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훨씬 더 낫다”…‘전두환 손자’ 맞은 光州도 아팠다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3.3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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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원씨, 광주 도착 첫 일성 “늦게 와 죄송…억울함 풀어드리고 싶어”
동정 분위기 “누가 돌을 던지랴…조부 대신 사죄 용기 참으로 대견”
일각 변심 우려도…5·18관계자 “취중진담이 더 진정성 있어 보여“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씨의 5·18민주화운동 사죄 방문을 두고 광주가 술렁이고 있다. 광주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전씨의 광주 방문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짠하다”“누가 손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라고 공감을 표하는 한편 그를 둘러싼 비운의 가족사에 대해서 함께 아파했다. 5·18민주화운동 발생 책임자로 지목된 조부 전두환씨 대신 사죄에 나선 전씨의 용기에 대해 응원하고 환영하는 분위기 또한 역력했다.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씨가 5·18민주화운동 사죄를 위해 30일 0시 40분께 SBS 취재차량을 타고 광주 서구 상무지구 한 호텔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씨가 5·18민주화운동 사죄를 위해 30일 0시 40분께 SBS 취재차량을 타고 광주 서구 상무지구 한 호텔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씨는 지난 28일 입국 직후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29일 오후 7시 55분께 석방된 뒤 곧바로 SBS 취재차량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 전씨는 30일 0시40분께 SBS 취재차량을 타고 광주 서구 상무지구 한 레지던스호텔에 도착했다. 

광주에 도착한 그는 첫 일성으로 “태어나서 처음 와보고, 항상 두려움과 이기적인 마음에 도피해오던 곳”이라며 “많은 분이 천사 같은 마음으로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의미 있는 기회이자 순간인 만큼 최선을 다해 피해자분들, 상처받으신 모든 분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씨는 마약류 투약 파문에도 불구하고 광주행 길에서 환영을 받았다. 이날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석방 현장에는 5·18민주화운동 공로자회와 부상회 등 유관단체 관계자와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씨도 있었다. 이남 5·18부상자회 서울지부장은 “단체와 유족을 대표해 (전씨의 사과를) 격하게 환영한다”며 “당당하게 용기를 잃지 않고 5·18 영령과 피해자들에게 당당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씨의 석방을 기다리고 있던 일부 사람은 “전우원 파이팅!”“힘내!”라고 소리쳤다.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중앙회장이 30일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재단에서 전우원씨 관련 회의를 마치고 나온 뒤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에 다가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중앙회장이 30일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재단에서 전우원씨 관련 회의를 마치고 나온 뒤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에 다가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씨의 사과에 대해 5·18 관련단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날 오전 5·18기념재단에서 전우원씨 관련 회의를 마치고 나온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중앙회장은 “전우원씨가 마약을 했던 뭐든 간에 자기 가족사의 잘못된 부분을 뉘우치고 사과했다”며 “그의 나이가 이제 27살인데 그런 마음을 먹고 한다는 게 우리 입장에선 가상한 일이다”고 했다. 정 회장은 이어 “우리는 받아들이는 입장이라서 따뜻하게 맞아줘서 속에 담았던 얘기를 다 할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전씨가 자신의 기존 입장을 뒤엎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마약 투약 자체는 유감이지만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약의 힘을 빌려 말힌 것 같다”며 “물론 사람의 앞일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행위로 봐선 ‘취중진담(醉中眞談)’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마약을 하고 속내를 밝혔기에 더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고 다른 시각을 보였다.

광주 여론도 전두환씨와 일가에 대한 강한 비판과 달리, 동정론이 일고 있는 분위기다. 조현석(57·광주 광산구)씨는 “전두환씨 손자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느냐”며 “5·18 유족들이 그토록 원했던 사죄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사망한 전씨보다 손자가 훨씬 더 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경민(48·광주 서구 치평동)씨는 “전우원씨는 어찌 보면 5·18의 직접적인 책임에서 비켜나 있어 가족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씨 대신 사과한 용기가 참으로 대견하다”고 추켜세웠다.

30일 새벽 광주에 도착한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는 이날 하루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뒤 31일 오전 5·18기념재단 내 기억의 공간에서 유족과 5월어머니회, 공법 3단체 회원 등과 공식적인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전우원씨가 묶고 있는 광주 상무지구 한 호텔.  ⓒ시사저널 정성환
30일 새벽 광주에 도착한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는 이날 하루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뒤 31일 오전 5·18기념재단 내 기억의 공간에서 유족과 5월어머니회, 공법 3단체 회원 등과 공식적인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전우원씨가 묶고 있는 광주 상무지구 한 호텔.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북구 용봉동 패션의 거리에서 만난 전씨 또래의 한 직장 여성은 “마약에 손 댄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렇겠느냐. 어린시절부터 가족사 때문에 겪었을 마음 고생에 마음 아프고 공감이 간다”며 “이제 광주 방문을 계기로 훌훌 털고 건강한 국민의 일원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전씨는 이날 하루 호텔에서 휴식한 뒤 31일 오전 5·18기념문화센터 내 기억의 공간에서 유족과 피해자, 5·18단체 회원들과 공식적인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이어 기념관 뒤편 추모숭모공간을 찾은 뒤 국립5.18묘지를 방문해 참배할 예정이다. 전두환씨 가족 가운데 사죄 차 광주를 방문한 첫 사례다. 

전씨는 미국 뉴욕에 체류하던 지난 13일부터 SNS와 유튜브, 언론 인터뷰에서 전씨 일가의 비자금 의혹 등을 폭로하고 본인과 지인들이 마약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5·18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며 귀국하는 즉시 광주를 방문해 5·18 단체를 찾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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