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청정과 유엔이 무슨 상관?...살인 부른 코인의 무리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7 12: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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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납치 사건’ 화근인 퓨리에버 코인 발행사, 각종 MOU와 배우 내세워 홍보했지만 99% 폭락
MOU∙유명인 내세웠다가 쪽박 찬 코인 부지기수…“실용성 담보 못 하니 외부 의존…주의 필요”

3월29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40대 여성 납치·살인 사건의 중심에는 암호화폐 퓨리에버 코인이 있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4월3일 핵심 피의자 이경우(35)에 대해 “피해자가 홍보했던 퓨리에버 코인 발행업체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이씨가 손실을 본 금액은 약 8000만원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한 원한이 이번 사건의 주요 계기가 됐다는 시각이 짙다. 이씨는 퓨리에버 코인의 어떤 점에 혹해 이렇게까지 깊게 발을 들이게 됐을까.

퓨리에버, 유엔·대학·환경단체와 손잡아

퓨리에버 코인은 공기청정기 제조업체 유니네트워크가 2020년 발행했다. 해당 업체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공기 청정 플랫폼을 내세우며 “플랫폼에 참여하면 퓨리에버 코인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업 모델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유니네트워크는 여느 암호화폐 업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쳤다. 2020년 말 거래소 코인원·빗썸글로벌 상장 전후로 유엔 산하기구, 대학교, 환경단체 등과 업무협약(MOU)를 맺었다. 2021년 2월에는 운동선수 출신 배우 이아무개씨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하지만 퓨리에버 코인은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개당 1000원대이던 코인은 2020년 12월 최고 9600원까지 폭등했다. 하지만 2021년 2월 다시 1000원대로 돌아왔고, 그해 5월말부터는 100원 밑으로 급락했다. 지금은 10원 아래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최고점 대비 하락 폭이 99%다. 퓨리에버 코인은 3월3일 코인원에서 “평가 보고서 미제출”을 이유로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됐다가 3월17일 해제됐다.

이처럼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도 성장은커녕 가치 보전조차 안 되는 암호화폐는 상당수 존재한다. 이러한 암호화폐의 발행업체가 주로 사용하는 홍보 방식은 MOU를 맺거나 유명인을 내세우는 것이다.

중견 결제 플랫폼 업체 다날은 자사 계열사가 발행하는 암호화폐 페이코인과 관련해 여러 업체와 MOU를 맺었다. 이 중 박승철헤어스튜디오, 이디야커피, 서울랜드 등 유명 업체가 MOU 상대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페이코인은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유일한 암호화폐’로 급부상했다. 2021년 9월에는 당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인기의 정점을 달리던 배우 이정재를 홍보 모델로 발탁했다.

그러나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계좌를 확보하라’는 금융 당국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페이코인은 3월31일 가상자산거래소 협의체 닥사(DAXA)로부터 퇴출 통보를 받았다. 이날 국내 주요 거래소는 일제히 페이코인 거래 종료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거래 가격도 50% 넘게 급락했다. 페이코인은 실용성이 높은 만큼 투자자 사이에선 불만이 속출했고, 회사 측도 “형평성을 잃은 조치”라며 반발했다. 반면 거래소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술품 조각투자 수단이란 콘셉트를 내세운 피카코인도 MOU와 연예인으로 인해 명성을 얻었다가 위기에 처했다. 피카코인 발행사 피카프로젝트는 과거 걸그룹 카라의 멤버 박규리를 큐레이터 겸 최고홍보책임자로 임명했다. 또 호텔, 갤러리, 여행업체 등과 손잡고 MOU 소식을 알렸다. 그러다 2021년 6월 국내 거래소 업비트에서 상장 폐지됐다. “유통량이 최초 계획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는 이유였다. 코인원에서는 최근까지 거래됐지만 올 3월 역시 거래가 종료됐다.

상장 과정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검찰은 “피카코인 등을 상장시켜 달라”며 코인원에 금품을 건넨 혐의(배임증재)로 브로커 고아무개씨를 3월 구속 기소했다. 피카프로젝트 대표 송아무개씨도 시세조작 및 허위정보 유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형제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바나나톡은 한국과 중국에 1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명 ‘블록체인 메신저’다. 이 업체는 자사가 발행한 동명의 코인에 대한 투자자 유치를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배우 조한선과 가수 채연을 전속모델로 섭외했고, BTS와 블랙핑크 팬들에게 코인을 무상 배포한다고 선언했다. 각종 TV 드라마와 PPL 광고 협약을 맺기도 했다. 2021년 6월에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이정재와 걸그룹도 못 막은 폭락·상폐

MOU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예기획사, 게임 개발업체, 사회복지관 등이 그 대상이었다. 지난해 말에는 자체 개발했다는 지갑을 출시하며 사업 확장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앞서 2021년 11월 코인원에서 유통량 문제로 상장 폐지되며 빛이 바랬다. 바나나톡 거래량의 99%가 코인원에서 소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치명적이었다. 한때 코인원 거래량 1위에 등극했던 바나나톡은 상장 폐지 공시 이후 90% 넘게 폭락했다.

이 외에 S코인 발행업체는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투자자를 끌어모으다 덜미가 잡혔다. 업체 관계자는 2021년 말 투자 정보를 공유하고 매매를 부추기는 이른바 ‘리딩방’ 운영자들과 공모해 시세조종을 주도했다. 이런 방식으로 가격을 띄운 후 투자자로부터 15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발행업체 대표와 리딩방 총책 등 30명을 검찰에 넘겼다.

MOU는 구속력이 없는 계약이다. 쌍방의 기본적 이해를 돕기 위해 진행하는 것으로 계약 해지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업무제휴, 업무협약, 사업제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보통 대외 홍보를 위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MOU 체결 이후 암호화폐 사용을 지원하거나 협업 제품을 출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향후 지속성과 성공 가능성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다. 유명인을 내세운 홍보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업체 스스로 암호화폐의 실용성을 담보할 수 없으니 MOU나 유명인에게 기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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