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마약 유통, 땅을 기는 마약 수사?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7 07:35
  • 호수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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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 박상기·추미애 법무장관 때 마약 부서 축소
특별수사본부 구성·대검 마약 수사 지휘부 복원 움직임

국내 마약 사범 통계가 매번 ‘역대 최다’ 기록을 깨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2월 마약 사범은 2600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964명)도 ‘역대 최다’였는데, 이보다 32.4% 늘어났다. 수사기관이 압수한 마약은 176.9㎏으로 같은 기간 57.4% 폭증했다. 과거에는 믿는 사람끼리 마약 거래를 했다면, 이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모르는 이들로부터 실시간 마약 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에 익숙한 10대 마약 사범도 덩달아 늘었다. 10대 마약 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2022년 481명으로 4배나 증가했다. 전체 마약 사범 중 10·20대 비중은 같은 기간 15.8%에서 34.2%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면 마약 단속·수사 역량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1~22년 문재인 정부의 ‘검찰 힘 빼기’ 때문에 마약 범죄에 대한 수사가 미진하다는 것이다. 문 정부는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 등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권 범위를 2대 범죄(부패·경제)로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마약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500만원 이상 밀수, 밀수 목적의 소지 등’으로 한정됐다. “마약만 전담한 검찰 내 전문인력을 ‘유휴 인력’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 문제만이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 미만인 국가) 지위를 잃은 이유일까. 최근 학원가에 ‘마약 음료’까지 유통되면서 국가적 문제가 된 마약 문제의 원인을 전문가들의 진단을 토대로 되짚어봤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힘 빠진’ 마약 수사의 역사 돌아보니…

1990년 5월16일 전국 6대 지검에 강력부가 신설됐다. 이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3대 폭력조직 ‘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 조직폭력배 2만3000명이 검찰 단속망에 걸렸다. 이 가운데 1만6000여 명이 구속됐다. 이렇게 시작된 강력부에서는 마약 수사도 이뤄졌다. 2005년 2월에는 강력부의 이름이 ‘마약조직범죄수사부’로 변경됐을 정도다. 이는 2009년 다시 강력부로 바뀌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통·폐합됐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18년 특별수사 전담 특수부와 강력부를 통합했고, 강력부 산하 마약수사 부서는 자연스레 반부패·강력부로 이관됐다. 이마저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20년 마약과와 조직범죄과가 통합되면서 쪼그라들었다.

마약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도 축소됐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500만원 이상 마약 밀수’와 ‘밀수 목적의 소유·소지’에 한해서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밀수범으로부터 마약을 구입해 국내에 유통하거나 투약한 공범은 수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검찰은 경찰에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 다만 검찰은 2022년 9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에 따라 대규모 마약류 국내 유통에 대한 직접수사는 가능해졌다. 이와 관련해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마약 범죄는 제조, 밀수, 유통, 투약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안”이라며 “기준을 정해 수사를 나눈 자체가 마약 범죄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2021년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6대 범죄(부패·경제·방위사업·공직자·선거·대형 참사)로 줄어들었다. 2022년 ‘검수완박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이후 부패와 경제 2대 범죄로 다시 축소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약 전담 인력마저 부족하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60개 지검·지청 가운데 22곳에는 마약 전담 수사관이 ‘0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지검 47명, 서울중앙지검은 39명으로 많은 편이었지만, 안동·경주·원주 등에는 한 명도 없었다. 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의 수사 상황도 녹록지 않다. 경찰청이 지난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과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마약 수사 전담인력 증원 요청 및 반영 현황’ 자료를 보면, 경찰청은 2022~23년 각각 216명, 82명의 마약 수사 전담인력 증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등 정부 심사 과정에서 ‘0명’으로 확정됐다.

윤석열 정부는 대검찰청의 마약 수사 지휘 부서 복원, 합동 특별수사본부 설치 등 칼을 빼들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4월12일 법무부 간부회의에서 대검찰청의 마약 수사 지휘 부서 복원을 지시했다. 반부패·강력부가 특별수사와 마약·강력 수사를 담당하는데, 이를 재편해 마약·강력 수사만 전담해 지휘하는 ‘마약·강력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4월10일에는 마약 범죄 특별수사본부도 꾸려졌다. 검찰과 경찰·관세청 등은 이날 대검찰청에서 ‘마약 범죄 대응 유관기관 협의회’를 열고, 마약 수사 전담 인력 840명(검찰 377명, 경찰 371명 등)으로 구성된 특수본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월 전국 4대 검찰청에서 ‘범정부 마약 범죄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는데, 마약 특수본은 여기에 경찰 수사 인력도 추가한 것이다.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김갑식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형사국장이 공동본부장이다.

신봉수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4월10일 대검찰청에서 마약 범죄 대응 유관기관 협의회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범률도 집유 선고율도 높아…교육, 치료와 재활은 ‘유명무실’

우리나라는 온라인에 마약 판매 글을 올리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다. 판매 광고만 올려도 처벌 대상이고, 여러 유관기관에서 모니터링한 결과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차단 요청을 한다는 것이 검찰 측 설명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텔레그램 채팅창 등에 잠입해 수사하는 ‘온라인상 위장수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만 허용됐다. 텔레그램, 다크웹 등에서 주로 거래되는 마약에 대해서는 위장·잠입 수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마약 사범 검거를 위한 영장 발부에 시일이 걸린다는 점도 수사상 어려운 점으로 지목된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보면 2022년 기준 법원의 영장 발부율은 91.7%다. 이 가운데 통신제한조치허가서(감청) 영장은 지난해 10건 중 1건만 기각(90%)됐다. 이는 기간 연장도 포함된 것이다.

경찰대 출신 박성배 변호사(사법연수원 41기)는 함정수사 필요성과 관련해 “과거에는 범죄를 유발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하다는 엄격한 제재하에 있었다면 최근엔 일정 범죄 유형에 대한 함정수사가 적법하다는 취지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압수수색영장과 감청통신영장의 원활한 발부가 관건인데, 우리나라에서 마약이 심각해지면 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법원도 일정한 협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수사와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다. 마약 사범은 살인, 절도 등 주요 범죄 가운데 재범률이 30%대로 가장 높다. 대검찰청 통계상 마약 투약 재범률은 2017~21년 평균 35%다. 마약 재범자 중 3년 이내 재검거 비율은 80%를 넘는다. 대법원의 사법연감을 보면 마약 사범의 실형 선고 비율은 2020년 53.7%에서 2021년 50.6%, 2022년 48.1%로 하락세다.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같은 기간 36.3%에서 38.1%, 39.8%로 증가했다. 대법원 양형기준상 마약 투약, 단순 소지한 이들에게 내려지는 기본 형량은 최소 6개월에서 3년 정도다. 수사에 협조하거나 초범인 경우 등에 한해서는 형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 매매나 알선, 제조(8개월~11년), 대량범(3~11년)도 형량이 최대 8~10년가량 벌어진다. 이 때문에 ‘초범이면 구속을 면한다’고 알려지면서 마약 사범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형량 강화와 동시에 예방교육, 치료·재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다. 현재 학교보건법상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 오남용 예방’ 등이 교육 대상이다. 2019년 개정한 결과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인 교육은 전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지정한 국내 마약 치료·재활기관 21곳의 운영 실적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21곳 가운데 실제로 운영되는 곳은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 두 곳이다. 두 곳은 2021년(280명)에 이어 2022년(421명)에도 치료·보호를 받은 인원의 97%를 전담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치료와 재활시설 관련 연구용역을 맡겼다.

복수의 전문가도 마약 문제를 한 기관이 전담할 수 없다고 지적해 왔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이나 약물법원 등 마약 문제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특정한 한 기관만이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다양한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 민간의 노하우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유관기관과 해외 정보기관 간 긴밀한 네트워크도 요구된다. 한희원 동국대 법무대학원 원장(사법연수원 14기)는 “마약은 국제적으로 연계돼 국가의 존립과 발전에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국가 안보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마약은 전 세계적으로 연계된 망에 의해 공급되기 때문에 치안 질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정보’의 문제”라며 “미국 법무부 산하 DEA와 긴밀하게 연계하는 등 국제적 정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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