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은 다 청춘…100세 시대, 지적 체력 길러야”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9 16: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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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청춘’의 의미
직접 건축한 뮤지엄 산 10주년 기념 《안도 다다오-청춘》전 개막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 《청춘》(~7월30일)을 개최한다. 주제는 청춘. 공간은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뮤지엄 산이다. 자신이 건축한 공간이다. 개관 10주년이 된 뮤지엄 산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82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호기심 어린 눈과 힘 있는 걸음걸이가 인상적이었다. 시종일관 웃음으로 공간을 채웠고, 한마디 한마디가 강한 울림을 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왜 자신이 대가인지, 가뿐하고 위트 있게 확인시켜줬다.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뮤지엄 산은 애초에 벌거숭이였지만 현재는 세계적인 문화공간이 됐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안목과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기법과 이곳에서 채석한 돌, 그리고 물과 나무 등을 활용해 이곳을 힐링 공간으로 만들었다.

안도 다다오는 모든 불필요함을 덜어낸 미니멀한 노출 콘크리트 건축을 선보여왔다. 프랑스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에 의해 처음 시도된 건축기법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예술로 발돋움시켰고, 안도는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을 넘어 완전한 자기 것으로 소화해 냈다. 안도가 독학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건축물은 세계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데도 성공했다. 안도는 세계적인 대규모 공공건축에 참여하고 도시계획과 국토계획에도 관여하고 있다.

안도는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돈이 필요해 복싱선수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보다 잘하는 선수들을 보고 그만뒀다. 14세 때 자신의 집을 증축하도록 도와준 목수를 보고 건축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밥도 거르면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건축이란 것이 참 재미있는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꿈을 품고 성장하던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 닥치는 대로 건축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 시골 마을의 언덕에 자리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걸작 롱샹 성당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건물 안에 깊게 들어온 빛을 보고 희망을 떠올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이 절망적이었다고 고백한다. 말기 폐암으로 십이지장과 담낭, 췌장 등 장기 다섯 개를 적출했지만 결국 이겨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1995년)을 수상했지만 대학 문턱도 넘지 않은 고졸 출신이다. 안도는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찬란한 빛처럼 나도 희망이 있는 건축을 만들고 싶었다”며 “이렇다 할 학력도 없지만 나 역시도 희망이 있는 인생을 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건물이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오는 찬란한 빛으로 유명한 것도 당시의 영향 때문이다. 기자간담회와 강연회를 함께 정리했다.

뮤지엄 산의 안도 다다오 ⓒ뮤지엄 산 제공

“재미있는 것일수록 초반엔 사람들이 거부해”

코로나19 이후 공간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공간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모두 입구를 통해 들어오셨을 텐데, 거기 설치된 높이 3m의 파란 사과를 봤나? 이름하여 ‘청춘의 사과’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젊다고 청춘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다 청춘이다. 그래서 많은 분이 이 미술관을 방문하셔서 청춘을 느끼기 바란다. 나는 이곳을 청춘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 물, 돌이 있고, 그 돌담을 들어가면 뛰어난 미술품들이 있다. 몰랐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직접 설계한 ‘뮤지엄 산’이 10주년을 맞았다.

“아주 오래전에 이인희 고문님이 찾아와 미술관을 지어 달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시큰둥했다. ‘강원도 원주의 산등성에, 서울에서도 두 시간이나 걸리는 이 산골에 누가 오겠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 고문이 ‘전 세계에 없는 미술관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고, ‘오게 만드는 건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여성들이 이처럼 용감하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웃음). 한데 요즘 이곳에 연간 2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역시 이 고문님의 말씀이 맞았다. 의욕과 파워가 남달랐던 분이셨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누이이자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다. ‘국내 1호 아트 컬렉터’라 불릴 정도로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맥락 있게 작품을 모았으며, 그 작품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했다. 뮤지엄 산은 이인희 고문의 필생 역작으로 불린다.

 

안도 다다오의 상징은 노출 콘크리트다. 오랜 시간 특별히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축은 자연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 콘크리트는 1897년 파리에서 시작된 건축기법이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저는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재료로 아무도 만들 수 없는 건축을 하고 싶었다. 내 콘크리트는 철근이 들어 두껍지 않고, 간결해서 어디나 잘 어우러진다. 콘크리트 위로 빛이 들어오는데, 그 빛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 희망을 지탱해 주는 것이 콘크리트다. 앞으로는 100세 시대다. 100세까지 살려면 신체 체력은 당연히 필요하고, 지적 체력도 필요하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그를 통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 있는 건축을 만들고 싶었다.”

콘크리트로 좋은 건축을 하려면 필요한 것들은 또 무엇이 있나.

“단연 좋은 클라이언트가 필요하다. 예전에 한 클라이언트가 찾아왔는데,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 클라이언트와 7~8년은 함께 일해야 한다. 그래서 병을 고치신 다음에 오라고 했다. 그분이 10년 동안 살지 못하면 저희가 힘들어지니까. 하하. 그만큼 좋은 건축을 위해선 클라이언트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콘크리트는 10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재료다. 뮤지엄 산의 외벽은 이곳에서 나오는 돌로 지었다.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다. 전람회의 모형들은 한국 학생들이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학생들도 나도 공부가 된다. 어느 나라의 프로젝트에도 나는 현지에서 나는 자연과 현지 학생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덕분에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다. 온난화 등등으로 지구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건축할 때 늘 고민하는 부분이고, 나도 일조하고 싶다.”

그간 작업을 하면서 좌절된 프로젝트도 있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일수록 사람들이 초반에는 거절한다. 수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혹평을 들어도 마음에 담아두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실현되기 때문이다. 좌절된 프로젝트가 정말 많았다. 오사카에서 아주 오래전 집 내부에 알이 들어간 건축을 시도했는데 혹평 일색이었다. 그런데 2010년 중국 상하이에서 다시 구현했다. 사람들이 싫어했던 프로젝트였는데 결국 실현시킨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뮤지엄 산 제공
뮤지엄 산 안도 다다오 청춘 ⓒ뮤지엄 산 제공
뮤지엄 산 전시실 ⓒ뮤지엄 산 제공
뮤지엄 산 전시실 ⓒ뮤지엄 산 제공

“‘고졸’에 암투병까지…절망적인 사람들의 본보기 될 것”

이번 전시도 주제가 ‘청춘’이다. 오늘 간담회에서도 ‘청춘’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희망과 청춘을 유지하는 법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절망적인 인생을 살았다. 암에 걸려 담관, 담낭, 십이지장, 췌장, 비장 전부를 제거했다. 지구상에서 내장 다섯 개를 적출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노력도 많이 한다. 하루 만 보씩 걷고, 식사를 30분에 걸쳐 하고, 매일 책을 잃고, 한두 시간 정도는 공부를 한다. 절망에 머물지 않고, 청춘을 유지하며 살려면 이런 노력이 꼭 필요하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즐거운 일이 생긴다. 제가 올해 한국 나이로 83세가 됐다. 앞으로 좀 더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얼마 전에 천국과 상담했다. 20년만 더 살고 와라, 하시더라.”

청춘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력주의 사회다. 저는 대학도 다니지 않았고 전문적으로 건축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제가 건축가의 꿈을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대학도 못 갔고, 교육도 못 받았는데 어떻게 건축가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제게 안 된다고 얘기할수록,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보기가 되고 싶다. 저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도 전문학교도 나오지 않았던 저는 인내심과 노력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모두 나만의 ‘푸른 사과’(희망)를 열심히 만들길 바란다.”

건축가가 된 계기도 궁금하다.

“14세 때 저희 집을 증축하는 공사를 했다. 이웃에 사는 목수분이 일을 도와주셨는데, 점심도 먹지 않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고 일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마음에 ‘건축이 참 재미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나? 나는 아주 즐기고 있다. 왜냐하면 돈은 클라이언트가 내니까. 하하.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희망이 있는 건축을 하고 싶다. 아름다움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들뜨면서 행복하다. 빛을 보면 희망을 느낀다. 내 건축처럼 나도 희망이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학력이 없어도 희망이 있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도서관 건축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전보 배달을 한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사업가로 성공한 후 미국 전역에 도서관 1000여 곳을 지었는데, 그것이 내게 영감을 줬다. 애초에 내가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오사카시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결국 완성했다. 도서관 내부 어디에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애초에 도서관 앞이 도로였는데, 오사카시에 도로를 없애 달라고 제안했더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일본에서 가장 높은 분을 찾아가서 ‘만약 도서관에 오는 어린이가 이 도로에서 차에 치여 사고가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했더니, 도로가 사라졌고 광장으로 변모했다. 불가능은 없다. 일단 말을 꺼내면 되는 일이 있더라. 또 다른 미술관도 같은 방식으로 광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는 사람이 중심인 공간을 만든다. 이곳에 와서 점심식사를 하면 즐거운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덧붙이자면, 너무 낡아서 심사숙고한 끝에 설계한 도서관이 있는데, 얼마 전에 가봤더니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을 어르신들이 웃는 얼굴로 보시고 계시더라.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들과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건축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 현재 방글라데시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고 있다. 올해 안에 완공된다. 다음 어린이 도서관 프로젝트는 네팔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일하는 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말린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건축을 하고 싶다. 또 지구 친화적인 건축을 하고 싶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앞으로 계속해 나갈 것이다. 몸도 마음도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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