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자의 매력
  • 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8 11: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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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자의 매력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 남자의 매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목소리’와 ‘열정’이다. 열정적인 사람은 대개 목소리가 좋다. 호감을 느껴 목소리도 좋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다 열정적이지는 않다. 다소 위험한 글이 될 것 같아 미루고 미루다 이제 꺼내려는 주제, 남자의 매력을 논하기 전에 먼저 커피 이야기를 하련다.

카페인을 멀리했던 내게 커피 맛을 가르쳐준 그녀, 피아니스트인 C와 커피를 마시며 남자에 대해 수다를 떤 적이 있다. “선생님~저는 소리가 제일 중요해요. 목소리가 거슬리면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귀가 예민하잖아요.”

그녀처럼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나도 소리에 민감하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거슬리면 채널을 돌린다. 이상하게도 야구와 테니스 경기를 해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개 괜찮은데, 축구 아나운서나 해설자 중에 내 귀를 괴롭히지 않는 목소리는 드물다. 심야에 이리저리 스포츠 채널을 돌리다 목소리가 다 거슬려, 결국 리모컨의 무음 버튼을 눌러 비디오만 보기도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렇게 소리를 죽이고 축구 경기를 보면 잠이 잘 온다.

9월2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코스타리카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김민재가 공을 다투고 있다.ⓒ연합뉴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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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초인데 초여름처럼 따사로운 햇살,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 계절을 앞서가는 젊은이들은 가벼운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마음은 벌써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나는 카페에 들어가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아포가토를 주문한다. 수영을 한 후에 행복감을 배가시키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신다. 진한 커피를 떠먹으며 ‘축구’나 ‘야구’를 검색해 이미 포화상태인 행복감을 더 극대화시킨다. 나는 쾌락주의자. 요새 내게 가장 매력적인 남자, 내가 자주 검색하는 이름은 축구선수 ‘김민재’다. 김민재가 나타나기 전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노박 조코비치가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입이 심심할 즈음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가 그렇게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아직 한 번도 매력적인 남자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며 처음 발견했다. 왜냐고? 나는 외모보다 목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니까.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잘생긴 훈남이라도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내 시선을 끌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어제 젊은 여성 직장인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한 후 스타벅스에 가서 (저녁시간이라 카페인이 적게 들어간) 아포가토를 먹으며 ‘남자’와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유튜브 강의를 많이 들어요. 어떤 선생은 목소리가 천박해 강의를 듣고 싶지 않아요. 강의 중에 여성을 비하하는 말, 무슨 마누라라든가 ‘여편네’ 이런 소리 하는 남자들 정말 싫어.”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을 가늠할 수 있다는 내 말을 듣자마자 A가 말했다.

“저는 전화 목소리만 듣고 남자한테 반한 적도 있어요. 만나기 전에, 얼굴을 보기도 전에 반한 거예요.” 결혼 전에 ‘소개팅’을 많이 했다는 A에게도 목소리가 남자의 매력을 가늠하는 저울이었다. 내가 들은 최고의 유튜브 강의는 김호동 교수의 ‘유라시아 유목민족사’ 강연이다. 김 교수님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동양사와 세계사에 대한 그의 폭넓은 지식과 통찰력,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재치도 뛰어나고 문학적인 소양도 풍부한 품위 있는 목소리에 반해 그의 광팬이 되었다. 매혹적인 운동선수와 감독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해선 다음에 써야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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