 케이블카가 설치된 설악산과 내장산, 덕유산 일대의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사업성은 어땠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러한 선행 연구가 없는 개발사업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지리산은 국립공원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다른 국립공원의 개발 지침이나 방향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환경부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한결같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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