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액션, 《존 윅 4》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5 14:05
  • 호수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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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의, 액션에 의한, 액션을 위한 영화
저예산 영화로 시작해 시리즈물로 확고한 자리매김

만우절인 4월1일, 한 장의 ‘짤’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 속 주인공은 애견 권익에 앞장서고 계시는 존 윅(키아누 리브스). 각 잡힌 슈트 핏 뽐내며 진지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존 윅 아래로, 이런 문구가 합성돼 있다. “죽이려는 게 아니라 얘기만 할 거야.”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알 만한 사람은 이제 다 안다. 존 윅은 얘기할 시간에 총 한 발 더 쏘는 남자라는 걸. 그건 흡사 ‘월요일 다음이 화요일이고, 가을이 가면 겨울 온다’와 같은 팩트라는 걸.

세상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과 존 윅의 개다. 은퇴한 킬러계의 고수 존 윅이, 아내가 남기고 간 반려견을 죽인 범죄조직에 복수하기 위해 숨겨둔 본능을 꺼내면서 가동된 《존 윅》 시리즈가 4편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2편에서부터 시작된 기조를 이어간다. 현상금이 걸린 존 윅을 죽이려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이들을, 존 윅이 일말의 아량도 품지 않고 가루로 만드는 것.

아니나 다를까. 《존 윅 4》는 일찍이 대사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확인 사살한다. 적들을 마중 나가는 존 윅을 불러 세운 그의 일본인 친구 고지(사나다 히로유키)가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 “최대한 많이 죽여주게!” 그리고 친구의 말이 ‘가훈’인 것처럼 존 윅은 169분 동안 수많은 사람을 칼로 죽이고, 총으로 죽이고, 쌍절곤으로 죽이고, 활로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문짝으로 죽여 나간다. 정말이지, 죽이는 영화다.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상당한 양의 액션과 쫀쫀한 리듬감

킬러 세계의 ‘룰’을 어겼다는 이유로 조직에서 파문되고, 킬러들의 표적이 된 존 윅. 지도부 최고 회의의 새 의장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은 존 윅을 처단하기 위해 은퇴한 킬러이자 존 윅의 옛 친구인 케인(견자단)을 불러들인다. 딸을 지키기 위해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인 케인. 몸을 숨기고 있던 오사카 콘티넨털 호텔에서 또 다른 친구 고지(사나다 히로유키)를 잃은 존 윅은 자유를 되찾기 위한 묘안을 떠올린다.

솔직히 러닝타임을 확인했을 때 걱정했다. 169분이라니. 아무리 좋은 액션이라도, 양이 많아질수록 ‘액션 한계효용의 법칙’을 피해 가긴 힘든 법. 자극은 시간과 함께 무뎌지고, 싸움도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131분이었던 전작 《존 윅3》도 액션 쾌감을 최적으로 즐기기엔 다소 길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지 않은가. 그런데 줄이기는커녕 40분가량 늘렸다. 배짱인가, 배포인가, 무모함인가, 자신감인가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액션을 향한 (만든 이들의) 구구절절한 애정으로 보인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야심이 극 전반에 출렁거린다.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이 이겼다. 4편에서 최대의 놀라움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액션을 쏟아내는데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액션 양도 엄청나지만, 질도 상당히 우수하기 때문. 액션 창의력도 리듬감도 쫀쫀하다.

최종장에 액션 하이라이트를 한껏 퍼붓는 여타의 액션영화들과 달리, 《존 윅4》는 액션 시퀀스 마디마디가 하이라이트다. 1편에서부터 《존 윅》 시리즈를 이끌어온 스턴트맨 출신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이번 편을 흡사 ‘다섯 개의 액션 막’과 그 사이 ‘막간의 휴식’이 공존하는 싸움판으로 만들었다. 막마다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액션이 다르다. ‘콘티넨털 호텔 오사카 지점’ 신에서 총과 쌍절곤이 전면에 나선다면, ‘베를린 클럽’ 신에선 물과 하나가 된 타격감 넘치는 맨몸 액션이 출렁이고, ‘파리 개선문 로터리’ 신에선 드리프트 액션이 드르렁거리더니, ‘파리 빈 아파트 내부’에서 펼쳐지는 총격전에선 드론으로 촬영한 부감 쇼트까지 동원해 새로움을 더했다. 그리고 사크레 쾨르 대성당으로 가는 길목의 ‘푸아이아티에 222계단’ 신에선 상승과 하강의 에너지를 교차시켜 액션의 땀내와 짠함을 한껏 끌어올린다.

영화 《존 윅4》의 한 장면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존 윅4》의 한 장면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존 윅4》의 한 장면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존 윅4》의 한 장면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존 윅4》의 한 장면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존 윅4》의 한 장면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액션이 곧 서사다!

‘액션’이 서사고, ‘액션’이 감정이며, ‘액션’이 리듬인 《존 윅》 시리즈는 액션의, 액션에 의한, 액션을 위한 영화 그 자체다. 이로 인해 종종 공격받아온 게 ‘개연성’이었다. 흥미롭게도 4편에 이르는 과정에서 관객은 이러한 ‘개나 줘버린 개연성 없음’을 일종의 ‘밈’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당신도 이미 이를 즐기고 있다는 신호다.

가령, 클럽에서 총격전이 살벌하게 벌어지는데도, 클럽을 꽉 채운 베를리너들은 춤추는 걸 멈추지 않는다. 저게 말이 되냐고? 개선문 교차로 액션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다. 길 한복판에서 살육이 벌어지든 말든 파리의 차들은 가던 길을 유유히 간다. 저건 또 말이 돼? 다른 영화였다면, 분명 “말이 안 돼”가 됐겠지만, 여기선 통용된다. 왜? 《존 윅》 시리즈니까. 세계관 구축에, 그리고 관객들과의 암묵적인 합의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물론 모든 장면이 뻥 같고 비현실적이라면 이 시리즈는 이토록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은 비현실적이지만, 액션은 현실적일 것. 그 합이 《존 윅》 시리즈의 묘한 매력이다. 가령, 총알을 막아내는 방탄 슈트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슈트가 가리지 못한 머리나 목덜미 등을 노려 총총 박아넣는 액션은 현실적이다. 특히 영화는 CG의 힘을 빌려 눈속임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주먹이 어떻게 날아가고, 총알이 어디에 꽂히는가를 정확히 포착해 낸다. 뛰어난 액션 전달력은 관객이 느끼는 체감 액션의 강도를 강화시킨다.

이 시리즈 장점은 존 윅의 능력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점이지만, 그것이 간혹 다음 그림을 너무 쉽게 예측하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해온 게 없진 않았다. 세상 누가 존 윅을 이길쏘냐. 그 아쉬움을 이번 편은 아시아 대표 액션배우 견자단을 통해 막아낸다. 특유의 절도 있는 액션을 선보이는 견자단은 키아누 리브스의 육중한 육체가 뿜어내는 액션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의 쾌감을 안긴다. 암살자 케인은 뛰어난 무술 신공으로 존 윅을 견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존 윅을 진짜 뛰어넘을 수 있는 자(?)는 단 하나, 오로지 ‘개’뿐이다. 개 앞에서만큼은 존 윅도 총구의 방향을 틀 줄 안다. 그에게 개는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존재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치게 해선 안 되는 존재다.

어느덧 10년. 솔직히 4편까지 올 줄 몰랐다. 아마 스튜디오도 키아누 리브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예산 영화로 시작한 영화는 마니아 팬덤의 지지를 업고, 대중 영화로 확장되더니, 시리즈물로도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심지어 키아누 리브스에겐 연금복권 같은 작품이기도 한데, 최근 부활한 그의 대표작 《매트릭스》의 새로운 시리즈가 부진하면서, 존 윅의 존재감이 조금 더 커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키아누 리비스의 존 윅은 조금 더 생명 연장의 꿈을 이어갈까. 일단, 《존 윅》 시리즈 스핀오프 《발레리나》가 확정된 상태다. 미안한 말이지만 크게 기대되진 않는다. 그것이 스핀오프든 뭐든, 존 윅이 등장하지 않는 존 윅 영화야말로 개연성 없어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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