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있는데 그림은 못 그려? ‘AI 문하생’이 도와줍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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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오노마에이아이 개발 프로그램 ‘투툰’, 세계 최초 생성 AI 기술을 웹툰 제작에 도입
‘남녀 카페 소개팅’ 입력하니 30초 만에 그림 뚝딱...“웹툰 공정 40% 차지하는 콘티 제작 가능”

“전 세계 3억 명의 정규직이 AI로 인한 자동화의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3월27일 골드만삭스 보고서) 최근 인공지능(AI)에 관해 국내 언론이 앞다퉈 인용한 보고서 내용이다. AI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우려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최근 AI챗봇 챗GPT가 등장하면서 우려가 눈에 띄게 커진 분위기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비롯해 AI 전문가들은 “6개월 간 AI 개발을 멈추자”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이러한 가운데 오히려 직업 창출의 기회를 제시한 AI 프로그램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분야는 웹툰 작가다. 아이디어와 스토리만 제시하면 AI가 웹툰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인건비 고민이나 혹사 논란이 없는 일종의 ‘AI 문하생’이다. 일자리의 대체란 대립 구도를 넘어 인간과의 공존이란 화합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베타테스트 중인 투툰 사이트 메인 화면 ⓒ 오노마에이아이 제공
베타테스트 중인 투툰 사이트 메인 화면 ⓒ 오노마에이아이 제공

 

생성 AI 최고봉 프로그램, 전세계 최초 웹툰 제작에 도입 

해당 프로그램은 국내 AI 스타트업 오노마에이아이(Onoma AI)가 만든 ‘투툰’이다. 현재 생성 AI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오픈소스 모델인 스테이블 디퓨전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이는 문자만 입력하면 그와 관련된 이미지를 순식간에 생성해낸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스테이블 디퓨전을 활용한 초상화 제작 앱을 개발해 전 세계 앱스토어 상위권을 휩쓸기도 했다. 미술계에선 어김없이 “일자리가 다 사라질 것”이란 경계심이 일었다.

투툰은 스테이블 디퓨전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했다. 오노마에이아이 창업자 송민 대표는 “아이디어가 뛰어나도 그림 실력이 부족해 웹툰 세계에 뛰어들지 못하는 잠재적 작가들이 많은데, 투툰은 이들의 꿈을 현실화해줄 수 있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웹툰 제작에 스테이블 디퓨전을 적용한 건 투툰이 세계 최초”라며 “투툰으로 웹툰 공정의 40%를 차지하는 콘티를 개략적으로 만드는 건 지금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인 송민 대표는 텍스트 분석 분야의 권위자다. SCI와 SSCI급 학술지에 게재한 관련 논문만 93건에 이른다. 텍스트 분석에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현재 연세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도 겸직하고 있다. 송 대표는 지난해 10월 글만 입력하면 자신만의 이모티콘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아이코노키’를 선보여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아이코노키를 고도화해 웹툰 제작에 접목시킨 산물이 투툰인 셈이다.

송민 오노마에이아이 대표(연세대 문헌정보학과·인공정보학과 교수) ⓒ 시사저널 이종현
송민 오노마에이아이 대표(연세대 문헌정보학과·인공정보학과 교수) ⓒ 시사저널 이종현

 

송 대표는 “투툰으로 만든 콘티에 대사를 써넣고 채색만 하면 웹툰이 완성된다”며 “아예 채색도 직접 도와준다”고 했다. 기자가 투툰 베타테스트 버전을 받아 몇 가지 상황을 입력해봤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는 카페 소개팅 자리’를 쓴 뒤 ‘생성하기’ 버튼을 눌렀다. 30초도 안 돼 작은 원탁에 가까이 마주보고 앉아 있는 커플의 스케치가 완성됐다.

여기서 배경이나 표정을 없앨 수도 있고, 자동으로 색깔을 입힐 수도 있다. 채색 버튼을 누르자 카페 느낌의 루프톱 공간과 함께 노을 지는 풍경이 나타났다. 커피잔 대신 큰 병이 놓여 있는 부분과 어색한 손발 등을 제외하면 그럴 듯한 웹툰의 한 장면이었다. 이번엔 ‘오픈카를 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해안 도로를 달리는 여자’를 써 넣었다. ‘휘날린다’와 ‘달린다’는 느낌은 부족했지만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림이 생성됐다.

투툰 베타 버전에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는 카페 소개팅 자리'를 입력하자 30초도 안 돼 스케치와 채색한 그림이 완성됐다.
투툰 베타 버전에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는 카페 소개팅 자리'를 입력하자 30초도 안 돼 스케치와 채색한 그림이 완성됐다.
'오픈카를 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해안 도로를 달리는 여자'를 입력하자 이와 같은 그림이 생성됐다.
'오픈카를 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해안 도로를 달리는 여자'를 입력하자 이와 같은 그림이 생성됐다.

 

'광활한 우주' 입력하니 칠흑의 우주가..."애니메이션 제작도 가능하게 할 것"

배경을 그려내는 것도 가능하다. ‘거대한 우주선이 떠다니는 광활한 우주’란 문장을 입력해봤다. 금세 6가지 이미지가 등장했다. 높은 산 위를 드론이 찍은 듯한 이미지를 제외하면 모두 문장에 걸맞은 그림이었다. 배경 구현은 대체로 인식률이 높은 편이었다. 그 외에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길’ ‘조명이 반짝이는 빌딩으로 꽉 찬 도시’ 등을 입력하니 웹툰에 바로 써도 손색이 없을 그림들이 만들어졌다.

'거대한 우주선이 떠다니는 광활한 우주'라고 쓰자 생성된 6가지 이미지 중 하나
'거대한 우주선이 떠다니는 광활한 우주'라고 쓰자 생성된 6가지 이미지 중 하나

 

화풍의 경우 다소 일본 망가(만화) 느낌이 강했다. 이에 대해 송 대표는 “여러 각도의 샘플 이미지를 20~100장 정도만 입력하면 공통된 화풍을 추출해 그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코믹스나 한국 유명 작가들의 그림체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웹툰 시장에서 절대 다수의 작가들은 작품을 만들 때 ‘클립 스튜디오’라는 일본 소프트웨어에 의존한다고 알려져 있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최대 만화 커뮤니케이션 사이트 픽시브에 올라온 그림의 51%는 클립 스튜디어로 그려진 것이다. 송 대표는 “투툰을 클립 스튜디오의 훌륭한 대체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키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추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까지 만들 수 있는 기능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노마에이아이는 베타테스트를 거쳐 이달 초에 투툰 프로그램과 함께 이를 이용해 만든 웹툰 샘플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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