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코인투자 손실 면책해준다는 정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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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근 변호사 “심각한 사각지대…살아있는 세월호”
4월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세사기를 당한 20~30대 청년들이 잇달아 극단 선택을 하면서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등 개인 판단에 따른 투자 실패에 대해서는 면책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반면 정작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입자114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근 변호사는 18일 YTN 《뉴스라이더》에 출연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는 살아 있는 세월호 같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살아계실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야지 이대로 방치되면 희생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작년 10월 이후 결성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가 6개월 간 피해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 왔는데, 희생자들이 나오면서 무너지기 시작하면 피해는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전세사기와 관련된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메우고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사망한 20~30대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의 사례를 언급하며 이들이 "심각한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한테 '당신들의 최우선변제금을 올려줄게'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걸로는 보호를 못 받는 것"이라고 제도적 허점을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작년 서울회생법원에서 주식투자와 가상투자 손실금에 대해서 면책을 해 주겠다라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며 "그분들은 개인적인 귀책사유잖나. 그런데 전세사기 피해자분들은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니라 임대인의 사기로 손실이 발생한거니 정부에서 전세대출금에 대해서 최대한 면책을 해주겠다든지 궁극적인 대책이 나와야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촉구했다. 

4월17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31·여)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 쓰레기봉투 안에 수도 요금 독촉장이 놓여 있다. ⓒ
4월17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31·여)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 쓰레기봉투 안에 수도 요금 독촉장이 놓여 있다. ⓒ

실제로 사망한 청년들은 최우선변제금 적용 대상이 아니거나, 대상이 되더라도 일부만 돌려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가 잇따르자 최우선변제금 적용 금액을 상향했지만, 제도 시행 전 임대인 요구에 따라 이미 큰 폭으로 전세금을 올려 계약한 피해자들은 이마저도 적용받지 못했다. 

지난 17일 미추홀구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A(31·여)씨는 전세보증금이 9000만원이었는데, 최우선변제금 적용 기준인 '보증금 8000만원 이하' 대상에서 제외돼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A씨는 인천 건축왕과 첫 전세 계약을 했던 2019년 9월 보증금으로 7200만원을 냈지만, 2년 후 2021년 9월 임대인의 요구로 재계약을 하면서 보증금이 25% 오른 9000만원이 됐다. 

지난 14일 미추홀구 연립주택에서 숨진 B(26·남)씨도 보증금을 기존 6800만원에서 9000만원으로 32% 올려줬고, 보증금 중 3400만원만 최우선변제금으로 구제받을 수 있었다. 지난 2월 빌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C(39·남)씨는 당시 전세금이 7000만원으로, 소액임차인 전세금 기준액이 6500만원보다 불과 500만원이 많았던 탓에 최우선변제금을 보장 받지 못했다.

김 변호사는 "전세사기 피해자분들이 최대 80%까지 전세대출을 끼고 있다"며 "최우선변제금을 받더라도 전세대출을 변제하고 나면 자기자본이, 예를 들어 지난 10년간 벌었던 종잣돈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4월17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31·여)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 수사 대상 주택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4월17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31·여)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 수사 대상 주택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김 변호사는 전세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 및 후속 입법,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거듭 호소했다. 정부가 내놓은 긴급주거지원의 경우 피해자들이 정작 적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저리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기존 전세대출에 또 다시 대출을 더하는 형태라 궁극적인 대안이 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법적으로 가면 대책이 없다"며 "국회에서 법을 바꾸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책위가 가장 급하게 요구하는 것이 경매 중지인데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가 은행연합회와 협조해 금융기관에서 단기간이라도 전세사기 관련 경매 건은 중지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단체는 ▲전세사기 주택에 대한 경매 절차 중지 ▲기존 전세대출에 대한 대책 ▲경매로 넘어간 집에 대한 우선매수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너무 힘드신 거 알고 피해를 당한 게 여러분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고통을 응축하거나 안고 있지 말고 '나 힘들다', 회사에도 '전세사기 피해당했다'라고 얘기하고 드러내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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