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의 입’ 어디까지 열릴까…‘돈봉투’ 수사 급물살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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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핵심 피의자 강래구에 구속영장 청구
의혹 부인하던 이정근, 입장 선회하면서 수사 탄력
서울 서초구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당시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022년 2월24일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당시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022년 2월24일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이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핵심 피의자에 대한 신병 확보 절차에 돌입했다. 이번 의혹 열쇠를 쥔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입이 열리면서 수사도 탄력이 붙는 모양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윗선을 향한 강제수사도 불가피 할 전망이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전날 강래구(58)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에 대해 정당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이번 의혹과 관련한 핵심 피의자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처음이다. 

검찰은 지난 16일에 이어 전날 강 위원을 2차로 불렀고, 조사 마무리 직후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강 위원이 압수수색을 전후해 다른 피의자들과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 시도를 했던 점에 비춰 신병 확보가 필요하다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권 위원이 조직적, 대규모 금품선거에 주도적으로 관여해 사안이 중대하고 여러 증거인멸 정황도 확인돼 신속한 신병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2016년 4월9일 대전 동구 중앙시장 앞에서 당시 강래구(오른쪽)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2016년 4월9일 대전 동구 중앙시장 앞에서 당시 강래구(오른쪽)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당시 당대표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강 위원 등이 9400만원의 불법 자금을 주도적으로 조성하고 이를 당내 의원과 캠프 관계자와 선거 관련 인물들에게 살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위원은 이 과정에서 '지역본부 담당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해 전국대의원, 권리당원 등을 포섭하는 데 사용하자'는 내용의 구체적인 지시·권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금은 국회의원들에게 총 6000만원(봉투 10개X300만원씩X2차례), 경선캠프 지역본부장 등 17명에게 총 1400만원, 지역상황실장 20~40명에 두 차례에 걸쳐 총 2000만원으로 쪼개져 살포된 것으로 조사됐다. 

강 위원은 또 2020년 9월 수자원공사 산하 발전소 설비에 대한 납품 청탁 명목으로 사업가 박아무개씨로부터 300만원을 수수한 혐의(뇌물수수)도 받는다.

이 전 부총장의 알선수재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2020년 7월 이 전 부총장이 박씨로부터 수자원공사 납품 청탁을 받았고 그해 9월 박씨와 강 위원이 만났다. 검찰은 이 자리에 동석한 이 전 부총장이 박씨에게 받은 300만원을 강 위원에게 건넨 것으로 파악했다. 박씨로부터 알선 명목으로 9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 이 전 부총장은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강 위원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후 구체적인 금품 마련 및 전달 경위, 최종 수혜자로 지목된 송 전 대표의 지시·인지 여부를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19일(현지 시각) 파리경영대학원 앞에서 한국 특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19일(현지 시각) 파리경영대학원 앞에서 한국 특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인하던 이정근, 민주당에 배신감 느꼈나

의혹을 전면 부인하던 이 전 부총장이 입장을 바꿔 입을 열면서 수사는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돈봉투 살포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녹취록이 확보된 만큼 송 전 대표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 한 상황이다. 

이 전 부총장은 돈봉투 살포 의혹이 불거진 직후 이를 부인하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과거 휴대전화 녹취에서 의혹을 확인할 만한 단서가 나오고 민주당의 '선 긋기'가 이어지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과 이 전 부총장 변호인 등에 따르면, 돈봉투 의혹이 불거진 후 당이 '개인 일탈'이라며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이에 배신감을 느낀 이 전 부총장이 검찰 수사에 적극 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이 전 부총장이 의혹 전반의 키를 쥐고 있는 만큼, 그가 어떤 진술을 어디까지 내놓을 지에 따라 송 전 대표를 포함해 민주당 윗선 수사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 전 부총장이 검찰과 '형량 거래'를 했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 전 부총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심리한 1심 재판부가 지난 12일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보다 높은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의구심은 더 커졌다. 재판부는 알선 명목으로 10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는 등 죄질에 비해 검찰 구형이 이례적으로 낮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적정 형량을 구형했지만 법원이 사안을 중대하게 본 것 같다"며 "한국에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 제도도 없다"며 이 전 부총장과의 형량 거래 의혹을 일축했다.

한편, 지난해 12월부터 파리에 머무는 송 전 대표는 녹취록에 직접 개입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는 당내에서 터져 나오는 입국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채 오는 22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 방침이다. 송 전 대표는 이번 의혹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라면서 "이정근의 개인적 일탈 행위를 감시·감독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당시 당 대표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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