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이민자가 현장에서 건진 토론 바이블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3 13: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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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이팅 세계대회 연속 제패한 서보현의 토론 기술 《디베이터》

우리나라 토론 프로그램의 대명사 격인 MBC 《100분 토론》이 1000회를 맞아 특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화제의 논객이었던 유시민, 홍준표의 토론 재대결, 손석희 진행자의 회고담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토론 프로그램의 위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대선 토론이 아닌 평상시에 최고시청률 15.6%까지 기록했던 이 프로그램은 지금은 통상 1%를 넘나드는 상황이다.

토론의 몰락에는 지상파의 위상 약화와 유튜브 강세도 영향이 있지만, 토론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던 민주주의 기본이 무너진 것도 영향이 크다. 그 대신에 자신이 듣고 싶은 극단적 말들을 올리는 극우나 극좌에 대한 선호가 커진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조차 토론 수업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우리 교육 시스템의 문제도 크다.

이번에 출간된 서보현의 토론 성장기인 《디베이터》가 주는 메시지는 만만치 않다. 저자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 부모님을 따라 호주로 건너갔다. 당시만 해도 영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소극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2005년 3월 토론반에 가입하면서, 아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삶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에게 주어진 타이틀은 상당하다. 고등학생 때 세계 디베이팅 챔피언대회에서 개인상과 팀전에서 우승했다.

이후 하버드대 상위 1%에 부여되는 ‘주니어 24’에 선정되고, 세계대학생토론대회도 제패하고, 하버드대 코치로도 활동한다. 이 밖에 중국 칭화대에서는 슈워츠먼 장학금으로 공공정책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서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저자는 학교 토론대회부터 한 단계 한 단계 토론 단계를 올리면서 세계대회로까지 나아간다. 하나의 토론도 결코 방심하지 않았을 텐데, 책도 독자들이 전혀 낯설지 않게 단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1부는 토론의 다섯 가지 기술인데 논제, 논증, 반론, 수사법, 침묵을 자신의 성장에 맞추어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디베이터│서보현 지음│문학동네 펴냄│440쪽│2만원

토론은 인간적 공감에 이르는 행위 

어떤 한 논제를 놓고 임의적으로 찬성과 반대라는 입장에 서서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의 흥미진진함이 1부에 녹아있다. 더욱이 영어를 막 익힌 저학년부터, 하버드대에 진학하고, 과거 배틀에서 만난 친구까지 동행하는 모습을 보면 저자가 서서히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한국의 토론문화에도 따끔한 말을 던진다. “요즘엔 정치색이 다른 이와 대놓고 전쟁을 벌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의견 차가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온갖 경멸, 미움이 전에 없이 커진 듯하다.”

그런 점에서 2부 ‘토론의 기술을 삶에 적용하기’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무례한 사람을 상대하는 법, 품위 있게 이기고 지는 법, 가까운 사람들과 잘 싸우는 법 등을 경험에 기초해 이야기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결론도 시사점이 많다. “논쟁은 우리의 별난 생각과 한계를 아우르는 인간적인 행위다. 좋든 나쁘든 추론하고 공감하고 판단하는 우리의 능력이 토론의 본질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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