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요 “평생 마음 한편에 ‘경란’을 간직할 것”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1 12: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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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독립영화계 유망주, 배우 안소요

스무 살의 어느 날, 책에서 본 ‘소요’라는 단어가 이름이 됐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떠들썩하게 들고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서른여섯의 배우 안소요를 대중에게 알린 작품이다. 모두가 《더 글로리》의 ‘경란’으로 안소요를 기억하지만, 그녀는 이전부터 자신만의 연기를 여러 작품에 깊고 진하게 남겨왔다.

배우 안소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암전 같은 삶 속에서 비극의 얼굴을 지닌 ‘해수’였고(《축복의 집》),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예은’이었고(《더 데이》), 사무적인 웹툰 편집자 ‘함소요’이기도 했다(드라마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토론토국제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공식 초청한 영화이자 그의 첫 데뷔작인 《인 허 플레이스》를 통해 ‘리마커블(remarkable·놀라운)’한 배우라는 찬사를 받았고, 지난해 공개된 주연작 《축복의 집》에서는 긴장의 밀도를 높이는 흡인력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안소요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했다. 독립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고, 임신한 10대 소녀(《인 허 플레이스》)부터 아이를 잃고 오열하는 엄마(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 역할까지 소화하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도 입증했다.

작품 사이를 거닐며 자유롭게 연기하던 배우 안소요는 이제 《더 글로리》를 통해 대중 앞에 가까이 섰다. 많은 응원을 받았다는 그는 ‘경란’을 평생 마음 한편에 간직하겠다고 했다. 《더 글로리》는 배우 안소요에게 어떤 영광이었을까. ‘경란’이 아닌 ‘안소요’는 어떤 사람일까. 많은 이에게 각인되기까지 그의 연기가 단단해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4월4일 서울 강남구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배우 안소요를 직접 만났다.

배우 안소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배우 안소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데뷔 9년 차에 마주한 《더 글로리》는 배우 안소요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저를 많은 분께 소개해준 고마운 작품이다. 많은 분이 응원해 주신 ‘경란’이라는 인물을 평생 마음 한편에 간직할 것이다. 일상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지만, 저를 궁금해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이 많다. 그 사실이 감사하다.”

‘경란’ 역을 맡게 된 배경도 듣고 싶다.

“블라인드 오디션을 봤기 때문에 정해진 역할이 없었다. 현장에서 대본을 받고 30분 정도 연습한 뒤, 오디션장에 들어가 연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받은 것은 혜정과 사라의 대사였는데, 감독님께서 ‘너무 어려 보인다’ ‘고등학생 같다’고 하셨다. 2차 오디션 때는 혜정이나 사라 역할에 맡게 화려하게 꾸미고 갔는데, 그때는 동은과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생 성희의 대사를 받게 됐다. 성희의 대사와 함께 동은의 대사도 해보라고 하셔서 함께 보여드렸고, 나중에 경란 역으로 연락을 주셨다. 경란은 오디션에서는 해보지 않은 역할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처음으로 경란을 보여드린 셈이다.”

역할에 대한 만족도는 어땠나.

”너무 좋았다. 지금 대본상에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스토리를 지닌 인물이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시즌2에서 경란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학폭 피해자의 불안감과 방어적 태도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란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을 염두에 뒀나. 특히 연기하기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나.

“경란이 왜 그랬는지, 어떤 사람인지 쉽게 판단하려고 하지 않았다. 연기에 앞서 경란의 인생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시청자들이 볼 때 경란이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떤 선상에 놓인 인물인지 헷갈릴 수 있도록 긴장감을 주고자 했다. 모든 장면이 어렵다면 어려웠지만, 혼자 방에서 울던 장면에 마음이 쓰였다. 처음으로 자기 속마음을 드러낸 장면이다. 경란은 감정의 바닥을 치고 나서야 동은에게 다가갈 결심을 했다. 경란에게는 큰 변화의 지점이었다.”

가해자와 함께 지내는 경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해자의 요구에 응하거나 침묵해야만 했던 피해자도 많다. 세상의 많은 경란이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마음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배우이기 때문에 연기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극 중 인물이지만 경란을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보듬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이 작품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으신다면 좋겠다. 작품을 보는 것조차 힘든 분들의 마음도 존중한다. 작품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계기로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글로리》는 끝났지만, 경란의 이야기는 시작’이라는 글을 SNS에 남긴 적이 있다. 이후 경란의 삶은 어떨까.

“많은 분이 같이 상상해 주시고, 좋은 내용을 공유해 주셨다. 경란이는 아마 자기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지지 않을까 싶다. 아주 천천히 변화하는 일상을 마주할 것 같다. 경란은 동은에 비해 심지가 굳지 않은 성격이다.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을 곧게 설정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라 본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배우 안소요가 연기한 《더 글로리》의 경란 ⓒ넷플릭스

‘경란’이 아닌 ‘안소요’의 삶도 궁금하다.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나.

“《더 글로리》를 보고 어릴 때 친구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어릴 때부터 웃겼는데 배우가 된 걸 보니 너무 좋다고 하더라. 돌이켜보니 저는 조용한 편이었는데, 멍석을 깔아주면 친구들을 웃기는 걸 되게 좋아했다. 학창시절부터 앞에 나가서 연극을 하는 걸 즐겼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께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크게 반대하셨다. 그래서 연극영화과가 있는 대학교에 진학해 바로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고, 연극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때부터 연기에 푹 빠져서 지냈다.”

취미 생활이 있나. 최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영화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가리지 않고 책을 본다.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는다. 망상에 빠지는 것도 좋아한다. 집 근처를 종종 산책하고, 영화도 가끔 혼자 보러 간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애프터썬》이 정말 좋았고,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라는 영화를 만든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6번 칸》도 참 좋았다. 만화책을 소장할 정도로 《슬램덩크》 팬이라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너무 재밌게 봤다. 어릴 때부터 순정만화보다 무협만화나 스포츠물을 좋아했다. 《슬램덩크》 영화가 시작될 때 입을 틀어막으면서 자리에서 춤을 췄다. 너무 좋아서(웃음).”

배우 안소요의 첫 작품 《인 허 플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올해의 영화’로 극찬받으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많은 분이 보시진 않았지만 제 첫 번째 필모그래피라는 것이 스스로 뿌듯할 정도로 이 작품을 굉장히 애정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막 오디션에 집중했던 시기에 오디션을 통해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이후의 오디션에 자꾸 떨어지면서 연기를 접어야겠다는 마음까지 먹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풀타임으로 바꿔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던 차였다. 이 영화가 외국 영화제에서 초청을 많이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가게 됐다. 영화 상영 이후 호텔 로비에 있는 컴퓨터에서 번역기의 힘을 빌려 읽은 긴 리뷰의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배우 안소요의 연기가 ‘리마커블(remarkable·놀라운)’하다는 문장이었다. 그 한 단어는 좌절하던 제게 큰 동력이 됐다. 다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의 불을 지피게 해준 소중한 순간이었다.”

《인 허 플레이스》에서 함께 연기했던 손지나(당시 윤다경) 배우와도 《더 글로리》에서 재회했는데.

“너무 반가웠다. 《더 글로리》 대본 리딩 때 만나 뵈었는데, 두 손을 맞잡고 반가움을 표현했다.”

역할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인 허 플레이스》의 10대 소녀 역할부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아기 엄마 역할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연기했다. 기억에 남는 역할이 있나.

“드라마 중에서는 티빙 오리지널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의 웹툰 편집자 ‘함소요’가 기억에 남는다. 비호감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라 어떻게 비칠까 걱정도 했었는데, 바로 그 역할을 연기해 주면 된다고 하셨다. ‘함소요’의 어렸을 때 스토리도 등장하고, 배역의 이름도 제 이름과 똑같아 애착이 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의 이름을 작품 속 인물의 이름으로 언급해 주신 작가님의 배려도 감사했다.”

안소요는 데뷔작 《인 허 플레이스》에서 임신한 10대 소녀를 연기했다. ⓒ홀리가든
박희권 감독의 영화 《축복의 집》에서는 긴장의 밀도를 높이는 연기를 선보이며 작품 전체를 이끌었다. ⓒ필름다빈

특히 지난해 공개된 영화 《축복의 집》에서는 주연을 맡아 작품 전체를 이끌었다. 긴장의 밀도가 높은 영화인데, 대사와 표정이 극히 없는 영화를 끌어가는 것에 부담감은 없었나.

“《인 허 플레이스》를 보신 박희권 감독님이 SNS로 연락을 주셔서 함께하게 됐다. 대사와 표정이 거의 없는 영화인지라 관객들에게 얼마나 가닿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감독님과 방향성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 연출 방향은 분명하지만, 연기적인 부분을 오롯이 저에게 맡겨주셨다. 검은색 물감을 쓰되 마음대로 칠해보라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여러 농도의 무표정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고, 역할에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는 요소가 있나. 이번에는 상업 작품, 특히 넷플릭스 시리즈를 통해 연기를 보여줬는데, 독립영화와는 현장 분위기도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지금까지 제가 작품을 골랐다기보다는 작품이 저를 골라준 대로 왔다. 작품의 기회가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열어놓고 연기한다. 그 과정에서 잘 맞는 연출 방식을 깨닫기도 하고, 새로운 방식도 배웠다. 기본적으로 연기에 접근하는 마음은 같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부분은 있다. 독립영화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다. 연출 방향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이 넓을수록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그런 점이 적다. 비교적 정확하게 연기해야 하고, 반복적인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대한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지 않고 순간적으로 흘러나오는 감정에 대해 열어두려는 편이다. 《더 글로리》에서도 그런 깨알 같은 부분이 있었다. 초록 구두를 보고 ‘빨간색이 섞였네’라고 말하며 살짝 미소 짓는다든가, 소리 지르는 연진의 앞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피하는 모습 같은. 그런 순간적인 부분이 좋다고 얘기해 주시더라.”

글로벌 OTT를 통해 해외 시청자들과의 접점도 생겼다. 기존에 독립영화에서 주로 활동하거나 대중과의 접점이 적던 배우들이 OTT를 통해 많이 부각되고 있다. 그 영향력을 체감하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더 글로리》라는 작품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아직 신인 배우로서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렇지만 동료 배우나 제가 받는 관심을 함께 지켜보면서 그 영향력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다. 배우는 대중과 소통하고 공유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직업이다. 소통의 공간이 넓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드린다. 아직 한 발 한 발이 가벼운 ‘새싹 배우’에게는 이런 점이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배우 안소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인 허 플레이스》 《축복의 집》 《더 글로리》 등 작품에서 주로 무거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무게감 있는 역할에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이 우려되진 않나.

“부담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런 역할들을 만나면서 연기할 수 있었고, 그 작품이 또 다른 작품과 연결되기도 했다. 여러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 같은 맥락에서 《더 글로리》의 경란 역시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감사한 배역이었다. 이 작품으로 많은 분께 인사를 드렸다. 어떤 역할을 통해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밝은 안소요를 보고 싶은데, 계획이 있나. 차기작 《남남》에 대해 소개해 준다면.

“디즈니플러스 《남남》은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따뜻한 작품이다. 얼마 전에 촬영을 마쳤다. 경란이보다는 밝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감정적으로 어둡고 힘든 캐릭터는 아니지만, 화가 많아 버럭거리는 경찰 역을 맡았다(웃음). 《더 글로리》의 전재준 역할을 맡았던 박성훈 오빠와 《남남》을 통해 다시 만난다.”

배우 안소요에게 연기란.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저는 원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한 작품을 만날 때 그 인연에 집중하고, 또 다음 작품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해 순간을 사는 것이 목표다. 지금도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크고, 잘하고 싶은 열망도 크다. 마음의 물을 계속 갈아내면서 계속 새로운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앞으로 만나게 될 작품들과 인물들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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