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과속 사고 내놓고 유럽의 운전대 잡겠다는 마크롱
  • 김휘동 유럽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6 08:05
  • 호수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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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견제’ 방중 행보 논란에 유럽 여론 뭇매 “지정학적 장님”
‘EU 대통령’ 야심 이루기 위해 무리수 둔다는 지적 받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거침이 없다. 자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여론의 강한 반발에도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데 이어 최근엔 미국을 강하게 견제하며 ‘유럽 주권론’에 대해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종국적으로 유럽의 운전대를 잡겠다는 꿈을 꾸는 마크롱의 야심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유럽은 물론 국내 여론 수습조차 여전히 안갯속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매일같이 시위대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고, 최근의 방중 행보 논란 등으로 유럽연합(EU)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고립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4일간의 방중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네덜란드로 향하며 유럽 주권론의 운전대를 잡겠다는 의지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의 네덜란드 방문은 23년 만이다. 헤이그를 방문한 마크롱은 ‘유럽의 미래’를 주제로 진행된 특별강연에서 “유럽의 기반은 다양성의 통합”이라며 “이를 지키기 위해선 (우리가) 직접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4월7일 중국 광저우 쑨얏센대학에 도착해 학생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 AP 연합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4월7일 중국 광저우 쑨얏센대학에 도착해 학생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AP 연합

마크롱 입지 흔들리며 극우정당 다시 인기

마크롱 대통령의 강연은 프랑스 연금 개혁 강행에 대한 규탄 시위로 인해 시작과 동시에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폭력과 위선의 대통령”이라고 외치며 “거리에 나와 있는 수백만 명의 시위대를 잊지 말라”고 외쳤다. 마크롱이 유럽의 주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유럽 주권론을 꺼내들었지만, 연금 개혁 강행으로 인한 자국 내 저항부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프랑스 전역에서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집권 1기 취임 때부터 유럽 주권론을 주장해 왔던 마크롱 대통령이 현시점에 다시금 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러한 국내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국 내 부정적 여론을 전환하기 위한 카드라는 시각이다.

시위대의 저항뿐 아니라 야당의 압박도 계속돼 마크롱 대통령의 자국 내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마크롱은 최근 실시된 국회 불신임 투표에서 9표 차이로 간신히 살아남은 바 있다. 야당은 연금 개혁 법안 관련 헌법 49.3조 발동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 이어 국민투표도 추진하고 있다. 마크롱의 연금 개혁은 헌법위원회 판단과는 별개로 약 9개월간 법령 공포가 중단될 예정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랑스 내에선 극우정당 등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갑작스러운 그의 유럽 주권론 드라이브는 유럽에서의 그의 입지 또한 위협하고 있다. 최근 방중 행보 등을 통해 중국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를 드러낸 그의 노선에 유럽에선 반발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15명의 EU 각국 의회 의원과 13명의 영국 하원의원 그리고 3명의 유럽의회 의원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유럽 각국 의회의 심정과 심각하게 어긋나 있는 점을 강조한다”며 공개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익명의 리투아니아 의원은 마크롱을 향해 “지정학적 장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을 저격하듯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방미한다”면서 “미국은 유럽 안보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독일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다. 독일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중도우파 성향의 노베르트 뢰트겐 독일 국회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외교 참사”라고 지적하며 “그는 유럽 내에서 눈에 띄게 고립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 출신의 녹색당 소속 라인하르트 부티코퍼 EU 의원은 “완전한 재앙”이라며 마크롱의 주장에 대해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못 박았다.

연금 개혁과 유럽 주권론은 모두 마크롱 대통령이 애초부터 견지해 왔던 입장인 것은 사실이다. 필요성에 대해선 프랑스와 유럽 모두 공감하는 바도 있다. 그러나 왜 그에게 ‘위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까.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정년 2년 연장 때문만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사실 프랑스 대다수 국민은 프랑스의 정년이 EU 내에서도 상당히 낮다는 점을 인지하며 연장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마크롱의 추진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유럽의 중앙 정치무대에서 주권과 민주주의 체계 강화를 외치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선 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시각이다. 특히 시위대를 향한 과잉진압에 대해 유럽 평의회와 국제앰네스티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또한 법안 발의 시 의회 표결을 우회하고 공포할 수 있는 ‘헌법 49.3조’ 남용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깊다. 마크롱 정부는 단순히 연금 개혁 법안에만 이를 발동한 게 아니며 지난해 5월 이후 현재까지 11회나 발동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3월28일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한 시위자가 시위 도중 물건을 던지고 있다. ⓒAP 연합
3월28일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한 시위자가 시위 도중 물건을 던지고 있다. ⓒAP 연합

연금 개혁·유럽 주권론 맞지만 시기가 문제

유럽 주권론 또한 화두 자체는 대다수 유럽인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는 평이다. 유럽 언론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촉발된 대서양주의 약화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쌓여온 미국에 대한 불신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평가도 내놨다. 그러나 EU 정치인들의 비판에 담긴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현재 유럽이 처한 안보 지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에 시기에 맞지 않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져 거센 비판 여론이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과 유럽 주권론을 다시금 꺼내든 배경에는 사안의 시급성이 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이는 그가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방식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재선으로 마지막 임기 중인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과연 45세 젊은 대통령은 프랑스를 넘어 브뤼셀에서 EU를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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