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희준 변호사 “필로폰 한 회 투약, 지금은 치킨 한 마리 값”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7 07:35
  • 호수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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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마약왕 조봉행’ ‘중국 흑사회 사건’ 등 맡은 김희준 변호사
“마약, 범죄+질병으로 봐야…미국 약물법원 모델, 교육 등 필요”

영화 《공공의 적2》에서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강철중은 다혈질 강력계 검사다. 검찰청의 최고 ‘꼴통검사’로, 비리를 저지른 사학재단 이사장을 응징한다. 영화의 모티브는 1998년 광주 ‘물뽕 사건’이다. 그해 수사기관이 압수한 마약의 절반 이상이 광주지검의 ‘물뽕’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수사한 인물이자,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실제 인물 ‘국제 마약왕 조봉행’을 재판에 넘긴 검사. 김희준 법무법인 LKB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22기)다. 그는 중국 최대 조폭 ‘흑사회’의 국내 마약 유통 조직 소탕, 수용소를 탈옥한 국제 마약밀수범 기소 등 굵직한 사건을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공조했고, 국내 최초로 ‘물뽕’과 ‘프로포폴’의 마약류 지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최근 서울 학원가에 ‘마약 음료’까지 유통되며, 마약이 국가적 문제로 급부상했다. 유명 영화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37)의 마약 투약부터 10대 여중생의 필로폰 투약 사건 등도 심각성을 더했다. 마약 수사 경험이 있는 김희준 변호사는 국내 마약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4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마약 문제를 범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활 가능성을 고려해 형을 선고하는 미국의 약물법원 모델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1996년 대구지검 경주지청을 시작으로 광주지검 특수부,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등을 지냈다. 23년간 검찰에서 마약·조직 범죄 등 강력 사건을 주로 다뤘다. 아래는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최근 학원에서 유통된 ‘마약 음료’ 사건이 논란거리다.

“‘마약 음료’에 들어간 필로폰 자체는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거다. 음료 제조만 국내에서 이뤄졌다는 건데, 실제로 국내에서 마약 자체가 제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국, 동남아, 북한 등에서 주로 들어온다. 과거에는 마약 사범끼리 마약을 거래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끼리 대면 거래를 하는 식이다.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대면으로 마약을 주문하면 바로 배달된다. 마약 종류도 다양해졌다. 필로폰 1회 투약 가격이 과거 10만~15만원이었다. 지금은 2만~3만원까지 내려갔다. 치킨 한 마리 값이다. 구조적인 변화가 생긴 거다. 학생, 주부, 직장인 등 일반인들에게도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청소년 마약 사범이 늘어났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마약 사범 가운데 10·20대 젊은 층 비율은 2017년보다 2.4배 상승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도 고려했을 때 실제로 마약 사범은 통계보다 몇 배 정도 많은가.

“마약은 대표적인 ‘암수 범죄’다. 암수 범죄는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은 범죄 건수다. 마약 범죄에서 암수 범죄 비율이 가장 높다. 최소 28.5배에서 많게는 100배까지다. 적발 건수에 이 숫자를 곱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계로만 현실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

가장 위험한 약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펜타닐이다. 원래 말기 암환자처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처방되는 의료용 마약이다. 치사율이 굉장히 높다. 모르핀의 200배, 헤로인의 100배 정도다. 이런 위험한 마약이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펜타닐이 국가적 문제가 됐다.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교통사고나 총기 사고 사망자 수보다 많다. 펜타닐 문제는 중국과의 외교 분쟁으로도 번졌다. 중국이 멕시코에 있는 마약 카르텔에 원료를 공급하고, 마약 카르텔이 펜타닐을 제조해 미국에 유통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펜타닐이 국가적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병·의원은 펜타닐을 쉽게 처방하고 있다.”

검경·관세청 등으로 구성된 마약 특별수사본부가 효과 있을까.

“정부는 과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런데도 ‘마약 음료’ 사건이 벌어졌다. 단속, 처벌도 중요하다. 여기에 교육도 필요하다. 애초에 마약에 손을 못 대도록 해야 한다. 수요 자체를 없애자는 거다. 이를 위해 청소년들에게 마약의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 이행해야 한다. 마약 문제는 ‘범죄+질병’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마약 범죄 수사에 대해 평가한다면.

“마약 수사는 투약 사범에서 공급책까지, ‘위로 올라가는’ 수사 구조다. 투약 사범부터 공급 사범, 이후 밀수-제조 사범을 잡는 식이다. 그런데 2021년 수사권을 조정하면서 수사 범위가 제한됐다.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마약 범죄 범위가 ‘500만원 이상 밀수’로 좁혀진 거다. 500만원 미만의 밀수 사범은 어떻게 하나. 수사의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다. 그렇다 보니 수사권 조정 전보다 적발 건수가 약 73% 감소한 것으로 안다.”

수사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온라인상 위장수사가 도입된 분야는 딱 하나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다. 과거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도입됐다. 마약 수사에도 이러한 위장수사 기법이 도입돼야 한다. 현재 마약 거래는 주로 온라인상에서 이뤄진다. SNS 텔레그램이나 다크웹 등에서 마약을 구매하고, 배송책이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면 구매자가 이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에 수사관이 텔레그램 마약방에 들어가 흐름을 계속 살피고, 내용을 파악하면서 일망타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국내 치료, 재활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마약청정국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부가 지정한 전담기관은 21곳이다. 그런데 실제 운영되는 곳은 인천의 참사랑병원과 경남 국립부곡병원, 두 곳이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로는 미국이 있다. 미국에는 약물법원이 별도로 있다. 마약 사범들은 연계된 치료기관에서 6개월에서 1년간 치료를 먼저 받는다. 법원은 이후 이들의 재활 가능성 등을 고려해 형을 선고한다. 우리나라도 마약 사범에 대해 치료 가능성을 판단한 후 처벌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마약 사범들은 교도소에서 ‘마약을 더 잘 배워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마약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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