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호실적에 투자 가속도…지배구조 개편은 감감 무소식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3 16: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기 최대 실적 전망에 24조원 규모 국내 투자 발표
‘순환출자’ 끊기 작업은 물음표…실탄 확보에 주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3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2023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3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2023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현대차의 질주가 예사롭지 않다.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이 예상돼서다. 최근에는 국내에 24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며 글로벌 전기차 3대 강국이라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불안요소는 여전히 상존한다. ‘정의선 체제’로의 전환이 3년을 넘었지만 순환출자고리를 끊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현대차가 오랜만에 수출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13개월 연속 무역 적자 속에서도 자동차의 1~2월 무역 흑자액이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9년 만에 반도체를 제치고 무역 흑자 1위에 오른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수출액의 88%를 차지한다.

1분기 실적 전망도 밝다. 증권가는 현대차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37조원과 3조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역대 최대 분기 실적으로 국내 상장사 1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호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데는 내수, 수출, 북미 시장 판매 호조와 더불어 그랜저, 코나, 아이오닉6 등 신차들의 출고 가격 상승으로 마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퍼포먼스를 마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퍼포먼스를 마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에는 대규모 투자 계획도 공개했다. 29년 만에 국내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경기도 화성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설립하는 등 전기차 산업에 총 24조원 규모의 금액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연간 생산량을 151만 대로 끌어올려 전기차 글로벌 판매량 3위권에 진입하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잘 나가는 현대차이지만 불안요소도 있다. 그룹의 아킬레스건인 지배구조 개편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로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 이후 좀처럼 묘수를 꺼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고민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정의선 회장 지분이 0.3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의 지분 21.43%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정 회장의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7.19%)을 상속받는 방법도 있지만 양도소득세와 상속세를 감안하면 최소 10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재계에서는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이 2018년 시도했던 개편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앞서 지난해 모듈과 부품 생산 분야를 분리해 자회사 유니투스와 모트라스를 설립했다. 이들 자회사를 분할 합병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만드는 구상이다.

계열사 합종연횡을 시도하더라도 가장 필요한 것은 ‘실탄’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가 중요해서다. 지난해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IPO) 시도도 그 일환이라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에 성공할 경우 그가 거머쥘 자금은 3000억~4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상장을 포기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25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25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분 동맹에 등 돌렸던 현대차…KT, 백기사 역할 유효?

현대차그룹이 최근 주주환원책을 강화하는 것도 자금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주총에서 기말 배당금을 6000억원으로 책정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보통주 기준으로 중간배당 1000원을 합치면 주당 7000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 배당이다. 현대차 보통주 주당 배당금은 2020년 3000원, 2021년 5000원 수준이었다.

기아 역시 올해 배당액을 지난해보다 약 20% 높인 주당 3500원으로 결정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배당액이 높아졌다. 정 회장은 현대차와 기아 지분을 각각 2.62%, 1.74%씩 보유하고 있다.

그룹 내 계열사 중 정 회장 지분율(23.29%)이 가장 높은 현대글로비스 주가 관리에도 여념이 없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올 초 현대차 출신 재무 임원들을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보낸 것이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대하려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현대글로비스의 최근 주가흐름을 부진한 상황이다. 지난해 중순 21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최근 15~16만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KT와의 동맹 역시 관심사다.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과 KT는 7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맞교환을 단행했다. 이에 KT는 현대모비스 1.46%, 현대차 1.04% 지분을 갖고 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에서의 사업협력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우호 지분 확보 측면도 고려됐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가 KT 대표 이사 선임 과정에서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하며 양측의 관계가 미묘해진 상황이다. 이에 향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KT가 백기사 역할을 할지 미지수라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전기차로의 전환에 속도를 올리고 있지만 그룹 지배력 강화 역시 정 회장이 해결해야 할 난제”라며 “정 회장 취임 이후 3년이 넘었기 때문에 지배구조 투명성을 위해서도 청사진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재를 털어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시점을 저울질하면서 일단 자사주 소각과 배당금 확대 등을 통해 실탄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