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TYM 감사실에 회장 장남 관련 익명 제보했더니 날아온 ‘고소장’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0 11: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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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산가’ 김희용 회장 아들 김태식 전 부사장 일탈 의혹 제보했다가 피소당한 A씨
‘신고자 보호’한다더니…제보 내용 유출하고 제보자 A씨 IP 주소 경찰에 넘긴 TYM

A씨는 2022년 11월 거주하는 빌라의 다른 층 우편함에서 자신에게 온 경찰 소환장을 발견했다. 소환장에는 A씨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피소됐으니 참고인으로 출석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황당했다. A씨가 석 달 전에 한 기업의 사이버 감사실에 해당 기업 부사장의 일탈 의혹에 대해 익명으로 제보했던 내용들이 소환장에 적시돼 있었다. A씨는 제보 당시 개인정보를 전혀 적지 않았으며 회사는 신고자를 철저히 보호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일과 관련해 경찰은 A씨의 신원을 정확히 특정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A씨는 사실 확인차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다짜고짜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됐다”고 통보받았다.

트랙터, 콤바인 등 농기계를 생산·수출하는 중견기업으로 지난해 1조1661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던 TYM(옛 동양물산)이 감사실 익명 제보 유출 논란에 휩싸였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인 김태식 전 부사장(사건 당시 현직)에 대한 익명 제보가 접수되자 감사실이 감사를 진행하지 않은 채 김 회장과 김 전 부사장에게 제보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이다. 김 전 부사장은 곧장 제보 내용을 근거로 익명의 제보자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제보자를 철저히 보호한다던 회사는 경찰에 제보자의 IP 주소를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제공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TYM 본사 입구와 김태식 전 부사장이 A씨를 고소한 사건의 소장 ⓒ시사저널 박정훈

고소장에 그대로 적힌 제보 내용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8월 TYM 홈페이지 내 사이버 감사실에 김 전 부사장과 관련한 여러 의혹 등을 익명으로 제보했다. A씨의 제보에는 김 전 부사장이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부터 사생활 관련 일탈 행위 등의 의혹 제기가 담겼다. 사이버 감사실 안내에 따르면 누구든지 업무 처리 과정에서의 비리 사항뿐만 아니라 ‘윤리 실천 강령에 위배되는 행위’ 등 임직원의 폭넓은 행위에 대해 제보하게 돼 있다. 특히 감사실은 신고자 보호와 관련해 ‘신고자의 신분 및 신고내용에 대한 비밀 철저히 보장’ ‘신고자의 신분 누설 및 신고자 색출 행위 금지(위반자 처벌)’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A씨는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으면서 자신이 김 전 부사장으로부터 피소당했음을 인지했다. 김 전 부사장 측이 작성한 고소장 등에 따르면 김 전 부사장은 A씨가 익명 제보를 남긴 지 약 열흘 만에 ‘TYM 회사 홈페이지의 사이버 감사실에 익명 제보한 자’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소장엔 A씨가 제보를 접수한 날짜와 시간, 그리고 제보의 제목과 내용 등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A씨의 제보 내용이 김 전 부사장에게 그대로 넘어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A씨 측이 담당 수사관과 TYM 감사실 등에 직접 문의해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A씨에게 소환장이 날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황당했다. A씨 측에 따르면 감사팀장 C씨는 A씨 측과의 통화에서 김 전 부사장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내가 처리하겠다’는 김 전 부사장의 말에 감사를 종결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또 C씨는 자사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위탁업체에 경찰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제보자의 IP 주소를 요청할 경우 전달하도록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A씨 측에 했다. 이후 실제 경찰은 업체로부터 IP 주소를 받아 통신사 확인을 통해 A씨의 신원을 특정했다. 그러나 IP 주소만으로 A씨의 정확한 주소까지 파악할 순 없었는지 경찰은 A씨 거주 건물 1층으로 소환장을 발송한 것이었다.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던 경찰은 결국 같은 해 12월 해당 사건을 무혐의로 보고 검찰에 불송치 처리했다. 명예훼손이 성사되려면 공연성(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이 인정돼야 하나 비밀 유지 의무가 있는 감사실 제보의 경우 그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불송치 결정서에서 “이 사건 제보글 열람권자는 감사실 팀장 1명이고, 감사실 직원은 비밀 유지 의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므로 피의자가 위 제보글을 작성한 행위 자체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아울러 결정서엔 감사실이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명시되기도 했다. 경찰은 “제보글 열람권자인 감사팀장(C씨)은 제보 내용이 개인적인 문제이고,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인 김태식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제보 내용을 회장님(김희용 회장)에게 보고드려 대략적으로 알고 계신 정도라고 유선 진술했다”고 밝혔다. 

 

“감사 진행하지 않고, 회장에게도 보고”

A씨는 시사저널에 “TYM은 투자자들이 존재하는 주식회사이고 김 전 부사장은 승계 구도에도 있는 사람인데 ‘개인적인 문제’라며 감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역시 철저히 공익적인 목적에서, 공연성이 없는 감사실에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제보한 것이었다”면서 “결과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제보자를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안내만 믿고 제보했는데, 제 신원도 다 드러났고, 당사자에게 제보 내용이 통째로 넘어갔다. 작은 기업도 아니고 중견기업에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한다는 게 놀랍다”고 심경을 전했다.

A씨 측은 경찰 수사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애초부터 공연성이 없는 감사실 제보였음에도 경찰이 무리하게 자신의 IP 주소를 수집해 본인의 신원을 특정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형사 전문 변호사도 시사저널에 “사건 내용만 봤을 때 당연히 공연성이 없는 감사실 익명 제보 관련 사건이기 때문에 피의자 조사 없이 종결할 수 있었을 텐데, IP 주소를 통해 제보자의 신원을 파악하면서까지 조사한 것이 일반적이진 않아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A씨는 2022년 11월 TYM과 김 전 부사장, 감사팀장 C씨, 사건 담당 경찰 수사관 D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하고,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A씨 측은 김 전 부사장을 비롯한 TYM 측이 비밀 보장을 전제로 수집한 A씨의 개인정보(IP 주소)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3자인 경찰에 넘겼고, 수사관 D씨 또한 이를 임의로 제출받는 방식으로 A씨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고소 내용에서 주장했다.

김태식 전 TYM 부사장 ⓒ김 전 부사장 SNS
김태식 전 TYM 부사장 ⓒ김 전 부사장 SNS

TYM “제보 유출 없어…감사 절차대로 진행” 해명

다만 경찰은 지난 3월 A씨가 제기한 형사 사건 피고소인들에 대해 혐의 없음 판단을 내렸다. 판단의 취지는 다른 정보와 결합해야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IP 정보를 개인정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은 수사관 D씨의 수사 행위도 ‘정당한 공무 집행’이라고 봤다. 이에 A씨 측은 즉각 이의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A씨 측은 경찰 판단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해당 정보만으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도 개인정보에 해당하며 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한 것은 불법’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검찰에서 A씨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경찰에 보완 수사 지시 등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건 전문가인 법무법인 온다의 이동호 변호사는 시사저널에 “A씨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민사에선 A씨가 TYM으로부터 피해를 보았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변호사는 “IP 주소도 이를 이용해 소유자의 신원을 특정해낼 수 있다면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실제 해당 사건에서 경찰은 IP 주소를 통해 익명 제보자의 신원을 파악한 것 아닌가”라며 “게다가 제보자 신분의 비밀 보장을 약속한 회사는 경찰이 요청하더라도 영장이 없는 한 일단 제공을 거부하는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결국 회사가 경찰에 IP 주소를 제공해 정보 주체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음을 알면서도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한 것으로 본다면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될 소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TYM 측은 ‘감사 내용 유출’ 등 논란에 대한 시사저널 질의에 “감사 내용은 유출된 적 없다. 감사팀은 내부 감사 절차에 따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당사자(김 전 부사장)와 대면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고 밝혔다. 김 전 부사장이 A씨를 고소한 건에 대한 경찰의 불송치 결정서와 A씨 측의 질의에 감사팀장 C씨가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사실과 배치되는 해명이다. C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절차대로 진행한 것일 뿐 드릴 말씀이 없다”며 “어디서 내용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쪽의 입장이 너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TYM 측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A씨의 IP 주소를 경찰에 제공했다는 논란에 대해선 “경찰 수사 과정에서 경찰 요청에 따라 수사에 협조했다”고만 짧게 답했다. 

 

■A씨 아내는 김 전 부사장 모욕 피해자

자신과 관련해 감사실에 접수된 익명 제보를 회사로부터 전달받아 고소까지 진행한 김태식 전 부사장은 잇단 일탈 행위로 논란을 사고 있다. 김 전 부사장은 벽산그룹 창업주 고(故) 김인득 명예회장의 차남인 김희용 회장의 장남이다. 김 전 부사장은 SNS상에서의 음란물 유포, 모욕 등으로 기소돼 여러 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미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은 사건도 있다.

김 전 부사장의 일탈 행위 의혹을 TYM 감사실에 제보한 A씨의 아내 B씨 역시 김 전 부사장으로부터 피해를 본 당사자다. A씨 측에 따르면 B씨는 김 부사장과 SNS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이었으나 사이가 틀어진 이후 김 부사장과 그 지인들로부터 성적 조롱 등을 당했다.

B씨가 소를 제기한 사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은 최근 1심 판단에서 김 전 부사장의 모욕 혐의를 인정하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B씨가 김 전 부사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지난 2월 부산지법은 1심에서 “피고(김 전 부사장)는 3회에 걸쳐 원고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게시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위자료 300만원 지급 판단을 내린 바 있다. TYM 측은 이와 관련한 시사저널 질의에 “김 전 부사장 개인적인 송사 사건으로 회사 차원에서 입장을 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A씨는 시사저널에 “아내가 김 전 부사장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고, 과거 지인이었던 만큼 여러 가지 직접 겪거나 들었던 내용들이 있어 회사에 제보했다가 신원이 노출되고 피소를 당하는 등 고통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한편 김 전 부사장은 TYM 지분 5.26%를 보유해 김 회장의 세 자녀 중에서는 셋째 김식 전 전무(10.53%)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김소원 경영지원본부장은 지분 4.04%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김 전 부사장이 여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TYM 최대주주인 김 전 전무는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김 전 부사장과 김 전 전무는 지난 2월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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