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부터 틀린 소아청소년과 대책…무너진 ‘첫 도미노’부터 바로 세워야”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4 10: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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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과 폐과 선언 나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수입 감소로 운영 불가”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인터뷰

“소아청소년과(소청과) 간판을 다 내리겠다.” 3월29일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있었던 ‘소청과 폐과 선언’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이날 저출산과 낮은 수가(진료비) 등으로 인한 수입 감소로 소청과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호소하며 소청과 간판을 떼겠다는 의사들의 결심을 전했다. 소청과 전문의 타이틀을 빼고 일반의 형태로 개원하겠다는 결의로, 이렇게 될 경우 앞으로 동네에서 소청과 병원 간판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지난 7년간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지내면서 여러 타개책을 찾아온 임 회장이 어떤 계기로 폐과 선언 기자회견까지 열게 됐을까. 그에게서 소청과 의사들이 처한 현실과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의 문제점 및 해결책 등을 들었다.

‘소청과 폐과 선언’ 기자회견에서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기획재정부가 아이들을 살리는 대책이 아니라 이에 반하는 대책들만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근본적인 진단을 전혀 못 하고 헛다리 짚는 대책들만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소청과 전문의 절반 이상이 종사하고 있는 동네 소청과라는 ‘첫 도미노’가 무너진 것이다. 저출산과 코로나19 유행, 지난 30년간 이어진 폭압적인 소아 진료비, 국가필수예방접종비에 대한 통제 등이 소아 진료 인프라 붕괴의 결정타를 날렸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소청과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니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첫 도미노가 무너졌다’는 의미는.
“동네 소청과가 인건비와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면서, 소청과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의사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를 잃게 됐다. 이는 곧 인턴들이 소청과 전공을 기피하는 흐름으로 이어져 결국 맨 마지막 도미노인 대학병원 소청과 의료 인프라까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정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자 첫 도미노인 동네 소청과를 살리는 대책을 가장 먼저 제시했어야 하는데 잘못된 진단으로 계속 오처방만 나오고 있다.”

소아만을 위한 의료체계가 중요한 이유는.
“소아는 성인과 달리 질환의 경과가 급격히 진행돼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자면, 대학병원에서 위중하고 희귀한 환자들을 수없이 경험해본 동네 소청과 전문의가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빠른 진단을 통해 동네 소청과에서 소화 가능한 환자는 자체 치료로 대학병원의 진료 부하를 줄여주고, 중증·희귀 환아여서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 빨리 대학병원에 보내 적합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역할이다.”

소아 의료 인프라가 무너졌다고 했는데,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보나.
“이미 늦었다. 서울 시내 상급종합병원에 1시간30분 동안 위중한 상태의 영·유아, 소아 중환자 10명이 몰리는 상황이 됐으니 소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이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만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소아 의료 인프라 위기를 막으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아이들이 겪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통령 직속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국회도 시급히 추경예산 편성과 관련 법률 입법에 나서야 한다. 장기적으론 소아청소년 정책을 전담할 미국의 아동국(Children’s Bureau), 일본의 아동청과 유사한 정부 기구인 어린이청을 만들어 업무의 연속성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의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정책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응급실에 소아 경증환자가 몰리니까, 응급실이 아닌 곳에서 소청과 전문의가 응급실보다 적은 비용으로 아이들을 진료하도록 하겠다는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본다. 전국에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달빛어린이병원은 1곳밖에 없다. 달빛어린이병원이라면서 평일에 다른 소청과 의원보다 진료시간이 짧은 곳도 있고 주말에도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해 당초 취지에 맞지 않는다.”

소아 의료 사각지대 해소라는 애초의 취지를 살리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지방 소도시와 대도시, 동네병원과 대학병원의 유기적 진료전달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진료가 기어 맞물리듯 돌아갈 수 있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장 의료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 지역별로, 의료기관별로 대책이 다르게 세워져야 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소청과를 개원하더라도 의사와 직원을 구하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각 지역 단위로 영·유아, 소아 진료 수요와 공급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증상의 중등도에 따라 소청과와 상급병원 간 원활한 이송이 가능하도록 도로 개선, 헬기 수송 등 이송체계 효율화 대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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