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가 아닌 ‘보통의 삶’을 위해 하이킥!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3 14: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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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신작
영화 《드림》이 보여주는 변화의 가치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중 일부는 현실이 된다. 그러나 누군가의 꿈은 평생 희박한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인생에 한 번쯤, 누구에게나 ‘꺾이지 않는 마음’이 깎이고 깎여 흔적조차 남지 않는 절망의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드림》은 그때 누군가에게 내밀 수 있는 손, 또한 반대편에서 그 손을 다시 한번 힘차게 쥐어볼 수 있는 용기에 관한 영화다. 《극한직업》(2019)으로 1600만 관객을 모았던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다.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말장난 사이, 인물들의 진심이 툭 하고 불거지는 순간을 만드는 감독의 전매특허는 여전하다.

프로선수들이 뛰는 환호 가득한 축구장이 아니라 소박한 경기장, 짜릿한 승리가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작은 성장을 이뤄내는 이야기. 거칠게 요약하자면 《드림》은 이런 영화다. 스포츠 영화지만 스코어는 큰 의미가 없고, 선수들이 등장하지만 그들 각자가 얼마나 놀라운 실력을 갖추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과보다 과정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가치가 《드림》을 관통한다.

영화 《드림》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홈리스 월드컵 실화로부터

프로 축구선수 홍대(박서준)는 폭행 사건으로 이슈 메이커가 된다. 사기를 저지르고 도주 중인 홍대 어머니의 문제를 공식 석상마다 집요하게 질문하는 기자의 태도를 참지 못한 탓이다. 선수생활을 접고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 대안. 어머니의 합의금을 마련하려면 목돈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받아든 연예계 생활 예명 ‘호락’처럼 상황 반등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때 억지로 수락한 것이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 코치 자리다. 감동 다큐멘터리로 이미지 세탁을 노려보자는 PD 소민(아이유)과 매지니먼트의 계획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처음에 마냥 부대끼는 마음으로 섰던 경기장은, 어느덧 홍대에게 새로운 관계를 통한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겪어내는 무대로 바뀌기 시작한다.

실화 소재 스포츠 영화라는 점에서 《드림》은 최근 개봉했던 《리바운드》와 나란하다. 차이가 있다면 실제 사연을 모티브 삼아 훨씬 더 극적으로 각색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중심에는 ‘홈리스 월드컵(Homeless World Cup)’이란 실화가 있다. 노숙인 자립 사업을 벌이던 영국 잡지사 빅이슈(Big Issue)의 제안으로, 주거 취약계층을 뜻하는 홈리스의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열리는 축제다. 첫 대회에 18개국이 참가했고, 매년 참가국이 늘어나 40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국제행사가 됐다. 2010년 첫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그해 꼴찌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인상적 활약으로 최우수 신인팀상을 받았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홈리스 월드컵을 접한 이병헌 감독은 201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경기에 동행해 취재하는 등 오랜 준비를 거쳤다. 그는 “남들보다 조금 뒤처진 곳에서 보통을 향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말한다.

영화가 시작된 후 처음 얼마간은 서로 손발 안 맞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홍대와 소민의 분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축구팀의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드림》은 진짜 주인공에게로 카메라의 무게를 옮긴다. 연령부터 성격, 각자가 품은 사연까지 모두 다른 오합지졸 축구 팀원이 바로 그들이다. 사업으로 잘나가던 시절 가족을 등한시했던 과거를 후회하는 환동(김종수), 전처와 함께 곧 호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어린 딸에게 어떻게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픈 효봉(고창석), 지적장애를 앓는 연인에게 따뜻한 방 한 칸을 마련해 주고 싶은 범수(정승길),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인선(이현우), 욱하는 성미와 한없이 여린 감수성이 희한하게 공존하는 문수(양현민), 무언가 비밀을 감춘 듯 입을 다문 영진(홍완표)까지.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던 이들이 축구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 삶은 포기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투지의 무대로 점차 뒤바뀐다.

영화 《드림》의 한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드림》의 한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이’의 미덕

홈리스 월드컵은 축구장 크기와 경기 시간만 다를 뿐 분명 정식 경기지만, 여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서로 싸워 이겨야 하는 경쟁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팀플레이를 통해 살아갈 힘을 함께 발견하는 폭넓은 의미의 동반자들이다. 개별 팀의 득점이나 등수 역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니다. 주저앉은 채 체념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겼던 이들에게 자립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과정이 핵심이다. 《드림》은 영화 속 홈리스들의 삶을 손쉽게 평가하며 사회적 실패자로 낙인찍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우리와 다른 존재로 선 긋는 대신, 삶의 고비에서 넘어졌지만 누군가 손을 내밀어준다면 언제든 일어설 수 있는 이들로 그려낸다. 그런 점에서 극 중 축구팀 선수들과 홍대의 삶은 특별히 다르지도 않다. 열정 하나 없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던 소민에게도 차츰 홈리스 선수들의 진심을 담아내고픈 변화가 생겨난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존재다.

눈물겨운 사연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단순히 신파로 분류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차원적인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신파라면, 이 영화는 그보다는 가족애 같은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는 쪽에 가깝다. 실제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이의 미덕’을 발휘한다는 것이 《드림》의 장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감동과 밉지 않은 호소 사이, 진중함과 깃털 같은 가벼움 사이, 코미디와 말장난 같은 수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유튜브와 영화, 스포츠 중계 등 여러 영상 매체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기도 한다. 이 같은 연출은 영화의 테마이기도 한 울타리 안과 밖을 허무는 움직임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드림》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그럴 때 다시 한번 주어지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한다. 희망의 모든 불씨를 꺼트린 채 숨만 쉬며 살아가다가, 낯선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느끼는 홈리스 축구팀의 얼굴에는 그제야 빛이 스며드는 듯 보인다. 관계의 손절, 빠른 포기가 절대적인 미덕으로 보이는 세상. 《드림》은 자기 자신과 서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결과를 보여준다. 그건 분명 ‘가능한 기적’이다.

말맛이 체질

박서준, 아이유 등 스타 배우들이 나섰지만 《드림》은 감독의 개성이 조금 더 두드러지는 영화다. 《스물》(2015), 《극한직업》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코미디 감각을 알렸던 이병헌 감독이 10여 년 전부터 구상하고 각본 작업을 했다. 형식적으로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힘내세요, 병헌씨》(2013)와 그가 연출한 TV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2019)의 느슨한 결합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 PD가 밀착 취재하는 과정을 담는다는 점에서는 전자를, 탁구공을 주고받듯 대사를 처리하는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는 후자를 닮았다. 아이유가 “감독님이 제 평소 말투보다 2.5배속 정도의 빠른 대사톤을 요구했다”고 밝혔듯, 속사포 같은 대사는 감독의 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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