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있던 ‘유가’ 다시 꿈틀…물가 진정 국면에 악재 터졌다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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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하루 100만 배럴 감산 전격 발표
연말 유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 전망
유가 상승→수입물가 상승→금리 인상?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으로 구성된 협의체인 OPEC+(플러스)가 하루 100만 배럴 규모의 감산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이에 전 세계 인플레이션 반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나 물가 진정 국면 기로에 서 있던 한국 입장에선 악재가 터졌다. 유가가 다시 상승할 경우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보류됐던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생활 필수재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물가 상승에 잠재요인인 유가가 다시 치솟고 있다.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 OPEC+가 내달부터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추가 감산을 결정한 데 따른 결과다. 러시아가 하루 50만 배럴의 감산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한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추가 감산 규모는 모두 합쳐 하루 160만 배럴이 넘는다. 주요 산유국들이 지난해 10월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한 데 이어 추가로 기습적인 대규모 감산을 감행한 것이다.

산유국 협의체의 감산이 결정되자 유가는 들썩였다. 뉴욕상거래소(NYMEX)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 수입 유종인 두바이유 가격은 3일(현지 시각) 기준 배럴당 84.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 거래일 대비 6.67%(5.30달러) 오른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22일(86.60달러) 이후 4개월여 만에 가장 높다.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6%(4.57달러) 치솟은 80.24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6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5.7%(4.56달러) 오른 84.4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전망은 좋지 않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감산 결정에 따라 올해 말과 내년 말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종전보다 각각 5달러 상향 조정한 배럴당 95달러, 100달러로 제시했다. 유가 100달러 시대가 다시금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산유국들의 감산에 전 세계가 비상에 걸렸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유가라는 변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가는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이 추가 감산에 대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현시점의 감산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불편한 기색을 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위중한 것은 우리나라다. 유가가 다시 상승한다면 달러 강세와 맞물려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수입물가 상승은 전반적인 실물 물가 상승을 자극하게 된다. 이럴 경우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과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조사국장이 지난 2월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와 한국경제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린 한은-대한상의 공동세미나에서 대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과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조사국장이 지난 2월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와 한국경제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린 한은-대한상의 공동세미나에서 대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가 낮추던 유가…기준금리 상승 자극할까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보면 유가 상승의 위험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4.2%로 2개월 연속 4%대를 기록했다. 이는 석유류가격 하락폭이 크게 확대 되면서 상당폭 둔화된 영향이 컸다. 지난달 석유류 가격이 14.2% 하락했다. 석유류 가격 하락폭은 전체물가를 0.76%포인트 끌어내렸다. 지난달 석유류 하락폭은 2020년 11월(-14.9%) 이후 가장 크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진정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는 물가상승률이 다시 반등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공공요금의 인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가 상승은 우리 경제에서 치명적이다. 지난달 전기료 등 전기·가스·수도 요금 상승률은 28.4%로 오름세가 가파르다.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 기여도는 0.93%포인트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보류하며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 추이 등 인상 변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여론 수렴을 더해 추후에 (전기·가스 요금 인상 시기와 폭 등을)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유가 상승이 공공요금 인상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결국 산유국 협의체의 감산이 공공요금 인상 등을 통해 물가를 자극하면서 기준금리를 올리는 데 중요한 근거를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한은도 이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4일 김웅 부총재보가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향후 물가 경로상에는 국제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흐름, 공공요금 인상 폭 및 시기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이유다.

이에 정부는 주요 품목별 가격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물가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닭고기, 가공용 감자와 같은 주요 식품원료에 대한 할당관세 인하 및 연장, 통신비 등 생계비 경감 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물가 안정기조가 조기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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