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인데 또 거부권?”…尹대통령의 간호법 딜레마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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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정부여당 중재안 거부…양곡법 이어 ‘2차 거부권’ 가시화
“입법독주 막으려 거부권 행사” vs “지지율 부담에 놔둘 수도”

“간호법 숙원이 이뤄지도록 저도 국민의힘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해 1월,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에 힘을 싣겠다며 이같이 약속했다. 이후 1년 뒤, 윤 대통령은 간호법을 두고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모습이다. 야당이 당정의 중재안을 패싱하고 간호법 원안 강행 처리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간호법이 다음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윤 대통령이 간호사들의 반발과 ‘약속 번복’ 역풍 우려로 쉽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왼쪽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는 대한간호협회 간호사들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문화마당에 참가해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왼쪽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는 대한간호협회 간호사들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문화마당에 참가해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野, 27일 본회의서 간호법 강행 예고

여야는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여전히 줄다리기 중이다. 그간 정치권은 간호법이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정돼 야당의 거대의석을 앞세워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여당의 강한 반발로 간호법은 결국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다음 본회의에서 간호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여당은 간호법 중재안까지 내놓으며 대한간호협회(간협)와 막판 협상에 나섰지만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간협은 지난 11일 국민의힘과의 간담회에서 “간호법의 핵심인 ‘간호사 단독 의료행위 가능’ 근거 조항을 없애고 ‘간호사 처우법’으로 법안의 성격을 바꿔버렸다”며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대로 통과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13일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자 강력 항의에 나섰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장이 과도하게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며 “의장이 오는 27일 본회의에서는 간호법·의료법을 확실히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오늘 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확실히 간호법을 원안대로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다. ⓒ연합뉴스

대선공약 번복?…간협 “밥 먹듯 약속 뒤집어”

정치권은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윤 대통령이 두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야당에서 강행 처리 중인 법안들에 대해 일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야당이 거대의석을 앞세워 입법 독주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양곡관리법도 지난 4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로 넘어온 후 13일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다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이번에는 쉽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적이 있어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12일 간협 간담회에서 “간호사 업무 개선을 위해 저뿐만 아니고 국회가 제 역할을 해주도록 원내지도부와 의원님께 간곡한 부탁을 드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윤 대통령이 간호법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약속을 밥 먹듯 뒤집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민주당에선 간호법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지난 9일 브리핑에서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여당과 대통령실에선 “대선공약집이나 여러 문건에는 간호법 제정 관련 내용이 전무하다”며 “야당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대선공약이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간협도 반박에 나섰다. 간협 홍보팀 관계자는 13일 통화에서 “정부여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약속을 밥 먹듯 뒤집는다”며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위키(선거대책위원회 검토를 거쳐 시민의 제안을 공약으로 반영하는 플랫폼)에도 간호법 제정이 포함돼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간담회에서 구두뿐 아니라 정책협약서에 사인도 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간호법은 양곡법과 달리 ‘간호사-의사’ 직역 간 갈등도 심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의사 측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간호사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여당으로선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힌 상황에서 부담이 더 가중되는 셈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시사저널에 “윤 대통령께서도 거부권 행사를 두고 고심이 깊을 것 같다”고 전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도 “양곡관리법 거부권으로 농업계 반발이 있는 상황에서 간호계 반발까지 더해지면 지지율이 더 빠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며 “총선을 앞두고 악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간협 측에서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간협 관계자는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이어 거부권을 또 행사한다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간호법이 간호사 처우 개선으로만 포커스가 맞춰져있는데 사실 국민 건강을 위해 필요한 법이다. 초고령 사회에서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라며 “민생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대통령이 외면·거부할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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